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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Jun 18. 2024

초등학생이 반드시 들어야 할 클래식 음악 36

4회: 우리나라 클래식 작곡가 윤이상

우리나라 클래식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을 아시나요? 윤이상은 1917년에 태어나 경남 통영에서 활동하다가 1957년 서양 음악을 공부하고자 독일로 유학, 세계적으로 성공한 우리나라의 클래식 작곡가입니다. 특히 1972년에는 올림픽 개막 기념으로 오페라 '심청'을 작곡하여 연주했습니다.

윤이상은 1966년 '예악(禮樂)'이라는 곡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예악'은 조선 역대 왕의 제사 음악인 '종묘제례악'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작곡한 곡입니다. 서양의 클래식 음악 평론가들은 윤이상의 음악을 "한국의 사상과 음악 기법을 서양 악기로 풀어냈다"며 큰 인정을 하게 됩니다. 또한 "동양과 서양의 음악을 통합시킨 다리의 역할을 했다"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예악'을 듣다 보면 서양 악기로 연주하지만 한국이 전통악기 소리를 듣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먼저 음악의 처음과 끝에 '박(拍)'이라는 우리의 전통 악기를 사용합니다. '박'은 한국의 궁중음악에서 시작과 끝을 나타냅니다. 그럼 윤이상의 '예악'을 들어봅시다.


[고화질] 윤이상 예악 공연 종묘제례악과 오케스트라가 만났다? 알쓸신잡 소개되었던 예악 공연의 원본화면 (youtube.com)


앞에서 '예악'은 조선시대 왕들의 제사 때 쓰인 '종묘제례악'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음악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선의 역대 왕들은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위해 '종묘'라는 일정한 공간에 모셔져 있습니다. 그럼 '종묘제례악'이 무엇이고 역사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봅시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는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나라 조선왕조(1392-1910)의 왕실 사당인 종묘(宗廟)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노래와 춤이 포함된 의식음악을 ‘종묘제례악’이라 한다.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8년 유네스코 선정 인류무형유산에 지정되었다. 종묘라 하면 정전(正殿)을 지칭하는 것이나 사실은 그 서편에 조묘(祧廟)인 영녕전(永寧殿)이 있어 두 사당으로 이루어졌다. 종묘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도 있었으나 음악을 제향에 사용하기는 고려 초기 숙종 무렵이다. 이 때의 음악이 어떠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 뒤 송나라에서 대성아악(大晟雅樂)이 들어와 1116년(예종 11) 10월부터 아악이 사용되었으나 체계가 갖추어진 것이 못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것을 답습하다가 1395년(태조 4) 11월 고려의 옛 제도를 바꾼다는 원칙 아래 종묘악장(宗廟樂章)을 고쳤으나 그 음악에 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1405년 4월에 조묘(祖廟)·사직(社稷)·문묘(文廟) 등 배신(陪臣)의 제복(祭服)과 악기 등이 모두 낡아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다음해 7월에 내사(內史) 박린(朴麟)과 김희(金禧) 등이 중국으로부터 악기를 들여와 그 해 10월부터 종묘에서 사용하였다.

1425년(세종 7) 세종은 이조판서 허조(許稠)에게 “우리는 향악(鄕樂)을 익혀왔는데 종묘에 먼저 당악(唐樂)을 연주, 초헌·아헌을 한 다음 종헌에 이르러 향악을 연주하니 조상들이 평소에 듣던 음악을 쓰는 것이 어떠한가.” 하였고, “아악은 본래 우리 나라 음악이 아니므로 평소에 익히 듣던 음악을 제사용으로 쓰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은 살아서 향악을 듣다가 죽으면 아악을 연주하니 어찌된 까닭인가.” 하여 음악의 모순을 힐문하기도 하였다.

