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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간격

< 살아내는 중 5 >

by 모카레몬




연애 5년, 결혼 28년째.


처음엔 몰랐습니다.
서로 닮았다고 착각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콩깍지가 낀 쌍안경이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두껍고, 각도 좁고, 초점이 잘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살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비슷한 것보다 다른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요.

머그컵을 쥐는 방식에도 정서가 숨어 있습니다.
취향이라 하기엔 너무 오래되고, 습관이라 하기엔 너무 정교한
그런 고유한 형태들이, 결국 '나는 이렇게 생겼어.'라고 말해줍니다.



저는 머그컵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쥐고, 왼손으로 컵을 감쌉니다.
조금 뜨겁고도 따뜻한 그 감각을 일부러 오래 느껴요.
온도라기보단, 마음이나 태도에 가깝습니다.

그는 오른손으로 손잡이만 잡습니다.

가끔 왼손바닥으로 온도를 재지만, 그건 손이 시릴 때 볼 수 있는 행동이에요
정말 사소한 차이인데, 그것이 우리를 말해줍니다.



저는 커피의 향과 분위기를 마시고, 그는 카페인과 커피 자체를 마십니다.

저는 커피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고, 그는 카페인을 적용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저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그는 물리와 과학을 사랑합니다.
저는 운명을 믿고, 그는 중력을 믿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극과 극입니다.

운명 같은 만남의 시점에서 점과 점이 선으로 만났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를 붙잡은 건 성격이 아니라 세계관과 가치관이었어요.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렸지만, 뿌리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거죠.

결혼생활은 누가 뭐래도 생활의 예술입니다.



눈부신 드라마가 아닌,
무한 반복 재생 중인 리얼리티 다큐멘터리죠.
배경은 늘 비슷하고, 등장인물도 똑같지만
자막은 매일 바뀌고, 음악은 들쑥날쑥입니다.
어떤 날은 웅장하게 깔리다가, 어떤 날은 음소거가 됩니다.

이 상영관의 티켓은 우리가 스스로 끊었고,

환불도, 퇴장도, 엔딩 크레디트도 없습니다.

제작사와 투자처는 위대하신 하나님입니다.



결혼생활이란, 상대의 기묘한 습관을 매일같이 관찰하면서도
그걸 귀엽다며 사랑으로 덮어주는 일입니다.

마음에 좀 내키지 않아도 우쭈쭈 해줘야 기가 살고, 자신감을 가집니다.



그의 기준에선 저란 사람도 몹시 기묘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서로 고개를 끄덕끄덕 잘도 합니다.



가끔은 웃고,

가끔은 다투고,
가끔은 울고,
가끔은 박장대소하다가 침묵하고,
가끔은 "왜 저래?"를 백만 번쯤 묻다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물러서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모나고 튀던 돌멩이들도 조금씩 서로를 닮아가고 있더라고요.
밖에서 보면 전혀 닮지 않았지만
속을 보면, 이제 오누이처럼 결이 비슷합니다.

그게 사랑의 모양인지,

아니면 견디고 버텨낸 시간의 흔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이 다큐멘터리는
계속 보고 싶습니다.
그와 함께 출연 중인 이 삶이라는 이야기.

다음 화도 궁금한 오늘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브리서 10:24)


없음으로,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있음으로 더욱 깊이 감사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을 강하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이 없이 살아가는 중년 부부입니다. 누군가는 선택으로, 누군가는 상황으로 부모가 되지 못합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지요. 아마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자녀양육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연재글은 '아이 없음'에 대한 내용보다 아이가 없어도 살아지는 중년부부의 일상 기록입니다. 저출산 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삶의 결이 닮은 분들에게 닿기를 소망합니다.

자립청년과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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