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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완료되었습니다

<살아내는 중 2>

by 모카레몬
집2.jpg



우리 부부는 집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을 가지지 않기로, 계약서 대신 마음에 도장을 찍은 부부입니다.

특약 조항은 없습니다. 위약금도 없고요.

다만 서로를 믿는 약정만 있습니다.



연애 중, 그가 물었습니다.

"나, 집을 평생 안 가질 건데. 그래도 결혼할래?"

콩깍지가 딱 맞춤처럼 씌워져 있을 때입니다.

"환경이 뭐가 중요해. 사람만 있으면 되지."

망설이지 않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저는

그 말을 지금까지 잘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아이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아이도 없고, 고정된 삶도 없지요.

그렇다고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당장 집을 사자고 마음 먹으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목돈을 콘크리트에 눌러놓기가 싫은 거지요.

원할 때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가 좋거든요.

길게 머물고 싶을 땐 머물고,

훌쩍 떠나고 싶을 땐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우리는 집값보다 마음값에 더 투자하고 있습니다.

결혼 전부터 모아 온 책들을 추려서 대학도서관에 기증하고

살림살이도 정리하면서, 평수를 줄였습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현하는 과정 중이며, 집 다이어트를 하고 있습니다.

묵은 짐들을 버리고, 얽혀 있는 모든 소유들을 정리했지요.

살림은 줄었지만, 여백은 늘어났습니다.



마음이 좀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여백의 공간이 우리에겐 큰 여유가 되었고,

평수가 좁아진 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는 더 넓어졌지요.



친구들과 지인들은 말합니다.

"서울 한복판에 집 하나만 있어도 얼마나 든든한데! 배가 불렀구나."

가족들도 우리를 물끄러미 봅니다.

이해하기 힘든 표정으로요.



괜찮습니다.

우리의 기준은 둘의 마음만 합하면 됩니다.



땅은 사람이 잠깐 빌려 사는 것이고

하나님이 잠시 내어주신 자리일 뿐이며

계약서로 소유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택한 방식입니다.



대한민국은 땅값을 내 인생의 운명표처럼 여기거나

부동산 때문에 꿈을 줄여서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불안합니다.



누군가는 부동산으로 계보를 잇고,

어떤 이는 전세난 속에 계단만 오르내립니다.

집은 점점 살기 위한 곳이 아니라, 사기 위한 곳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그 소용돌이에서 한 발 비켜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한 채쯤은 있어야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계약 갱신도 없고,

집주인과 분쟁도 없고,

우리는 서로의 옆자리에서

아주 안정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린 서로에게 이미 입주 완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없음으로,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있음으로 더욱 깊이 감사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을 강하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아이 없이 살아가는 중년 부부입니다. 누군가는 선택으로, 누군가는 상황으로 부모가 되지 못합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지요. 아마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자녀양육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연재글은 '아이 없음'에 대한 내용보다 아이가 없어도 살아지는 중년부부의 일상 기록입니다. 저출산 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삶의 결이 닮은 분들에게 닿기를 소망합니다.

자립청년과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출처> pixabay

#집 #부동산 #땅 #입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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