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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하나, 체온 둘

<살아내는 중 3>

by 모카레몬
이불.jpg



신혼살림으로 장만한 ㅇㅇㅅ침대.

살림살이를 처분할 때도 끝까지 튼튼해서 남겨 둔 28년 산 애장품이다.



같은 매트리스, 같은 베개, 같은 이불이 겉보기엔 '함께'의 상징으로 완벽하다.

하지만 현실은...... 각자 다른 날씨에 산다.

같은 이불을 덮고 잔다고 해서, 같은 마음으로 자는 건 아니다.

나는 늘 덥고, 그는 대부분 춥다.

한 사람은 덮고, 한 사람은 발로 찬다. 이불로도 온도 차이가 난다.

우리는 매일 밤, 무언의 기상충돌을 벌인다.

.


서로의 온도차는 말로 해결이 안 되니까, 가끔은 물리적으로 떨어지기로 한다.

코 고는 소리가 잠을 뒤척이면, 누군가는 이불을 들고 거실로 나간다.

어떤 날은 내가 나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가 나간다.

우리는 그렇게 번갈아 가며 쫓겨나고, 나가준다.

꿀잠을 자기 위한 자진 퇴장과 소리 없는 복귀의 반복은 필수다.



결혼 초엔 이불 하나로 충분했다.
붙어 자야 사랑이고, 딱 붙어야 로맨스인 줄 알았다.
지금은 각자 이불 하나씩 덮는 것이 부부 평화협정 1조다.

붙어서 자자는 마음보다, 잘 자자는 마음이 우선된 지 오래다.

이불은 각자 덮되, 온도도 각자 챙겨야 한다.
그게 우리가 결혼 28년 차에 도달한 실용적 낭만이다.



이불은 두장.

나 하나, 너 하나.

딱 그만큼의 공평함은 밤 12시까지 유효하다.



그 이후엔......

내 이불은 바닥에 떨어져 있고, 그의 이불을 말고 있다. 그는....... 웅크리고 몸을 말고 있다.

무의식 중에도 나는 뺏는 사람이고, 그는 내주는 사람이 된다.

이불의 소유권은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기울고, 분할된 이불은 내가 재분배하는 셈이 된다.

이젠 그러려니 하고 킥킥대며 서로 어처구니없어서 웃기만 한다.



가끔은 그의 자는 본새가 나보다 더 얌전해서 매우 미안하다.

잠결에 이불 만렙이 된 걸 발견하면, 재빨리 이불을 덮어 준다.

그게 사랑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렇다고 말하긴 민망하다.



이불을 서로 덮어주는 일은 한때 사랑의 일부였고, 지금은 거의 생활의 반사 신경이다.

내가 걷어찬 이불을 그가 덮어주고, 그가 뺏긴 이불을 난 미안한 마음으로 덮어준다.

그러면서도 서로 터지는 웃음이라니......

다년간의 결혼생활이 남긴 여유일지, 체념일지, 포기일지 모르겠다.



결혼생활은 이불처럼 딱 맞지 않는다.

늘 한쪽이 더 덮거나, 더 밀리거나, 아예 바닥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덮고, 말고, 끌어당기고, 다시 내어주면서 오늘도 나란히 누워 있다.



부부란, 같은 온도가 아니라 다른 온도를 포개며 살아가는 사이인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돌아누워 자는 그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다정함이 된다.



오늘도 같이 자고 있다는 것은 또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어제가 28번 째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삶의 가치관과 뜻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없음으로,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있음으로 더욱 깊이 감사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을 강하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아이 없이 살아가는 중년 부부입니다. 누군가는 선택으로, 누군가는 상황으로 부모가 되지 못합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지요. 아마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자녀양육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연재글은 '아이 없음'에 대한 내용보다 아이가 없어도 살아지는 중년부부의 일상 기록입니다. 저출산 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삶의 결이 닮은 분들에게 닿기를 소망합니다.

자립청년과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출처> pintrest

#부부 #이불 #온도 #꿀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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