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앤 존스' 회사에서는 비누에
쓸모없는 공기를 주입하니
'아이보리"비누'가 탄생했다.
손에서 미끄러져도 물에 뜬다는 것이다.
일본의 소시지회사 '하나마나 '에서는
제조과정에서 '부러진 소시지'를 그대로
팔기로 했다.
정가의 70프로로 판매하여 제고를
처분했다.
처음부터 부러진 소시지를 먹으나
뱃속에서 부러지나 마찬가지라는
원리였다.
장자는 세속적 기준에서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조차 고유한 가치와 존재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쓸모'란 단순히 기능적, 또는
실용적, 유용성(utility)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가치를 말한다.
어떤 사람이 거대한 나무를 보며
"저 나무는 뒤틀려서 목재로도 못 쓰고,
기둥으로도 부적합하니 아무짝에도
쓸모없군."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장자는
"그래서 그 나무는 지금껏 베이지 않고
살아남아 이렇게 크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쓸모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도리어
해를 면하고,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었다.
쓸모없다는 평가 자체가 하나의 '쓸모'가
될 수 있다.
세속적 유용성의 상대성‘쓸모 있음’은
시대, 환경,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자유와 독립성의 상징‘쓸모없음’ 덕분에
오히려 간섭받지 않고 자율적 존재가
된다.
존재 자체의 존중 대상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지 않아도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경쟁과 효율 중심 사회에서 소외된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무쓸모’라 여긴 여백, 쉼, 느림, 노년,
자연 등에도 고유한 가치를 부여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느리게 걷는 산책은 생산성은
없지만 삶을 풍요롭게 한다.
나무의 그늘은 장사는 되지 않지만 쉼의
공간을 제공한다.
장자가 말한
“無用之用,是為大用(무용지용 시위대용)”
은 쓸모없음의 쓸모,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쓸모라는 것이다.
어느 날,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등나무처럼 휘고, 비틀리고, 어디에도 곧게
서지 못한 나무.
"저 나무는 기둥으로 쓰기엔 틀렸어."
누군가 툭 내뱉은 말에, 문득 장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장자는 "그 나무는 쓸모없기 때문에 지금껏
베이지 않고 살아남아 이렇게 크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살아남고,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쓸모없음의 쓸모’다.
요즘 우리는 너무 많은 '쓸모'에 둘러싸여
산다.
속도, 효율, 성과, 경쟁, 무언가가 되어야만
하는 강박이 있다.
그러다 보니 ‘쓸모없다’는 말이 마치 사형선고
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장자는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
쓸모없다는 이유로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에서 오히려 가장 큰 자유와 생명력을
발견했다.
생산성이 없는 낮잠,
기록도 남기지 않은 산책,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한
나의 사색.......
그 모든 것들이 과연 진짜 ‘쓸모없는’ 걸까?
장자에게 물어본다면, 그는 아마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짜로 너를 살게 하는 것이야."라고.
그리고 나는 생각해 본다.
나도 누군가에게 ‘쓸모없어 보이는 존재’
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쓸모없음이 나를 나답게 만든
것은 아닐까.
도움이 되지 않아도, 설명할 수 없어도,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그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그러니 오늘은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쓸모없어도 괜찮아.
그게 너만의 곡선이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너만의 존재 방식이야.”
https://suno.com/s/YC0jM6eNerZQ42Y7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1절
뒤틀린 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 쉬네
결코 쓸모없다고
버려진 줄 알았는데
햇살은 가지 사이로
바람은 그림자 되어
쓰임 없던 그 자리가
누군가의 쉼이 되네
무용의 쓸모, 그 깊은 뜻
쓸모없음이 주는 선물
세상은 몰라도 나는 안다
이곳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2절
잘리지 못한 그 굽은 나무
시간 속에 남아 서서
버티는 모양 그대로
자유의 상징이 되었네
무용의 쓸모, 그 깊은 뜻
쓸모없음이 주는 선물
세상은 몰라도 나는 안다
이곳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쓸모없음이 나를 지킨다
쓸모없음이 나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