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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의 기술

<살아내는 중 4>

by 모카레몬




휴대폰을 가끔 잃어버립니다. 지갑도요.
제가요. 늘 그런 건 아닙니다.
정말, 진짜! 종종 아닙니다.


근데 그 가끔이 묘하게도 바삐 외출을 할 때 옵니다.

가방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찾는 물건이 식탁 위에 있고,

지갑을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침대 옆 협탁에 얌전히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가 나섭니다.

눈썹이 올라가고, 입꼬리는 좀 내려갑니다.
표정은 FBI요, 말투는 국과수입니다.

저는 용의자가 되고, 그는 탐정이 됩니다.

물건 하나를 찾을 때마다 수사본부가 꾸려집니다.



한 번은요, 제가 택시에 휴대폰을 두고 내렸습니다.
알아챘을 땐 이미 택시는 떠났고, 저는 멘붕을 탑니다.

그는 수십 번 택시기사와 전화를 해서 결국, 휴대폰을 인수합니다.

카카오 택시로 불렀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찾을 도리가 없지요.

콜센터 직원 같고, 위기대응 매뉴얼을 외운 사람 같고, 든든한 내 편 같기도 합니다.

지갑도 가끔 사라집니다. 그래도 결국엔 또 찾아줍니다.

쪼매 미안합니다. 고마움풀이는 표현 닿는 대로 사정없이 합니다.
그는 저보다 제가 가진 것들의 위치를 더 잘 알고,

저보다 저를 더 잘 아는 것 같아서, 조금 얄밉고 많이 감탄스럽습니다.




외출 준비는 늘 제가 늦습니다. 여자니까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맞습니다. 옷 하나 입는데도 두세 번은 이거 입었다, 저거 입었다 합니다.

남편은 말끔하게 먼저 준비를 하면,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저를 기다리는 동안, 현관에서 서성이다가 거울에 얼굴을 두어 번 비추어 보고 안경도 닦습니다.
닦을 게 별로 없어 보이는데도요. 뒤통수가 따갑습니다.

"아직 멀었네?"
"립스틱만 바르고!" 다급하게 말하지만 눈을 흘길 여유도 없습니다.



그런데요, 이런 남편도 가끔 깜빡합니다.

차 열쇠요. 늘 그러진 않아요.

주차장에 왔는데 키가 없습니다.


"차 키가 없네!" 남편이 겸연쩍게 말합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립니다.
이번 탐정 역할은 제 몫입니다. 남편의 허술함을 3배로 부풀려 요란하게 수사를 합니다.

"있던 자리에 두면 어디가 덧나나..." 목소리 톤도 한껏 올립니다.



둘이 온 집안을 샅샅이 뒤집니다.

이때다 싶어 제가 흥정합니다. "찾으면 십만 원!"
그가 다급했는지 "오만 원!"으로 싹둑 자릅니다.

"칠만 원!" 다시 올려 부르면 "알았어!" 하고 협상이 됩니다.



흠흠... 정수기와 도마 틈 사이에서 그 반짝이는 키를 발견합니다.

왜 거기서 나오는지 둘 다 의아해합니다.

키는 제 손에, 칠만 원은 제 마음에 쏙 들어옵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이 집에는 여성 감정노동 수당이 있습니다.
초조에 빠진 남편을 구해주는 대가로 저는 종이로 된 고마움을 받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덜렁거림을 현금으로 바꾸며 삽니다.

너무나 인간적이고 아내 편향의 일방적인 방식으로요.

두 사람의 허술한 기억력이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혹 그가 나의 잃어버린 물건에 대해 현금을 협상해도 어림없습니다.

제 돈은 한 푼도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살면서 알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퇴직 후, 삶이 조금 느려졌습니다.

이제 그럴 일이 별로 없어요.

있어야 할 것은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차 키를 다시 찾아도 이제 현금 협상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고맙다는 말도 없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습니다.

씨익 웃고, 그냥 또 같이 나갑니다.

같이 차 타고, 같이 산책 가고, 또 뭐 하나 잃어버리면 같이 찾습니다.



그게 우리 집의 복구방식이자 현재진행형 정서입니다.




없음으로,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있음으로 더욱 깊이 감사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을 강하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아이 없이 살아가는 중년 부부입니다. 누군가는 선택으로, 누군가는 상황으로 부모가 되지 못합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지요. 아마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자녀양육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연재글은 '아이 없음'에 대한 내용보다 아이가 없어도 살아지는 중년부부의 일상 기록입니다. 저출산 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삶의 결이 닮은 분들에게 닿기를 소망합니다.

자립청년과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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