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짓는 문장 70.
가족의 에너지가
집의 온도를 만든다
A family’s energy
sets the temperature of a home.
부모님 곁에 있지 못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아빠를 기다리던 엄마의 표정도, 복도에 배어 있던 냄새도 알지 못한다.
대신 내가 있는 곳에서 하루의 촘촘한 시간을 살고 있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아빠의 대장 용종을 열한 개나 떼어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놀랄 만큼 차분했다.
수화기 너머의 엄마에게 걱정을 쏟아내지도 않았고, 최악의 경우를 앞서 상상하지도 않았다.
"엄마, 정말 감사하네. 아빠 곁에 엄마가 계셔서!
생각해 보면 엄마가 아무리 바빠도 집밥으로 우리 남매 잘 먹였잖아.
그래서 우리도, 엄마 아빠도 큰 병 없이 잘 살아온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말 한 번 제대로 못 했네. 감사하다는 말도...
엄마, 미안하고 정말 고마워요."
보이지 않는 엄마의 볼이 불그스레 활짝 웃고 있었다.
"우리가 고맙지. 요즘 용종 없는 사람이 어딨대.
다행히 발견해서 잘 떼어냈어. 속이 다 시원하다.
별일 없이 너희들이 건강한 게 효도지. 고맙다!"
활기찬 목소리와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기운과 말이 부모님께 약처럼 작용했다.
걱정과 염려가 전염되듯, 평온과 안정도 그렇게 옮겨 간다.
에너지는 말보다 먼저 느껴진다.
왜 더 빨리 알리지 않았냐고 타박을 하지도 않고 유난도 떨지 않으니, 부모님은 더 씩씩해지셨다.
당분간 아빠가 드실 죽과 이후의 식단에 대해 엄마가 계획한 듯 얘기하신다.
몸 안에서 좋지 못한 것을 떼어냈다는 사실보다,
앞으로의 삶을 더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의지가 말 사이사이에 배어 있었다.
꼭 곁에 있어야만 힘이 되는 건 아니다.
사람은 불운한 형편을 함께 걱정해 주는 말보다, 상대가 지키고 있는 긍정과 평정 속에서 더 빨리 회복한다.
에너지는 대신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 건강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긍정은 긍정의 에너지를 낳고, 부정은 부정의 에너지를 낳는다.
부모님은 지나치게 불안해하지 않았고, 회복의 과정을 지나고 있으며 난 멀리서 그 과정을 지켜본다.
같은 공간에서 곁을 지키지 못한 자식이지만, 같은 방향의 기운 안에 있다.
서로를 신뢰하며 힘을 유지하는 힘.
에.너.지.
보이지 않는 흐름 위에 가족의 사랑과 기도가 든든하게 이어지고 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갈라디아서 6;4~5)
글벗 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충만한 하루 보내시길 바래요!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