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추석 차례 지내면서 조상의 음덕을 기리기 위함이란 설명을 들었을 때, 그건 일종의 종교의식적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한 것 외에 내가 무슨 조상의 덕택을 봤으려나 싶었던 거다. 그런데 베르사유 궁전에 와보니 조상의 음덕까진 아니더라도 아버지 할아버지의 음덕이란 건 꽤 합리적인 설명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베르사유 거울의 방은 아마 프랑스, 아니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방일 텐데,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기획 의도가 다른 성보다 더 화려하게'였고, 이 방은 그중에서도 최고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방의 화려함을 찬찬히 둘러보고 있으면, 우선 루이 14세가 펑펑 돈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물려준, 루이 13세가 떠오른다. 프랑스의 틀을 잡은 리슐리에 추기경을 만약 루이 13세가 알아보지 못하고 등용하지 않았다면, 어머니 마리 드 메디치와 리슐리외가 충돌했을 때 어머니 손을 들어줬다면, 이 방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동시에 루이 16세 입장에서 보면, 할아버지 루이 14세가 거울의 방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지 않았다면, 아버지 루이 15세가 조금이라도 나라를 돌보려는 에너지가 있었다면, 손자의 목이 단두대에서 날아갈 일도 없지 않았을까. 거울의 방은 아버지 할아버지 잘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상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