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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Nov 30. 2017

이성의 호감을 얻는 방법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후배들에게 조언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근면 성실한 연애를 강조한다. 나의 좌절된 연애 욕구를 대리 해소하려는 게 아니다. 연애야말로 타인의 감정을 읽는 가장 좋은 훈련이기 때문이며, 공감능력은 오늘날의 핵심 경쟁력 요소다. 연애를 하면 파트너의 감정을 파악해야 한다. 때론 나도 모르는 이유로 파트너가 화를 내고 토라진다. 보통의 관계 속에선 ‘난 잘못한 게 없다’고 당당하게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연애 중엔 자신이 지닌 모든 오감 능력을 동원하여 상대가 화난 이유를 찾아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타인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카사노바처럼 직접 경험으로 연애 스킬을 쌓아 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무리다. 때문에 우린 소설을 읽는다. 소설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좋은 교재며, 자연히 연애의 필수 능력인 공감능력도 소설에서 얻을 수 있다. 여러 소설 중에서 단 하나의 연애 교과서를 꼽는다면, 단연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연애라는 사건이 소설의 중심이란 이유도 있지만, 그보단 제인 오스틴이 그려낸 인물들의 생생함과 보편성이 <오만과 편견>을 최고의 연애 교본으로 만들어준다. 게다가 전지적 작가 시점의 목소리가 중간중간 촌철살인으로 연애의 금언들을 쏟아내니, 이 얼마나 훌륭한 교과서인가.


     <오만과 편견>은 여성의 투표권과 상속권이 없던 시절, 계급 사회 영국을 배경으로, 베넷 가의 두 딸 제인과 엘리자베스, 그리고 그들의 파트너 빙리와 다아시의 연애를 그린 작품이다.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은 엘리자베스지만, 우리가 연애 롤 모델로 삼아야 할 인물은 엘리자베스가 아닌, 언니 제인이다. 사실 엘리자베스는 똑똑하고 재기 넘친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이었고, 무식하고 천박한 인간들이 단지 남자란 이유로 용서받는 분위기를 견뎌야 했다. 남자들의 무지를 꾸짖고 화낼 수 없으니, 엘리자베스는 제인 오스틴처럼 냉소와 조롱을 선택했다. 주변 인물을 평가하고 그들의 결점을 찾아내 냉소적으로 조롱했다. 사람 평가는 엘리자베스의 취미였다.


“미처 몰랐는데요.” 빙리가 즉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의 성격을 연구하고 계신 줄은. 그거 아주 재미있겠는데요.”
“맞아요. 그렇지만 사실 재미로 말하자면 복잡한 성격이 제일이죠. 그런 성격을 가진 분들은 최소한 재미있다는 이점이 있으니까요.”
“시골에서는 보통” 다아시가 말했다. “그런 연구의 대상이 별로 없지요. 시골에서 이웃 사이의 모임이란 게 워낙 뻔하고 변화가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워낙 잘 변하기 때문에 새로운 관찰 거리가 끝없이 나타나거든요.” (P.62-63)


     타인을 판단하는 일은 중요하다.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위험한 사람인지, 바보 인지 등등. 하지만 판단은 거의 맞지 않는다. 허영심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허영심은 자기 자신이 타인보다 낫다는 우월감을 느끼고 싶게 만들고, 이 과정에서 상대를 폄하하고 조롱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자신만만한 엘리자베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오만’과 ‘편견’은 하나다. 오만한 마음에 타인을 판단하고, 그 판단이 잘못될 때 편견이 생겨난다. 편견은 다시 자신의 오만함을 굳건하게 만든다. 엘리자베스는 오만했고, 다아시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됐다. 반대로 소설 속 유일한 악역 위컴에게 거의 사랑에 빠질 뻔했다.

