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꼰대라서 노래도 구닥다리를 좋아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의 록 그룹인 Hollies가 부르는 ‘He ain’t heavy, he is my brother‘이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The road is long
With many a winding turn
That leads us to who knows where?
Who knows where?
But I'm strong
Strong enough to carry him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So on we go
His welfare is my concern
No burden is he to bear
We'll get there
For I know
He would not encumber me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If I'm laden at all
I'm laden with sadness
That everyone's heart
Isn't filled with the gladness
Of love for one another
It's a long, long road
From which there is no return
While we're on the way to there
Why not share?
And the load
Doesn't weigh me down at all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He's my brother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직역을 해본다.
길은 멀어요
굽이가 많아요
그 길이 어디에 이를지 누가 알까요?
누가 알까요?
그러나 나는 강해요.
얘를 업고 갈 만큼 강해요.
얘는 무겁지 않아요, 내 동생이니까요.
이렇게 우리는 계속 가요.
얘가 잘되는 것이 내 관심사이니까요.
얘가 부담되지 않아요.
우리는 그곳에 도착할 거예요.
난 알거든요.
얘가 귀찮아지지 않을 거라고.
예는 무겁지 않아요, 내 동생이니까요.
내 맘을 무겁게 하는 것이 있다면
슬픔으로 맘이 억눌리는 것뿐이에요,
모든 사람의 맘이
서로 사랑하는 기쁨으로
채워지지 않아서 말이에요.
아주 먼 길이에요.
그 길에서 돌아올 수는 없을 거예요.
그곳으로 가는 길에서
서로 나누면 안 되나요?
내 어깨의 짐에
나는 절대 짓눌리지 않아요.
얘는 무겁지 않아요, 내 동생이니까요.
얘는 내 동생이에요.
얘는 무겁지 않아요, 내 동생이니까요.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기독교의 형제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생생한 내용의 전설 같은 실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다. 여러 개의 버전이 있다. 그 가운데 설득력이 있는 것이 아래 두 개의 이야기이다.
첫째 이야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레네건 신부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하워드 루미스라는 아이가 들어왔다, 정확히는 하워드를 엄마가 버렸다. 하워드는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에 무거운 보장구를 차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고아원에서 같이 사는 나이가 많은 ‘형들’이 하워드를 업고 계단을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런 모습을 본 플레네건 신부가 ‘형들’ 가운데 하나인 루벤 그랜저에게 애가 무겁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루벤이 대답하였다. “신부님, 얘는 무겁지 않아요. 내 동생이니까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이후 신부는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이들의 이야기를 주변에 전해 오늘날까지 남게 되었다.
위의 노래 가사와 직접 연관이 있는 둘째 이야기의 배경은 1929년 10월 29일 미국 월가의 주가 대폭락으로 촉발되어 1939년까지 10년간 이어진 미국의 대공황이다. 5%대를 맴돌던 실업률이 20%를 넘어서며 많은 사람이 길거리에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일자리가 없어 대도시의 빈민구호소에서 나누어주는 음식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특히 곡물 가격이 60% 폭락하여 살길이 막막해진 미국 중부의 빈민들은 서부의 대도시로 일자리와 무료급식소를 찾아 먼 길을 나섰다. 그 무리 안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10대 남자아이도 있었다. 아주 먼 길을 걸어서 마침내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에 도착한 이 아이는 남루한 행색에 땀과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한눈에도 매우 지쳐 보였다. 그런데 그 아이의 등에는 한 어린아이가 업혀있었다. 그래서 신부가 물었다. 그 애가 무겁지 않냐고. 그러자 돌아온 대답이 루벤이 한 것과 같았다 “신부님, 얘는 무겁지 않아요. 내 동생이니까요.” 이 순간 깊은 감동을 느낀 신부는 이 이야기를 주변에 전했고 많은 사람이 신부가 느낀 것을 공감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노래가 나오게 된 것이다.
