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는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라는 사실이 보여주는 대로 브릭스(Katharine C. Briggs, 1875~1968)와 그의 딸 마이어스(Isabel Briggs Myers, 1897~1980)가 처음 고안한 인간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나누어 측정하는 방법이다. 물론 MBTI가 강단 학계에서는 배척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체계를 갖추고 한 때 미국 사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그런데 브릭스가 사윗감의 성격이 딸의 미래 시집 식구들의 성격과 판이하게 다른 사실을 발견하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만들어 낸 것이 원래의 MBTI의 기본 체계였다. 사실 이 MBTI의 방법이 학자들의 눈에는 지극히 ‘아마추어’인 두 모녀의 손으로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 모녀는 심리학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융(C. G. Jung, 1875~1961)의 <심리유형>(Psychologische Typen, 1921)을 읽고 브릭스 자신이 독자적으로 1917년에 만들어낸 인간 심리 유형의 틀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그는 이를 1926년 <New Republic>에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적어도 남의 논문을 표절하거나 아예 빼앗아서 자기 것인 양 발표하여 학위를 취득하는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모녀였다.
그러다가 MBTI를 본격적으로 성격 유형 측정 도구로 발전시킨 근본적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남성들이 전쟁에 참여하여 산업 인력이 부족한 때에 여성들이 직업세계에 들어설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여성 각자의 적성에 최대한 맞는 일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의 성격과 성향이 다양한 법이니 그에 따라 각자의 적성에 맞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남녀차별이 심한 그 당시의 미국 사회에서 매우 혁신적이고 건설적인 페미니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남자를 ‘물어뜯는’ 데만 혈안이 된 이른바 ‘꼴페미’들과는 차원이 다른 모녀였다.
브릭스와 마이어스 모녀는 1944에 <Myers Briggs Type Indicator Handbook>을 출판하고 마침내 1956년에 <Myers–Briggs Type Indicator>라는 제목을 확정하게 되었다. 이후에 MBTI는 세계 최고의 시험평가기관인 <ETS>의 눈에 들어 정식 테스트 설문지가 출판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98년 이 설문지의 3차 수정 증보판이 출판되었다. 이런 역사를 볼 때 MBTI는 결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MBTI의 기본적인 틀은 융이 자신의 저서 <심리유형>에서 주장한 인간의 4가지 심리 유형, 곧 사유(Denken), 감정(Fühlen), 감각(Empfinden), 직관(Intuieren)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브릭스가 그것을 미국의 실용주의와 페미니즘의 정신으로 특히 직업세계에 진출하는 여성의 편의를 도모하는 데 활용했다는 점에서 존경을 받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융이 <심리유형>의 서문에서 밝힌 대로 이 책은 20년에 걸친 그의 치열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그러한 위대한 학자의 학문적 업적을 바탕으로 실용적인 응용방법을 만들어 낸 Myers-Briggs 모녀의 업적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의미 있는 역사를 지닌 MBTI가 한국 사회에서는 CNN의 보도에 적시된 대로 주로 20대 미혼 여성들의 효율적인 짝짓기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상업주의에 경도된 장사꾼들의 농간에 ‘순진한’ 미혼 여성들이 넘어간 것이라는 프레임이 성립하기는 한다. 돈이 되면 X이라도 팔아먹는 것이 장사꾼들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40살에 은퇴하여 골프 치고 해외여행하면서 ‘평생 놀고먹기’를 꿈꾸고.
그러나 문제는 20대 여성이 포함된 한국의 MZ세대의 불안이 이러한 MBTI 열풍이라는 병리증상의 근원이라는 사실이다. 원래 돈을 많이 버는 최고의 방법이 바로 다른 사람의 허영과 더불어 불안을 이용하는 것이다. 허영을 이용하여 한국에서 '명품'으로 잘못 번역된 사치품(luxury goods)을 터무니없는 가격이 팔고, 불안을 이용하여 ‘천인공로’할 자칭 도사와 점쟁이들이 헛소리로 혹세무민 하여 치부하는 것이 바로 한국 사회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가장 활기 넘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내야 할 한국의 MZ세대가 이미 애늙은이들이 되어 최대한 고생하지 않고 ‘편한’ 짝을 만나 40살 이전에 떼돈을 벌어 그 이후에는 골프나 치고 해외여행이나 하면서 놀고먹을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문제인 것이다.
