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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Aug 15. 2017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을 극복하는 방법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문학동네 전집으로 재출간 돼 다시 읽은 커트 보니것(보니것이라니!)의 <제5도살장>. 2차 세계대전, 그 중에서도 드레스덴 폭격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이야기 방식이나 전개가 꽤 뒤죽박죽인 편이다. 이는 드레스덴 폭격을 소설로 옮기는 방식에 관한 커트 보니것의 오랜 고민과 관련있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같은 논픽션이 있는 상황에서, 소설이 어떻게 아우슈비츠의 비극적 체험을 다뤄야 하는가는 늘 어려울 수밖에 없는 문제다. 소설 1장엔 그 고민이 잘 드러나 있고, <제5 도살장>식 소설이 나올 수밖에 없던 이유가 소개돼있다.       


책이 너무 짧고 뒤죽박죽이고 거슬리네요, 샘. 대학살에 관해서는 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지요. 원래 모두가 죽었어야 하는 거고, 어떤 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거고, 다시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야 하는 거지요. 원래 대학살 뒤에는 모든 것이 아주 고요해야 하는 거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새만 빼면.그런데 새는 뭐라고 할까요? 대학살에 관해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지지배배뱃?”같은 것뿐입니다. (P.33)                          


그러니까 <제5도살장>은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해 탄생한 걸작이다.


      커트 보니것은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기 위해 두 가지 장치를 고안해낸다. 먼저 주인공 빌리 필그림의 시간을 풀어버린다. (실질적인 소설의 첫 문장이다. 들어보라: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풀려났다.) 이제 그는 자유자재로 인생의 시간을 옮겨 다닐 수 있다. 한 마디로 현실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 두 번째는 외계인 트랄팔마도어인의 소환이다. 빌리 필그램의 시간 탈출은 기껏해야 자신의 2차원적 인생에 국한된다. 하지만 트랄팔마도어인은 우주의 탄생에서 멸망에 이르는 시간을 파노라마 사진처럼 한 눈에 볼 수 있다. 덕분에 독자도 시간에서 해방되어, 3차원적 관점에서 드레스덴 폭격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자 이제 트랄팔마도어인의 시각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인가.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P.82)                                   

아내가 좋아하던 이 기도문 다음에 바로 이런 문장이 이어진다.                    

 빌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었다. (P.82)
                                  

     <제5도살장>은 단순히 인간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반전 소설이 아니다. (그런 요소도 있지만) 오히려 트랄팔마도어인의 시각을 통해 주인공 빌리 필그림이 처한 현실을, 즉 인간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보여준다. 뭔 말이냐면 이런 거다. 빌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전부(과거, 현재, 미래)였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헛소리다. 종교도 크게 기댈 곳이 못 된다. 인류가 기대던 복음서의 교훈은 결국 ‘어떤 사람을 죽이기 전에 반드시 그가 연줄이 시원찮은지 확인해라(P.140)'라는 메시지에 불과하다. 커트 보니것은 지독하게 냉소적이다. 때문에 흥분하지 않는다. 바꿀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소설 속에서 같은 말을 106번이나 반복한다. 

 '뭐 그런거지'(so it goes)


     그럼 어떻게 살아야한단 말인가. 이 난감함에서 보니것은 트랄팔마도어인의 입을 빌려 ‘구조화된 순간(structured moment)’이란 난해한 용어를 가져온다. 물론 작가의 친절한 비유가 뒤따른다. ‘그녀는 아기를 한쪽 젖에서 다른 쪽 젖으로 옮겼다. 그 순간은 그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구조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P.257) 한쪽 젖이 비면 다른 쪽 젖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니까 시간 여행으로 다시 되돌아가도 피할 수 없는 순간이 바로 구조화된 순간이며, 2차 세계대전과 드레스덴 폭력도 인류의 구조화된 순간 중 하나다. 구조화된 순간의 연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뭐 그런거지’밖에 더 있겠는가. 바로 여기서 '뭐 그런거지'에 대한 대응법이 시작된다.  아래는 트랄팔마도어인이 빌리에게 전하는 지혜다.

                            

 “우리는 기분좋은 순간들을 보면서 영원한 시간을 보냅니다-동물원의 오늘처럼 말입니다. 지금은 멋진 순간 아닌가요?”
“그렇죠”
“그게 지구인이 배울 수도 있는 점 한 가지입니다. 열심히 노력한다면요. 끔찍한 시간은 무시해라. 좋은 시간에 집중해라.” (P.151)     

                              

    ‘뭐 그런거지’의 결론은 허무가 아니다.  트랄팔마도어인의 지혜는 니체가 말했던 운명애와 커트 보니것이 만나는 지점이다. 물론 보니것은 니체보다 훨씬 더 휴머니즘에 가깝다. 시간에서 해방된 빌리 필그림은 매사에 무덤덤하다. 시간 여행을 통해 내내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빌리가 단 두 번 감정적으로  격해진다. 한 번은 ‘영원히 안녕. 오랜 동료들과 아가씨들. 영원히 안녕. 오랜 연인들과 친구들-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P.215) 이란 4중주단 노래의 가사를 듣던 순간. 노래 가사가 곧 드레스덴 폭격 직후 고기 창고에서 처음 밖으로 나왔던 네 명의 독일 경비병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네 명의 독일 생존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의 풍경 앞에서 느꼈을 감정과 노래 가사가 맞닿았던 것이다. 


      다른 한 번은 드레스덴 폭격 직후 땅을 파고 시체를 수거하던 때다. 마치 무거운 짐을 끄는 말 앞에서  펑펑 울었던 니체처럼, 빌리 역시 수레를 끌던 말의 상태를 확인하고 전쟁 내내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말은 입이 재갈에 찢겨 피가 흐르고 있었고, 발굽이 깨져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이 고통이었고, 목이 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그들의 운송 수단을 6기통 쉐보레 자동차처럼 다루고 있었다. (P.245)                                   

 

결국 뭐 그런거지에서 시작한 보니것이 도착한 귀착점은 공감이다.  커트 보니것 스타일의 '뭐 그런거지'식 휴머니즘이랄까. 예전에도 그랬지만 <제5도살장>을 읽으면 평정심과 뜨거움이 동시에 솟구친다. <제5도살장>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제5도살장>이란 점은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주요 이유 중의 하나이며, 우리가 아직까지도 별 탈 없이 살고 있는 배경이기도다. 뭐 그런거지의 관조를 갖되, 타인에 대한 공감을 잊지 말고 현실에 집중할 것! 어렴풋하게나마 아내와 난 커트 보니것의 정신을 배우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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