사실 대공황 이전만 해도 미국 경제는 완전 고용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미국 경제가 파탄이 나고 그 여파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미국은 193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회복 기미를 보였지만 다른 많은 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때까지 계속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특히 1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보상금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독일은 이 대공황의 여파로 거의 치명타를 당했다. 그런 난국에 히틀러가 등장해 독일을 재무장시키고 국민을 총동원하여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이 역설적으로 세계적 차원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29년 뉴욕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381에서 198로 하락했다. 그러다가 1930년 초반에 다시 반등하여 4월에는 294선을 회복했다. 그러나 1932년에는 다시 41까지 폭락했다. 이런 널뛰기 장세에서 많은 투자자들이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주식은 문자 그대로 휴지가 되어버렸다. 대공황의 부작용은 통화 공급이 최악에 이른 1933년 3월에 그 절정을 이루었다. 도대체 '잘 나가던' 미국 경제가 대공황에 빠진 이유가 무엇인가?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여러 현상을 볼 때 부적절한 통화 공급 축소, 소비와 투자 감소가 직격탄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요인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이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심리였다. 투자자든 소비자든, 부자든 가난한 이든 이들의 마음을 한결같이 관통한 것은 바로 공포와 패닉이었다. 실물 경제의 상황과 무관하게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문자 그대로 삶에 부담이 되는 것은 다 ‘내던진’ 것이다. 그래서 주식을 내던지고 돈을 쓰지 않고 버틴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생존만 생각했다. 생존본능이 발동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극단적인 이기주의자가 된다. 그래서 나 이외의 모든 타인은 지옥이 될 뿐이었다. 그러니 세상이 지옥이 되어 버렸다. 모두가 불행했다.
그런데 그 불행은 그 개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근본 원인은 다른데 있었다. 여러 이론이 있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당시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에서 돈줄을 조여 은행이 파산하게 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 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한 재정 정책이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일으키어 더 큰 타격을 입힌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경험으로 2007년 역시 미국의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때에는 선진국이 통화 공급 정책에 앞다투어 나선 것이다. 2007년 당시 미국 2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회사인 New Century Financial의 파산으로 시작된 이 위기를 학자들은 Great Recession으로 지칭하여 1930년대의 Great Depression과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둘 다 금융기관이 먼저 파산하고 그 여파로 실업자가 증가하여 특히 서민들의 삶이 궁핍해졌다는 점에서 결과는 같다. 특히 자산 가격이 급락한 것이 서민들의 직접적 타격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도 불황을 심화시킨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공포심이었다. 군중심리는 한 번 패닉에 빠지면 마치 북유럽의 들쥐 레밍처럼 한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려간다. 그것이 파국에 이를 때까지 말이다.
2007년에 시작된 금융위기의 결과 미국과 유럽 은행들은 3년 만에 1조 달러의 손해를 입었고 이는 고스란히 사회와 국가 재정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소비 심리와 투자 심리가 낮아지니 주가와 물가가 폭락하여 특히 서민들이 생계 자체를 위협받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통화 팽창의 여파로 2015년을 기점으로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하였다. 투자 심리가 부정적인 상황에서 돈이 건전한 투자가 아니라 투기판에 몰린 것이다. 특히 경제 대국인 미국과 독일에서 이 두 투기 자산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 물가에 연동되기 마련인 실질 가처분 소득은 증가하지 않은 채 투기 자산의 가격만 오르는 기형적인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9년부터 이어진 코로나 사태는 경제 회복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각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현재의 위기에서 사람들은 패닉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자포자기하는 집단의식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같다. 특히 사회적 하층 계급에 있는 이들은 생존경쟁에서 밀려나 결국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남을 돌보고자 하겠는가?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내가 가진 것이 있어야 남을 돌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현재 경제적 위기에 빠진 한국 사회에서 분노와 갈등이 지속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는 혼자 극복할 수 없다. 반드시 다른 이들과의 협력을 위한 형제애의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영어로 fraternity 또는 brotherhood를 형제애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단어를 한국말로 '형제애'로 번역하여서 오해가 발생했다. 형제애는 피를 나눈 형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국제연합의 ‘세계인권선언’ 제1조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All human beings are born free and equal in dignity and rights. They are endowed with reason and conscience and should act towards one another in a spirit of brotherhood.