도대체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병적인 애늙은이가 된 근본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의 깊이 병든 교육제도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유치원 때부터 좌고우면 하지 않고 눈가리개를 한 채로 오로지 SKY를 목표로 미친 듯이 달려가던 관성이 남은 것이다. SKY에 도달만 하면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며 미친 듯이 달려가는 그 관성 말이다. 그런데 SKY에는 상위 3% 정도만이 입성하고 나머지 97%는 루저가 되는 이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공부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곧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산출을 얻어내는 경제 논리에 어긋나는 것은 모두 제외되어야만 했다. 이러한 프레임이 짝짓기 시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최소한의 노력과 최대한의 유익, 곧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 쾌락이 최대한 보장되는 짝을 찾는 방법이 있다면 마다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주를 보고 MBTI를 본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사주도 MBTI와 마찬가지의 대접을 받고 있다. 원래 사주를 보는 기본 학문인 역학은 유교의 경전인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인 <주역>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의 본질을 통찰하는 방법으로 수립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학문이 한국 사회에 들어와서는 짝짓기와 떼돈 벌기, 그리고 좋은 자식, 곧 공부 잘하고 출세하여 떵떵거리고 살 자식 낳기를 위한 도술로 변모한 것이다. 원래 MBTI가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한 방법에서 출발하였으나 짝짓기 방편으로 ‘퇴락’한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또 하나의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한 사회의 젊은이들의 정신이 그 나라의 미래의 지표가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 이른바 MZ세대가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실망만을 하게 된다.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패기도, 실패를 감내할 용기도, 지구 생태계를 구할 정의감도 없다. 그저 꼰대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더 심하게 40살 이전에 강남에 집 사고 30억 현금을 모아서 그 이후 죽을 때까지 골프 치고 해외여행 가면서 ‘놀고먹을’ 생각만 한다. 물론 그러지 않고 정의와 공정이 넘치는 사회 건설을 꿈꾸는 이들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이준석과 박지현처럼 애늙은이가 되어 꼰대들의 권력 노름을 어쭙잖게 흉내 내거나 MBTI나 점집을 기웃거리며 편하게 살 궁리만 하는 문자 그대로 어린애들만 보일 뿐이다. 아니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20대에 람보르기니를 몰고, 파텍필립을 손목에 걸치고, 목에는 반클리프를 두르고 손에는 에르메스를 들고 이른바 '플렉스'나 하거나.
그런데 이런 비난을 받을 행태를 보이는 MZ세대는 그 잘못을 꼰대들에게 전가한다. 꼰대들이 자신을 그리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럼 MZ세대는 자아나 영혼도 없이 그저 꼰대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이란 말인가? 정작 현실에서는 꼰대를 욕하는 데 혈안이 된 모습만 보이면서 말이다.
나라의 미래가 윤석열, 김건희, 한동훈 삼총사와 ‘천인공로’할 소위 도사 때문에 어두운 것이 아니다. 이미 나라에 망조가 들려 그런 자들이 설치는 세상이 되었을 뿐이다. 곧 이들은 망국의 원인이 아니라 이미 병든 사회의 결과물인 것이다. 저속한 물질주의와 허영이라는 사회적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가장 강해야 할 한국의 MZ세대가 이미 애늙은이로 넘치니 더욱 그런 것 아닌가?
그러니 CNN에서도 이미 미국에서는 한물간 MBTI 열풍이 한국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전염병처럼 퍼진 현상을 비꼬듯이 보도하는 것이리라. 이 나라의 진짜 ‘젊은이’를 찾으려면 정말로 ‘디오게네스의 등불’이 필요할 모양이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