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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Nov 30. 2021

시시포스로부터

  추적추적 마지막 가을비가 내리는 11월 마지막 날 아침, 보육실에서는 아이들이 부르는 '루돌프 사슴코'라는 12월 성탄맞이 노래로 활기가 넘친다.

  "그 후론 사슴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네. 루돌프 사슴코는 길이길이 기억되리~~~".

  어떤 교실에서는 보육교사의 피아노 소리에 맞춰 성탄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어떤 교실에서는 화음을 이루는 캐스터네츠 소리가 들려오고, 어떤 교실에서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어떤 교실에서는 까르르까르르 웃는 소리가 담장을 넘긴다.

  아이들이 즐거운 생활을 하는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보육교직원들은 대부분 매일의 일과가 365일 거의 비슷하게 진행된다. 원장의 상황, 보육교사의 상황, 보조교사의 상황, 조리사의 상황에서 모두 다 같은 일에 종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야를 세분화해서 들여다보면 업무마다 특색이 다른 직군에 속해서 각자 주어진 역할을 한다.

  대부분은 보육 위주의 비슷한 일을 하지만 개인마다 일에 대한 가치관이 다를 것이고, 직업에 대해 마음자세를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일에 대한 가치와 긍지와 보람도 다르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어린이집 운영관리가 주요 업무이면서 쇠똥구리처럼 어깨 위에 책무성을 이고 지고 다니는 원장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대해 나는 어떤 가치를 두고 살고 있는지 가끔씩 생각하게 된다. 

  그저 한 달 동안 근무 잘해서 월급을 받는 것에 급급해하며 하는 일인지, 아니면 한 번 사는 인생에서 조금 더 잘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인지를 나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  내가 하는 일은 영유아가 똑같은 내용으로 수만 번을 "왜"라고 물어도 늘 친절과 미소로 화답을 해 줄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 피곤해도 항상 온화한 미소와 변함없는 마음으로 사랑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 내가 가진 행복한 마음을 아낌없이 나눌 수 있고, 아이들의 미소 속에 항상 행복해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 늘 진실함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하고, 아이들에게 받은 엔도르핀에 늘 감사를 할 줄 아는 일이어야 한다.

 -. 직원들에게는 귀감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라는 명제 하에 그 어떤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정의 내리곤 한다.

  가끔씩 보육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고와 사건들이 매스컴에서 종횡무진하는 특종이 되어 황색 언론으로 유명세를 치를 때마다 나의 직업을 되돌아보게 된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중에 <시시포스의 신화>에 나오는 죄수의 화신으로 알려진 시시포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 시시포스는 코린토스 시를 건설하여 그 도시를 다스리는 왕인데 교활하고, 영리하고, 욕심 많고, 잔꾀가 많은 인물로 표현된다.

  어느 날 제우스 왕은 시시포스의 만행에 분노하며 그의 목숨을 당장 거두어 오도록 죽음의 신을 보냈으나 트릭을 잘 썼던 시시포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가 오는 것을 벌써 눈치채고서 타나토스가 그를 데리러 오자 잔꾀를 부려 타나토스를 감옥에 가둬두고 지상에서 장수하는 삶을 누린다. 결국 전쟁의 신 아레스가 와서 타나토스를 구출하고 시시포스를 데려가지만 시시포스는 죽기 전 이미 꾀를 내어 아내에게 자기가 죽거든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일러뒀었다.

  시시포스는 저승에서 제사를 받지 못하자 저승의 신, 하데스에게 코린토스에 있는 아내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설득하기 위해 이승으로 다시 한번만 보내줄 것을 부탁한다. 코린토스에 돌아간 뒤 저승에 다시 가는 것을 거부하고 코린토스에 남아 있다가 결국에는 헤르메스가 시시포스를 억지로 저승으로 돌려보내어 벌을 받게 한다는 내용이다.

  시시포스가 장수를 누린 후에 수명을 다 하자 신들은 그에게 신들을 기만한 죄로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고 한다. 시시포스가 받는 벌은 시시포스가 산 정상에 다다르면 굴러 떨어지는 돌을 다시 정상으로 올려놓아야 하고, 정상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려 떨어뜨려서 산꼭대기로 다시 밀어 올리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시시포스의 이런 모습을 인간의 삶에 비추어 보면 희망 없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과연 시시포스가 계속하여 반복되는 벌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시시포스는 자기가 받고 있는 반복되는 이 형벌을 즐길 수 있었다면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만약에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 일을 즐겨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삶은 어쩌면 하루의 일과를 반복하며 보내는 보육교직원의 삶과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번 아웃된 보육교직원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반복되는 일과로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목표도 없고 의미도 없이 아침에 눈이 떠지니 출근을 하는 것이고, 학부모들과는 눈 맞춤이 어렵고, 아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등원을 하니 종일 아이들을 돌보다가 퇴근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쉬고 싶고, 그만두고 싶고, 다른 일을 찾아 떠나고 싶고 등등의 별별 생각이 다 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시시포스가 받는 형벌처럼 돌이 왜 굴러 떨어지는지도 모르겠고, 아무런 목표와 의미도 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가 받아야 하는 형벌의 반복된 삶과 같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다시 돌이 굴러 떨어질지라도 지금 이 순간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며, 돌을 밀어 올리는 사람에게는 시시포스가 받은 형벌도 피해 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해주는 원장 선생님이 되고 만다.   

   다시 떨어질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굴려서 밀고 올라가는 것은 결코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끝까지 잘 되도록 노력하려고 하는 다함없는 마음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가치와 긍지, 보람이 없는 일로 보이더라도 보육교직원들은 오늘도 영유아를 키우는 일에 성의와 성심이 함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보육교직원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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