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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니안 분출

by 콩새작가 Dec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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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남은 연차를 소진하기 위해 친구들과 일본, 가고시마에 왔다.

오늘따라 비가 내린다.

화산재와 비가 섞여 호텔 건물 외관이 지저분해 보였다.

이런 현상은 화산 활동 지역에서 흔히 관찰되는 문제점 중 하나다.

특히 화산재는 미세한 입자로 이루어져 있어 비에 젖으면 벽, 창문, 차량 등에 달라붙어 청소가 어려운 상태가 된다.

 가고시마에는 사쿠라지마(Sakurajima) 화산이 있다.

 사쿠라지마 활화산은 과거 여러 차례 격렬한 분출을 일으키며 일본지역과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사쿠라지마는 1914년에 대규모 분출을 일으키며, 용암이 흘러나와 사쿠라지마가 본토와 연결이 되었다.

가고시마 주민들은 화산과 함께 살아가며, 자연재해에 대한 대비와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사쿠라지마는 오늘날에도 활동 중인 활화산으로, 꾸준히 소규모 폭발을 일으키며 화산재와 가스를 분출하고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가고시마의 활화산을 목격하면서 이탈리아 '플리니안 분출'이 떠올랐다.

 서기 79년,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도시, 폼페이 헤르쿨라네움을 포함한 여러 도시들을 화산재로 파괴한 대규모의 화산 분출 사건이 있었다.

사건은 로마 제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재해였다.

 화산 폭발과 그로 인한 화산재, 돌, 가스 등의 분출로 주변 도시를 완전히 매몰시켰.

화산 폭발은 갑작스러운 분출 당시의 로마인들은 이 화산이 활동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같은 도시는 몇 시간 만에 화산재와 뜨거운 가스에 휩싸였고, 많은 사람들이 질식사하거나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베수비오 화산 폭발 막대한 양의 화산재, 화산가스, 그리고 암석 조각들이 대기 중으로 빠르게 분출되었다.

 베수비오 화산의 분출을 기록한 고대 로마의 학자, 플리니우스 편지에 상세하게 묘사한 덕분에 후대에 잘 알려졌다.

플리니우스와 동명이인이었던 그의 외삼촌이었던 대 플리니우스(Plinius Maior) 장군죽음으로 잘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이름을 따서 '플리니안 분출'(Plinian eruption)

이라고 불린다.

 플리니우스는 베수비오 화산 분출 당시의 상황을 역사가였던 타키투스에게 알리기 위해 편지를 썼다.

발 당시 나폴리만 건너편에 있는 도시, 미세눔에서 베수비오 화산 폭발을 목격했던 상황을 장황하게 기록하여 보냈다.

첫 번째 편지에서는 그의 외삼촌, 대 플리니우스가  미세눔(Misenum)에서 베수비오 산의 이상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던, 외삼촌 친구의 요청으로 구조 활동에 나섰다가 화산재와 유독 가스로 인해 질식으로 사망했던 과정을 설명하였다.

두 번째 편지에서는 자신이 미세눔에 남아서 그의 어머니와 함께 겪었던 공포와 혼란을 생생하게 전하면서, 도시가 지진과 화산재로 인해 파괴되는 모습을 기록했다.

이러한 편지들은 당시의 재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료로 평가받게 되었다.

플리니우스도 삼촌을 따라서 함께 조사하러 가고 싶었지만, 대 플리니우스 삼촌의 만류도 동석하지 못하고 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던 것이다.

만약에 그때 외삼촌을 따라서 같이 갔다면 이러한 귀중한 자료는 후대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화산 폭발은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높이까지 검은 구름을 뿜어내며 하늘을 뒤덮었고, 사람들은 극도의 혼란과 공포 속에서 피난하려고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은 수 세기 동안 잊혔다가 18세기에 들어서서야 발굴되기 시작하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당시 로마인의 생활상이 잘 보존된 유적들이 세상에 드러났다.

 화산폭발은 대량의 화산재와 가스를 생성하며  성층권까지 도달하면서 햇빛을 차단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지구의 온도를 일시적으로 낮추게  되고, 소빙하기와 같은 기후 변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플리니안 분출은 화산 주변 생태계를 단기적으로는 파괴했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토양의 비옥도를 증가시켜, 생태계 복원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대 플리니우스는 화산 활동으로 인해 질식사했지만, 그의 죽음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과학적 탐구와 구조 활동에 헌신한 결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플리니우스의 행동은 자연재해를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닌 연구와 이해의 대상으로 삼은 초기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오늘날 화산 분출의 유형 중 하나인 '플리니안 분출'이라는 명칭은 그를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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