≪세종실록≫ 권 138에 의하면 국초(國初)에 여러 곡이 지어졌으나 모두 한 가지 일을 주장한 것으로, 조종(祖宗) 공덕의 성대함과 초창(草創)의 어려움을 형용하기에 부족하다 하여 세종이 고취악(鼓吹樂)과 향악에 바탕하여 <정대업 定大業>·<보태평 保太平>·<발상 發祥>·<봉래의 鳳來儀> 등 신악(新樂)을 창제하였다는 것이다. 그 중 <정대업>과 <보태평>은 1447년에 회례악무(會禮樂舞)로 창제되었고 아직 종묘제례악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정대업>은 15성(聲, 曲)이고 <보태평>은 11성인데, 이 두 곡은 세종이 친히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절(節)을 만들고 하루 저녁에 지어, 수양대군이 여기(女妓) 10명으로 하여금 금중(禁中)에서 익히게 하였다고 한다.

1460년 세조는 “세종이 제정한 악무(樂舞)가 쓰이지 않고 있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은가.” 라고 하면서 <정대업>·<보태평>이 그 음악의 성대함과 용장(勇壯)함에도 불구하고 종묘에 쓰이지 않으니 애석하다 생각하고, 최항(崔恒)에게 명하여 세종 때의 가사의 뜻은 그대로 두고 이를 간추려 새로 짓게 하여 이에 따라 그 곡조도 축소되었다. 이와 같이 세종 때 회례악으로 만든 <정대업>과 <보태평>이 다소의 개정을 거쳐 1464년 이후 종묘제례악으로 정식 채택된 것이다.

선조 때에는 임진왜란으로 음악이 약화되었으나 광해군 때에 점차 복구되었다. 1626년(인조 4)에 <보태평> 중 정명장(定明章) 다음에 광국중흥(光國中興)의 위업을 이룩한 선조의 실(室)에 새로 지은 중광장(重光章)을 삽입하였다. 악보는 ≪세종실록≫ 권138, ≪세조실록≫ 권48, ≪대악후보 大樂後譜≫ 권2, ≪속악원보 俗樂源譜≫ 권1(仁)·권6(信) 등과 현행 악보에 전하여 온다.

조선 초기 종묘제례악의 악장(樂章)은 고려시대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4자(字) 1구(句), 8구 1장(章)의 정제된 정형의 한시(漢詩)였다. 그리고 그 행례에 있어서도 고려시대의 것과 같이 각 실에 각기 다른 악장을 사용하였고, 오늘날에 보듯 제실(諸室)에 통용하는 악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태평>과 <정대업>이 아악풍의 고정된 시형이 아니고 비교적 불규칙한 시형으로 바뀐 것은, 본디 제사의 악장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고 회례연의 악장으로 지어진 때문이다. 그 뒤 세조 때 세종이 만든 <정대업>·<보태평>이 그 가사의 자구(字句)가 많아서 짧은 제의(祭儀)에 다 불리기 어려우므로 이것을 많이 축약하고, 그 위에 악장이 없던 진찬(進饌)·철변두(徹籩豆)·송신(送神) 등은 최항이 새로 지어 종묘 악장이 고루 갖추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종묘제례악'은 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음악입니다. 서양 클래식 음악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영상으로 알아봅시다.

[ENG SUB] [UHD 한국의 인류유산] 노(老)악사들이 피눈물로 지켜낸 조선의 자존심, 종묘제례악 (KBS 210301 방송) (youtube.com)

이번에는 '종묘제례악'을 들어봅시다. 맨 처음 '박'으로 시작합니다. 이후 노래와 여러 가지 악기들이 저마다의 소리를 냅니다.

종묘제례악 5분 하이라이트 (youtube.com)


마지막으로 윤이상이 작곡한 '예악'을 세계적 지휘자인 정명훈과 KBS의 연주로 들어봅시다.

KBS교향악단(KBS Symphony Orchestra) - Isang Yun / Réak / KBS19980225 - YouTube

*참고 

전통타악기 '박'을 소개한 영상

타악기를 잡아라- 박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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