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와 깍두기

삶을 짓는 문장 72.

by 모카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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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쏠리는 곳이
하루의 표정이 된다

Where energy gathers,
the day takes on its face.




삼 일 전, 현관 문턱에서 발가락을 다쳤다. 가운데, 약지, 새끼발가락이 몸무게에 실려 꺾여버렸다.

급한 일정을 해결하고, 다음날 깁스를 했다.

골절은 아니지만, 며칠 후 다시 엑스레이 판독이 필요하다.

발끝의 열감을 알고 통증을 느끼는 일이란, 온몸이 아픈 것처럼 과장하게 한다.


아주 낮고 좁은 곳에서 큰 소리를 낸다.

발가락은 몸의 가장 바닥에 있으면서도 끝쪽에 있다. 끝에서 스며오는 통증은 중심을 흔든다.

통증은 늘 그랬다. 자리로 따지면 변두리나 가장자리인데, 목소리로 따지면 한 복판을 차지한다.

'아쿠야.. 아파라...' 뜨끈한 열감과 통증은 치통처럼 나도 모르게 입으로 터져 나오는 한복판 소리다.

사소해 보이는 통증도 '사소하지 않다'는 방식으로 나를 붙잡는다.


통증은 분명하고 쉽다. '아파서 그래.'라는 생각이 많은 것을 합리화한다.

아픈 발을 핑계 삼아 다른 사람의 말이 귀에 걸리고 예민해진다. 통증 자체보다 통증을 둘러싼 해석이 문제다. '왜 하필 지금!'. 몸무게를 실어 중심을 잃게 했던 몸의 어리석음을 탓한다. 부쩍 늘어난 몸무게를 원망한다. 통증에 자신을 나무라는 덩어리를 붙인다.


통증이 과장되는 건 어쩌면 통증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에너지를 쓰는 방식과 닿아 있다.

아픈 곳에 마음이 눌어붙으면 그곳으로 에너지가 흐른다. 물이 낮은 곳으로 모이듯 통증은 실제 크기보다 커지고, 주변의 모든 감각이 그쪽으로 모여든다. 통증을 중심으로 나의 세계가 새롭게 배치된다.


그 작은 발가락 때문에 발이 커졌다. 통증은 사건이고, 내가 부풀리는 것은 통증에 대한 판단이다.

통증을 없앨 순 없지만, 판단의 방향과 속도의 주도권은 내게 있다.

'아프다, 아프지 않다'는 통증 감각의 가운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지 않는 쪽으로 에너지를 옮기는 것이다. 통증을 과장하지 않기, 그렇다고 무시하지 않기, '괜찮아'를 무턱대고 남용하지 않기, '어쩌지'라는 말도 쉽게 말하지 않기. 그냥 오늘의 내 몸을 오늘의 크기로 받아들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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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발가락이 내게 가르친 건, 사람이 무엇에 에너지를 쓰는지에 따라 하루의 표정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마법이 아니고서야 깨끗이 낫는 일이란 없다. 자연의 섭리는 '시간'이 해결하는 연속성을 지닌다.

뜨겁다, 욱신거린다, 걸으면 아프다, 가만히 있으면 덜하다, 냉찜질을 하니 좀 괜찮다...

통증이 여전히 아프면서도, 나의 하루 전체를 점령하진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나을 것이고, 난 나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으니까.

그보다 더한 감각이 살아있다.

"배고파~~" 먹성 좋은 나는 여전히 먹고자 한다. 하얀 밥 냄새, 며칠 전 겨울 무로 담가 둔 깍두기, 시원한 소고기 뭇국만으로도 밥 한 공기를 더 부르는 유혹에 넘어가기도 한다.


배고픔은 통증과 반대편에 있다. 통증이 멈추면 좋겠지만, 배고픔은 나를 살게 한다.

몸이 아프다는 건 몸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배고프다는 건 몸이 여전히 활동하고 싶다는 뜻이다.

"아프다면서도 잘도 먹네!" 남편 말대로 내가 참 우습다.


그저 아프면 아픈 대로, 고프면 고픈 대로.

한쪽 감각이 지나치게 커질 때, 다른 감각으로 다시 균형 잡아 주면 되는 일인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통증이 내지르는 소리와 배고픔이 올라오는 소리는 동시에 함께 들린다.

어제저녁도 아픈 발을 디디며 밥을 참 맛있게도 먹었다.

그렇게 시간은 한 칸씩 건너가고, 나는 이미 건너편에서 즐겁게 산책을 한다.



글벗 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활기차고 평온한 하루 보내시길 바래요^!^



사진. pixabay.




*영상> 지선 작가 (https://brunch.co.kr/@agriag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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