직역을 해 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존엄과 권리에서 평등하다. 모든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기에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형제애’는 우리나라 전통의 개념인 ‘형제간의 우애’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의 경우 ‘형제간의 우애’는 전적으로 피를 나눈 형제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유교의 가족주의 전통이 강력하게 남은 한국에서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의 범주를 넘어선 이들과의 관계에서 서양에서 말하는 형제애를 실천하는 전통이 없다. 물론 서로 남인 사람들이 만나서 ‘형님 동생’ 하지만 이는 서양의 형제애와 상관없는 이익 관계이기에 언제든 사달이 나면 남남이 되고 마는 사이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관우 장비가 흔히 의형제의 모범으로 이야기되지만 이들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도 서양의 형제애와는 전혀 다르다. 서양의 형제애는 추구하는 공동 이익이 아니라 인격적 평등을 전제로 한다. 동등한 인격체 간에 이루어지는 교감이 바로 형제애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모든 인간의 인격적 존엄과 인권의 존중이 전제되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모든 인간관계에 반드시 서열이 선행된다. 그래서 피를 나눈 형제 사이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위아래 서열을 엄격히 따진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말꼬리가 무척 중요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먼저 서열을 확인하는 작업이 늘 선행된다. 그리고 상대방을 ‘아무개 씨’로 부르는 것은 커다란 결례가 된다. 그래서 반드시 사장, 부장, 팀장, 그리고 장관, 총장, 의장, 의원, 그리고 변호사, 의사, 교수, 약사로 불러야 한다. 하다못해 이모, 고모, 아버님, 그리고 잘 모를 때는 다 사장님으로 불러야 한다. 그것도 잘 안 되면 결국 나이에 귀결된다. ‘너 몇 살이야?’ 말이다. 무조건 '아무개 씨'로 부르면 모독이니 그렇다. 그래서 만만하거나 무시하고 싶으면 '씨'로 부른다. 그래서 한국에는 서양에서 의미하는 형제애가 없는 것이다. 형제애에는 모든 사람이 다 나와 동등한 형제자매로 침해할 수 없는 인권을 지닌 존재라는 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서양의 모두가 동등한 형제자매라는 정신에서 나오는 형제애는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전통에서 나왔다. 예수는 혈연관계를 철저히 부인하고 전혀 다른 차원의 가족관계를 제시하였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12장 46~50절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예수가 무리에게 말을 하고 있는데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에게 말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한 사람이 예수에게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에게 말하려고 밖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하였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동생들이냐?” 그러고 나서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말했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봐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여기에서 형제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아델포’(ἀδελφὸ)는 친형제만이 아니라 재혼한 부부의 전 배우자 사이에 난 형제도 포함된다. 그리고 넓게는 조상이 같은 이들도 형제다. 그래서 비유하자면 단군의 자손인 한민족도 예수의 개념에서는 모두 형제요 자매가 된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한국처럼 가족중심주의가 강한 민족이었다. 특히 부계의 혈족을 중시하는 사상이 조선 시대의 가부장주의적 정신을 능가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는 위와 같은 사해동포주의적 선언을 한 것이다. 이는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는 선언과 더불어 당시의 율법주의자들의 신경을 대단히 거스르는 말이었다.
