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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Jun 04. 2024

초등 퇴직교사 분투기

16회: 탁구 수업 실패記

2022년 3월 말이었다.


교직 마지막 학교 이동이라고 생각한 00초에서의 기억이다. 4학년 담임과 생활부장을 희망했다. 생활부장은 기피하는 보직이니 쉽게 맡을 수 있었다. 4학년 담임은 21년 코로나 시기를 잘 보냈기에 같은 학년을 연이어 맡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작년처럼 수월하게 4학년 담임 역할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다. 아이들도 22명이라 많지 않았다. 또한 학교가 위치한 지역은 30년 전 근무했던 **초등학교가 인근에 있어 익숙하기도 했다.

근처에 중고등학교와 대학교가 있어 학습 환경도 좋은 편에 속한다. 또한 집에서 걸어가면 20분 정도로 출퇴근하기도 용이하고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학교와 집을 왕복하면 하루 운동이 가능한 거리였다.

33년 차 교사로 5년을 근무하고 정년퇴직하면 딱 좋은 학교였다.


개학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3월 말... 드디어 아이들에게 <아침 탁구스포츠클럽> 가정통신문을 배부했다. 득의양양하게 지난 학교에서 했던 내용을 수정하여 참가 신청서를 나누어주었다. 학교폭력예방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고 담당교사의 지도를 성실히 따르며 학교 생활도 모범적으로 할 것을 학생과 보호자 모두 동의하는 사인을 받는 조건으로 스포츠 클럽에 가입하는 내용이었다.

한 학년에 2 반인 00초 4학년 학생들 16명이 가입했다. 그중 내가 맡았던 1반은 20명 중 12명으로 작년 담임으로부터 ADHD 성향이 있는 학생, 약간 반항적인 학생, 리틀 야구 클럽 학생 등이 가입했다. 관련 예산을 신청하고 학교장 결재를 받아 의욕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완벽히 실패했다.


5월 말 서울시교육청 학교스포츠클럽 탁구대회에 참가신청을 했기 때문에 급했다. 탁구를 처음 접해본 4학년 학생들을 시합에 참가시키려면 매일 훈련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오후에 학원에, 방과 후 수업에 바쁘기 때문에 결국 아침 운동으로 실시했다. 매일 7시 50분까지 학교 체육관에 모이도록 하고 8시 40분까지 탁구를 하고 교실로 향했다. 담임인 나도 바쁘고 아이들도 매우 분주했다. 9시에 시작하는 1교시는 수업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다. 당연히 교실 수업 분위기도 안정되지 않았고 방금 운동을 마친 12명의 아이들은 땀이 흘러 수업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5월 말 서울시교육청 스포츠클럽대회에 참가했다. 서울시 전체에서 5개 학교만 신청했다. 과거 축구클럽대회만 출전했던 나는 탁구스포츠클럽대회는 처음이었다. 5개 학교가 전부 패해도 공동 3위를 하는 대회이다. 학생들이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므로 참가 학교 모두에게 시상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결국 2달 동안 연습하고 참가했으므로 전패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매주 토요일 전문 탁구 코치를 불러 시합 레슨을 하고 시합에 참가했다. 긴장된 마음과 잘하고 싶은 욕심과는 달리 4번의 시합은 한 게임도 승리하지 못한 채 패했다. 6월 중순, 스포츠클럽대회가 마무리되고 학급 관리를 잘해야 하는 담임교사의 희망과는 달리 아이들은 탁구를 재미 삼아 더 즐기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 부분이 아이들과 담임교사가 멀어진 계기였다. 운동 욕심이 왕성하고 승부욕이 강한 ^^이는 점점 담임에게 반항적이 되어갔고 심지어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씨발, 담임이면 다야!" 하면서 욕을 하기도 했다. 프로야구 선수가 희망인 @@이는 온갖 기괴한 장난으로 수업 분위기를 흐리고 있었고 여학생인 &&이는 적극 동조하고 다른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방법으로  암묵적으로 합세했다.


9월이 지나고 10월이 지나면서 과학 실험과 도서실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 @@, &&이의 장난은 끝이 없었다. 호소를 해보아도, 혼내기도 했지만 창피함에 학부모들에게는 한마디도 가정지도를 부탁하지 않았다.

나의 자존심이었나 보다. 그러나 자존감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명예퇴직이었다.


11월이 되면서 더 이상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의 희망과 달리 아이들이 예쁘지 않았다.

결국 11월 중순 병가를 들어가면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그러나 2024년, 명예퇴직을 했던 00초에서의 완벽한 실패는 새로운 탁구 수업의 시작이 되었다.


*작년 이런 감정을 쓴 글이다.

붓다빅퀘스천 15 김태형 소장, 자신감보다 자존감이 필요한 사회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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