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체류증 갱신 약속을 오전 11시 반으로 잡았을 때, 우린 오래간만에 시테섬에서 점심을 먹자는 약속을 잡았다.(체류증 발급해 주는 경시청이 시테섬에 있다) 체류증 수령하면 연락하겠다던 아내는 2시간쯤 지났을 무렵, 줄이 전혀 줄지 않는다며 각자 알아서 점심을 해결하자고 카톡이 왔다. 결국 아내는 3시간이 넘어서 체류증을 받았다. 대기 시간이 3시간 가까이 됐을 때, 아내는 번호표를 받은 뒤, 잠시 의자에 앉아 대기할 수 있었다는데, 그 순간이 그렇게행복할 수 없었다고 했다. 고통을 통해 위안을 주는 전형적인 프랑스식 힐링. 메멘토 프랑키아. 네가 프랑스에 있음을 명심하라. 프랑스는 한순간도 이방인의 방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잊을만하면 프랑스식 골탕을 먹이며 긴장을 일깨운다. 얼마 전엔 아마존 배송을 찾기 위해 아파트 전체를 뒤졌으며(배송 완료 문자와 사진을 받았는데 배송이 안 옴), 마트에선 무인계산기 오작동으로 수십 개 제품의 바코드를 세 번이나 다시 찍어야 했고(오작동을 체크해 줄 직원을 기다리는데 시간이 또 꽤 걸림). 퇴근길엔 럭비 월드컵 경기로 내려야 할 역에 지하철이 서지 않아 집에 걸어왔다. 씩씩거리며 역사를 나서는데 히볼리가의 야경이 마치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이런 우아한 도시에서 이 정도의 풍경을 보며 사는데 그 정도 거주비는 내야 하지 않겠어? 정말 세상에 공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