 

     섣부른 판단은 항생제 같다. 나쁜 균도 죽이지만 몸에 좋은 균도 다 없애버린다. 잦은 판단 역시 위험한 사람뿐만 아니라, 좋은 이성들도 물리친다. 연애 기회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의식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연애의 고수 제인의 행동을 살펴보자. 엘리자베스와 달리 제인은 판단을 유보한다. ‘성급하게 남을 비난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야’ (p.24)란 말로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열어둔다. 또한 제인은 구조주의자적 성향이 있다. 개인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상황의 힘을 인정한다. 즉, 누구나 상황에 휩쓸려 나쁜 짓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빙리의 태도를 오해해 엘리자베스가 화를 냈을 때도 제인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제발 부탁이니, 리지야.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그 사람한테 실망했다고 말해서 나한테 고통을 주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가 상처를 받은 게 저쪽의 고의 때문이었다고 쉽사리 단정 지을 문제는 아니지.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가 언제나 그렇게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기를 기대할 수도 없고. 대개는 우리 자신의 허영심에 넘어가는 경우도 많지. 여자들은 남자들이 보이는 관심에 대해 과도한 상상을 하곤 하지.”
“남자들이 일부러 그런 상상을 부추기니까.”
“그게 만일 계획적인 거라면 정당화될 순 없지. 그렇지만 난 세상엔 계획해서 되는 일들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P.195-196)


      실제로 제인의 판단은 대부분 맞았고, 똑똑한 엘리자베스의 판단은 틀렸다. 제인은 단순히 착한, 수동적 인물이 아니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했다. 우연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상황에 따라 변하는 한 인간을 거침없이 평가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러한 제인의 태도는 또 다른 연애 고수의 특성을 드러낸다. 침착함과 무심함이다. 제인은 빙리의 호의에도 침착함을 유지한다. 여기엔 두 가지 효과가 있다. 실제로 타인의 호의가 단순한 예의였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상처받을 필요 없다. 동시에 제인의 침착함 앞에서 빙리가 느꼈을 애간장을 떠올려보라. 제인은 의도치 않게 빙리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하나 더. 타인에 대한 판단 착오는 단순한 자기 망신에 머무른다. 잠깐 쪽팔리거나 후회하면 끝이다. 하지만 최악은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 착오다. 이건 타인의 미움을 부른다. 제인이 이성의 호감을 사는 훌륭한 롤 모델이라면, 목사 콜린스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끔찍한 인물이다. 콜린스는 자신의 구혼을 단호하게 거절한 엘리자베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처음 청혼을 받았을 때 거절하는 게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관습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도 여성다운 섬세함을 지키면서 제 청혼에 격려의 말씀을 하신 거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P.156) 콜린스의 머릿속엔 여자가 자신의 구혼을 거절할 거란 옵션이 들어있지 않다.


     제인 오스틴은 콜린스를 ‘오만과 아첨, 잘난 체와 비굴함의 혼합물’(P.101)이라고 표현했다. 콜린스는 매력 없고 무식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게 콜린스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자신을 끔찍하게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 신사의 화려한 언변을 흉내 내는 것만으로, 자신이 귀족 캐서린 드 버그 부인의 후원을 받는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무식함이 다 가려질 거라고 오판한 것이다. 콜린스식 오판은 연애 재앙의 지름길이다. 차라리 무식하고 매력이 없다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게 훨씬 낫다. 콜린스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라 슬프지만, 다행히 캐릭터가 평면적이라 주변에서 분간하기가 어렵진 않다.


     제인의 행동은 이성에게 호감을 얻고, 나아가 훌륭히 연애를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지만, 따지고 보면 연애라는 게 교본을 읽고 배우는 영역이 아니란 점에서, 결국 중요한 건 <오만과 편견>을 읽고, 제인의 행동을 모방하려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책을 덮고 근면 성실한 연애를 위해 밖으로 나가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게다가 사랑만큼 계획의 지배를 받지 않은 감정도 없을테니. 다시가 말하는 사랑의 순간이다.


"시동을 건 시각이라든가, 장소라든가, 표정이든가, 말이라든가 하는 것을 꼭 집을 수는 없어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내가 시작했구나 알았을 때는 벌써 한참 지났더군요." (P.521)


글을 쓰다 보니 허망함이 몰려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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