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스탄, 돌 위에 세운 믿음의 나라
'돌의 나라.'
아르메니아의 첫인상은 이름처럼 묵직하고
고요했다.
오늘 우리는 세바나방크 수도원을 향해
길을 나섰다.
산 너머, 멀리 수평선 같은 능선 위로 신화 속의
거대한 신이 몸을 눕힌 듯, 아라라트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발 5,137미터, 눈부신 햇살 아래 그 봉우리는
장엄했다.
날씨가 좋을 때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니,
오늘이 선물처럼 느껴졌다.
아르메니아는 내륙에 갇힌 나라다.
왼쪽은 터키,
아래는 이란,
위는 조지아,
오른쪽은 아제르바이잔.
정치와 종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네 나라에 둘러싸인 작은 몸짓으로 존재해 왔다.
그래서 바다가 없다.
대신 호수가 바다처럼 살아 숨 쉰다.
바로, 우리가 향하는 곳, 세반 호수.
이 나라는 남한의 3분의 1 정도 크기,
인구는 300만 명 남짓, 그 절반 이상이 수도,
'예레반(Yerevan)'에 살고 있다.
그 도시 역시 돌로 지어졌다.
연분홍 빛의 현무암, 트러페이놀라이트
(투파석)가 거리를 물들인다.
하지만 아르메니아는 결코 작지 않았다.
고대 왕국의 기품과, 수천 년 역사를 머금은
교회의 종소리,
신화와 전설이 살아 숨 쉬는 풍경이 있다.
그 속에 나는 지금 서 있다.
세상에는 자국을 부를 때 외부와는
다른 이름을 쓰는 나라들이 있다.
아르메니아도 그중 하나다.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하야스탄(Hayastan)’이라고 부른다.
그 말에는 민족의 자긍심과 수천 년을 이어온
' 선민의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르메니아는 기독교 국가로서 세계 최초로
국가 종교로 '기독교'를 수용한 나라다.
조지아보다도 앞서, 301년,
두 사도 중 한 명인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와 다다에 우스(Thaddaeus)'가
이 땅에 복음을 전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이곳은 로마 제국보다도 먼저,
자신들의 국가를 그리스도의 나라로 선포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의 기독교는 우리가 아는 ‘동방정교회’ 혹은 ‘로마 가톨릭’과는
조금 다르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라는 독립적인 형태로
신앙을 이어가고 있으며,
예전부터 유대교와 닮은 점도 많아,
의식과 전통, 그리고 공동체의식 안에
유사성이 느껴진다.
이들은 때로는 '디아스포라(Diaspora)'처럼
흩어졌고, 때로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국경
밖으로 밀려났다.
원래 아르메니아인의 삶터는 지금의
터키 동부까지 뻗어 있었지만,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에 의해 강제로 쫓겨났고,
역사 속 가장 아픈 기억 중 하나인
'아르메니아 대학살(1915년)'을 겪었다.
터키와는 지금도 화해하지 못한 과거를
안고 있다.
반면, 이란과는 오래도록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 종교는 다르지만, 역사적 상호 이해와
관용 속에서 경계를 넘는 우정을 키워왔다.
이 땅은 돌이 많다.
그 돌 위에 믿음을 세웠고,
그 믿음은 나라를 지켜주는 뿌리였다.
작고 가난한 나라, 그러나 영혼은 가장
깊은 곳에서 빛나는 '하야스탄(Hayastan)'.
그것이 아르메니아의 진짜 이름이다.
https://suno.com/s/SqBcXBxmXh9rVJJ0
돌 위에 세운 믿음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1절)
하야스탄, 바람이 불어도
돌 위에 세운 그 기도는 남았네
세월을 지나 피 흘린 자리에도
십자가는 꺾이지 않았네
산과 돌이 지켜낸 말
예언자보다 먼저 운명처럼 새긴 믿음
이 땅의 눈물, 이 땅의 불꽃
영혼으로 타오르네
아르메니아, 너는 기억의 불빛
수천 년 흐름 위에 우뚝 선 이름
돌 하나 위에, 마음 하나 올려
우린 다시 노래하네, 믿음의 나라여
(2절)
사라진 왕조, 무너진 성벽도
성 니노의 십자가만은 빛나네
검은 땅 위 성자들이 남긴 말
그 고요 속에 하늘이 들리네
무너져도 다시 일어선 이유
하야시탄의 피는 성전이니까
눈동자처럼 지켜낸 그날
지금도 가슴에 흐르네
아르메니아, 너는 영혼의 성전
절망도 무릎 꿇은 고요한 확신
돌로 쌓아 올린 마음의 탑 위
하나님을 품은 땅, 믿음의 나라여
십자가는 깃발이 되고
고난은 찬송이 되니
우린 다시 걷는다
성스러운 그 이름 따라
아르메니아, 하야시탄이여
돌보다 단단한 기도 위에 서리라
끝없는 역사 위에 새겨진 노래
믿음으로 빛나는 나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