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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의 미학, 부재의 충만 (2)

<살아내는 중 7>

by 모카레몬






잃고 난 후의 시간은 되찾기보다

다시 살아내는 일에 가까웠습니다.


저희 부부는 마음에 눌어붙은 감정을 떼어내기 시작했고

아무렇지 않게 웃는 데도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너무 바빠서 우리의 감정을 깊이 돌아볼 여유가 없을 정도였지요.


하지만, 깊은 심연에 닿는 날이면

쏟아내지 못한 물기들이 차올랐습니다.


태어나지 못한 존재는 우리 안에서

작은 나무처럼 자라고 있습니다.


손을 잡아 줄 사람이 필요한 아이

이름을 불러 줄 어른이 필요한 아이

그늘조차 없이 자라는 어떤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아동복지재단에서 봉사도 하고

후원을 했지요.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기도처럼

적은 금액을 나누고, 짧은 편지를 보내고

인형과 장난감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들은

슬픔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의 증거가 되어주었어요.


그러나, 마음 깊은 구석엔 아직 준비되지 않았던 진심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결핍과 온갖 감정들이 행위로 수고함으로써 그 구멍을 메우려 했다는 것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봉사와 후원을 멈추고, 정말 필요한 곳에 질적인

후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입양이요?

물론 생각하고 기도도 했지요.

그런데 쉽지 않았어요. 생명을 키우는 일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언가를 계속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죄책감이

누군가를 보듬기에는 더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었지요.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로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도 필요했습니다.




수 십 개의 계절을 보내고 저희 부부는 조금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자립청년>

만 18세가 되면 보호시설에서 나온, 아이도 아니고

완전한 어른도 아닌,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청년들을 생각합니다.


무엇을 도와주거나 해내려는 다짐보다

도움이 아닌 ''을 내어주고 싶다는 마음에 머무릅니다.


기다리는 마음

지켜보는 태도

함께 한다는 무언의 동의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저희 부부의 곁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힘들면 잠깐 쉬었다가는 나무그늘처럼 말이지요.


서두르지 않고,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좀 더 천천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때와 인원 수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살다 보니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사람과 만나길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키우지 못한 대신

마음을 키우는 일이 저희 부부의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이런 마음을 품고 있던 중, 브런치 작가가 되고

1월 중순에, 우연히 <엄마의 유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자리에서 자녀를 양육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더 큰 품을 보게 하십니다.


<엄마의 유산 2>를 쓰기 위해 뜻이 있는 소수의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제게 큰 후원자이자,

든든한 손이 되어주는 사람도 남편입니다.


<삶을 짓는 문장 365개> 브런치 북 연재를 시작하면서 영월댁 친할머니와 부모님을 이어

제 곁을 지켜 온 어른들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아픈 역사를 건너온 어른들의 세대와 현재의 경쟁시대를 이어가는 현재의 어른들은

삶의 모양만 다를 뿐, 자녀와 곁의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고 싶은 마음을 변함없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쓰기를 하며 삶과 연결되는 이 프로젝트는 저뿐 아니라, 이 활동에 참여한 모든 작가들이

부모이기 이전에 진정한 나의 내면을 찾고 있습니다.

일과 살림을 하며 아이들을 살피고, 시간과 잠을 좇아가며 쓰고 실천하며 오늘을 삽니다.


한 권의 책을 출간하는 것 이면에는

현재 내 영혼의 주소를 확인하고, 나는 어떤 정신을 소유하고 있으며

내 자녀에게는 어떤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줄지 매일의 삶에서 실천하며 녹여내고 있습니다.


자녀가 없는 저는 자립청년을 생각합니다.

부모가 없는 청년 말이지요.

저희 부부가 바라보는 미래의 한 영역에는 분명히 이들이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제겐 <엄마의 유산> 프로젝트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희 부부의 다정함과 곁을 낯선 누군가의 미래로 건네는 것이

유산이 될 것 같습니다.

왜 없냐고 묻는 세상에 있는 것을 보여주기로 다짐합니다.

없음으로 인해 충만한 반격을요.




<엄마의 유산> 프로젝트는 브런치 지담 작가 김주원 교수가 6년간의 새벽독서를 통해 얻은 통찰을 자녀에게 전하고자 쓴 30통의 편지를 엮은 책입니다. 이 책은 자녀에게 전하는 편지형식의 책으로 <인간, 이상, 자연, 소신, 쾌락, 가치, 정신, 정신, 자유, 창의....>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단순한 책 출간을 넘어, 작가들이 함께 글을 쓰고 성장하는 커뮤니티로 확장하고 있으며, 참여자들은 브런치스토리 등 플랫폼에서 글을 연재하며, 서로의 경험과 통찰을 나누고 있습니다.



글벗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쁜 부활절,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출처> pixa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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