사실 로마제국에서도 초기에는 생물학적 부자간의 권력 세습 개념이 매우 희박했다.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재혼한 아내인 드루실라의 아들인 티베리우스에게 황제의 권위를 넘겨주었다. 그러다가 16대 황제이자 5현제의 마지막 주자였던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us, 121~180)가 친아들인 코모두스(Marcus Aurelius Commodus Antoninus, 161~192)에게 황제의 권위를 물려준 것이 최초의 부자세습이었다. 그러나 코모두스의 폭정으로 실질적인 Pax Romana는 종식을 거두고 황권은 이른바 ‘센 놈’이 장악하는 혼란스러운 군인 황제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 이후의 유럽 역사에서도 혈연관계의 자식 사랑은 많은 경우에 썩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특히 무능한 아들이 아버지의 유업을 ‘말아먹는’ 일이 자주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유교의 가부장 제도의 의식이 강력히 남아 있는 한국의 경우는 핏줄로 이어진 자식 사랑이 여전히 무척 강하다. 후기산업사회를 넘어선 제4차 산업혁명기, 포스트 모던한 21세기에도 큰 변화가 없다. 언론에 노출되는 대기업 사주들을 보아도 자식의 능력과 무관하게 ‘내 회사’를 내 핏줄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지나칠 정도로 심하다. 서양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한국의 경제 제도라고 하면서도 재벌들이 경제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인 족벌체제를 고수하는 이유도 바로 ‘핏줄’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재벌들의 핏줄 사랑을 탓할 것은 없다. 평범한 한국인들의 정서에서도 생물학적인 '내 새끼'에 대한 사랑은 지나칠 정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MZ세대의 시대에 출산율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자녀를 1명 이상 낳지 않는 현실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기형적일 정도의 '핏줄 집착'을 만들었다. 문제는 이 아이들이 형제가 없이 자라면서 형제애는 고사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친구를 사귀려면 학원에 가야 하는 상황에서 형제애는 고사하고 우애가 어찌 생기겠는가? 형제애는 평등을 전제로 하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유교문화권에서는 형제애의 개념이 근본적으로 없었다. 없는 것을 배울 리 없으니 더더욱 MZ세대가 형제애를 알 리가 없다. 유교에서 말하는 '붕우유신'은 결코 평등한 형제자매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덕목이다. 더구나 맹자의 경우 평등과 겸애를 주장하는 묵자의 사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위계질서가 보편적인 평등과 서로에 대한 사랑에 앞서는 것을 확신한 맹자는 묵자의 겸애사상이 백성을 기만하고 인간의 본성인 인의를 막는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묵자가 비판한 것은 위계질서보다는 인간의 근본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정향 된 이기주의였다. 묵자가 말한 대로 강도도 내 자식만은 사랑하기에 남의 것을 훔쳐서라도 내 자식을 먹여 살리고자 한다. 이런 식으로 가족 이기주의가 만연할 경우 유교에서 애지중지하던 기존의 사회 질서가 오히려 무너지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묵자가 강조하고자 한 공동선을 위한 사회 구성원들의 형제애를 맹자는 오해했거나 무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공자는 아예 아버지가 사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감싸야한다는 정실주의를 내세웠다. 오늘날 법치국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와 타자를 구분하고, 내 가족과 다른 가족을 구분하여 차별하고 더 나아가 피를 나눈 가족끼리 야합하여 불의한 사익을 위해 범죄를 자행하는 것이 사회악의 궁극적인 원인인이 된다는 사실은 21세기 한국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지연과 학연과 더불어 혈연관계가 사회 질서와 공동선에 앞서는 한국 사회에서 과연 Hollies가 노래한 그 형과 그 동생을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언젠가 이 나라에서도 전혀 모르는 남을 업어주며 “하나도 안 무거워 너는 내 동생이잖아.” 그렇게 말하는 이를 볼 날을 기다려보며 노래를 다시 들어본다.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Jl5vi9ir49g) 그런데 그런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MZ세대가 서로를 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 안에서의 '적'이 아니라 내가 업어도 무겁지 않은 동생으로 여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꿈이라도 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