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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Dec 28. 2018

마흔을 앞둔 사람들의 헛헛함을 달래는 방법

패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서른이 됐을 때 읽지도 않을 책,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를 구매하며 나름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 서른이 될 때 마음의 동요는 없었다. 그런데 마흔은. 다르다. 육체적인 노화가 체감된다. 정신적으로 유연성이 떨어짐을 인지한다. 젊은 시절의 내가 싫어했던 모습들이 내 안에서 하나둘 발견된다. 다시 말해 나이 마흔은 한 인간의 변이가 뚜렷하게 확인되는, 그 변환점에 자리 잡은 숫자다. 나이 마흔이 가져다주는 충격은,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 사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더 이상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한때 내가 나라고 믿었던 사람의 모습은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자기 계발서의 시대인지라, 자기 계발서의 생각이 원래 내 생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마라. 현재에 충실해라. 미래를 고민해라.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회한은 지극히 비생산적인 감정이다. 미래는 오지 않은 시간이다. 현재의 선택이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현재는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는 게 개미와 베짱이 우화에서부터 배웠던 삶의 기본 세팅값이다. 그나마 이런 패러다임을 극복하려는 게 현재에 집중하라는 충고다. 그 어디에도 과거를 위한 자리는 없다. 시선을 현재와 미래에만 둔 채 살아가다 보니, 내가 지금 어디쯤 어떤 인간이 되어 살아가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노벨상 수상자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플롯은 본 시리즈와 비슷하다. 기억을 잃은 사설탐정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난다. 그 과정에서 단서가 될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소설은 서서히 주인공 기의 기억에 다가간다. 얼핏 들으면 그 자체로 흥미로운 플롯이지만, 정작 모디아노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 그의 모습은 단순히 극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설정인가. 아니면 시간의 굴레 속에서 하루하루 늙어가는 인간들의 은유인가. 마흔을 앞둔 독자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기의 여정 속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투영한다.     


 그가 나에게 동정심을 갖게 된 것은 그 역시-나중에 안 일이지만-자신의 자취들을 잊어버리고 생애의 한 부분이 단 한 가닥의 실마리도, 아주 작은 연결점도 남기지 않은 채 문득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과연 헐어빠진 외투를 입고 검고 뚱뚱한 서류 가방을 든 채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는 저 피로한 늙은 남자와 왕년에 테니스 선수였던, 콘스탄틴 폰 위트라는 이름의 미남 금발머리 발티크 남작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단 말인가. (P.14)     


    흥미로운 건 단서가 될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이다. 대부분 초콜릿이나 비스킷의 낡은 상자 하나 분량이다. 사진 몇 장과 신문 기사 등이, 한 인간의 일생이 남긴 전부다. 탐색 과정 도중 기는 흥신소를 통해 인물들의 정보를 받는다. 생년월일, 국적, 주소, 결혼 여부, 체류 허가증, 자녀 등. 한 인간의 삶이 건조한 흥신소 보고서 자료로 변환되니, 원래 인생이란 이토록 단조롭고 허무한 것인가 싶다. 그 마저도 화재 등으로 소실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모디아노의 표현처럼 대다수 인간들의 삶은 ‘수증기만큼의 밀도도 지니지 못했다’ (P.75) 이미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수증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마흔의 나도 언제까지 남아있을지 모른다.     


그는 상자를 집어서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스티오파 드 자고리에프와 그 역시 나에게 주었던 빨간 상자를 생각했다. 결국 모든 것이 초콜릿이나 비스킷의 낡은 상자들 속에서 끝장이 나는 것이었다. (P.99)     


    결국 과거보다 현재 혹은 미래를 바라보라는 말들이 문제였다. 오로지 생산성의 기준에서 재단한 평가일 뿐이다. 어찌나 세상이 내 인생에 드라이브를 걸었던지, 정신없이 휩쓸려왔다. 때문에 서른셋의 나, 혹은 서른다섯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심지어 서른여덟의 나도 흐릿하다. 과거에 좀 더 머물러 있었어야 했다. 마치 매일 몸무게를 기록하다 보면, 몸무게 증가 추이가 한눈에 보이듯, 매 해 나의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면, 서른 하나의 나와 마흔의 내가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쳐 달라져 왔는지 알 수 있다. 어찌나 인생이 저녁 속으로 빨리 사라지는지, 집착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금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속으로 과거는 사라지고 만다.   

  

 우리는 어쩌면 마침내 증발해버릴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창유리를 뒤덮고 있는 저 수증기, 손으로 지울 수도 없을 만큼 끈질긴 저 증기에 불과한 존재가 될지도 몰랐다. (P.227)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난 후 (나는 신부님에게 내가 사설탐정 노릇을 했었노라고는 감히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나는 원천으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P.183)    


    얼마 전 서점에 갔다 제목만 보고 책을 샀다. (내겐 매우 드문 일이다)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과연 내 전성기는 언제일까. 이미 지나갔을까. 혹은 아직일까. 아니면 지나가고 있을 지도. 아직 안 왔다면 다행이지만 이미 지나가버렸다면, 더더욱 좋았던 그 시절을 떠올려야 한다. 과거를 바라봐야 한다. 물론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는 건 비생산적이다. 하지만 행복한 일이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서 과거를 추억하는 경마 기수가 등장하는데, 그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과거를 떠올리는 것도 에너지가 있어야, 삶에 애정이 있어야 그나마 가능한 일이다.     


 그는 이제 막 엄청난 육체적 노력을 해주었다는 듯이 숨을 내쉬었다. 그는 프레디와 게이 오를로프가 종교 결혼을 한 그날, 햇빛과 천진난만한 기분이 넘치던, 아마도 우리들 젊은 시절의 가장 선택된 날이었던 그 하루를 되살려내느라고 기진맥진해 있는 듯 했다.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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