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는 중 1>
양말을 벗을 때 뒤집는다.
딱히 의도가 없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저 벗다 보니 그렇게 된다.
다른 집은 남자들이 그런다는데 우리 집은 내가 그렇다.
내 발이 알아서 그런다.
남편은 양말을 뒤집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양말을 벗을 때도 정면을 유지한 채, 점잖게 분리해 낸다.
마치 현미경에 무언가를 올려놓는 듯 얌전하다.
남편의 인생 전체가 이런 식이다.
질서를 사랑하고, 무엇보다 생각의 각도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빨래 바구니를 비껴간 내 양말을 매번 뒤집는 일이란….
음... 헤겔도 정리 못했을 감정일 것이다. 그 표정이 슬슬 발동을 걸면 난 애교를 살살 부린다.
"또 뒤집었네, 또 뒤집었구먼!"
"헤헤. 그랬네..."
늘 이런 식이지만, 일상 속 레퍼토리는 반복된다.
대화는 거기서 끝이다.
말만 그렇게 하고 양말을 다시 뒤집어 원위치 시키는 건 남편이다.
물세탁 40도 코스에 맞춰 세탁기를 돌리고, 정성스레 널고, 햇빛 잘 드는 곳에 반듯하게 말린다.
다 말린 내 옷까지도 그가 개어 놓는다.
그럴 때면 문득, 내가 옷을 벗은 게 아니라 그가 나를 덮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좋다.
하지만 남편도 나 같은 부분이 있다.
치약 뚜껑, 꿀 뚜껑, 약 뚜껑, 물티슈 덮개를 제대로 안 닫는다.
내가 양말을 뒤집어 놓듯 남편은 뚜껑을 닫지 않는다.
"또 안 닫았네, 또 안 닫았구만!"
"괜찮아, 안 굳어."
이번 생의 빨래는 저 사람 몫이겠구나...
이번 생의 뚜껑닫기는 내 몫이겠다만...
그의 성격은 수건 개는 방식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아래-위-좌-우, 정확히 사각형을 만들며 접는다.
나는 수건이 뭉쳐만 있지 않으면 된다. 그냥 쓱 접고 접어서 대충 넣는다.
그는 수건 속에 질서를 두고
나는 수건 밖에 자유를 둔다.
그는 수건 걸 자리가 항상 있고
나는 편한 곳에 수시로 걸어둔다.
우리는 그렇게 수건 하나로도 충돌하는 사람이다.
가끔 생각하게 된다.
양말도, 수건도, 컵도...... 내가 흘리고 다니는 것들이 결국 그를 집 안 구석구석 걷게 만든다.
그는 내가 흘린 흔적을 따라 움직인다.
그가 정리광이 된 건 어쩌면 나 때문이 아닐까..... 하는 무책임한 자책도 해본다.
나는 흘리고, 그는 그걸 닦고 복구한다.
잘 아프고, 잘 다치고, 앓이를 많이 했던 나의 시간들을 묵묵히 정돈해주었다.
지금도 난 여전히 양말 한 짝을 뒤집거나 빨래 바구니에 빗겨 담는다.
어릴 때 집에서 털팔이라고 불린 것이 이런 면 때문이었나 생각도 해본다.
사랑은 원래 맞춰가는 거라고들 하지만, 우리는 그냥 서로의 '틀'을 인정하고 살아간다.
겉으로 보면 나는 틀린 사람이고, 그는 바른 사람이다.
이 집에 그런 두 명이 같이 산다.
아직까지 큰 사고 없이 잘 굴러가는 걸 보면
양말이 좀 뒤집혀 있다고 해서 세상이 망하지 않는다.
그는 양말을 정리하며 아마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내가 다시 뒤집는 게 빠르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짐작해 보는 그의 생각에 답한다.
"오빠 덕분에 나 아직도 이쁘게 살아!"
우리는 양말 하나로도 연애기간을 합쳐 참, 오래 살고 있다.
없음으로,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있음으로 더욱 깊이 감사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을 강하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아이 없이 살아가는 중년 부부입니다. 누군가는 선택으로, 누군가는 상황으로 부모가 되지 못합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지요. 아마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자녀양육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연재글은 '아이 없음'에 대한 내용보다 아이가 없어도 살아지는 중년부부의 일상 기록입니다. 저출산 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삶의 결이 닮은 분들에게 닿기를 소망합니다.
자립청년과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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