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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ug 30. 2022

낭만가도의 비극적 아름다움이 있는 퓌센

백조의성의 전설이 깃든 곳이라서 더욱 애잔하다


퓌센의 전경


낭만가도의 종착점이기도 한 퓌센 (Füssen)은 사실 인구가 15,000명 정도 되는 작은 도시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매우 깊어 로마제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시내에 가보면 오래된 분수와 건물, 그리고 성곽을 볼 수 있다. 이 도시는 아우크스부르크와 달리 프랑켄이 아니라 오스트리아를 접하는 슈바벤 지역에 있어서 분위기와 풍광이 많이 다르다. 도시 동부를 흐르는 레흐강은 결국 도나우강에 이어져 오스트리아로 연결된다.  


퓌센은 로마제국 북부에서 알프스를 건너 아우크스부르크까지 가는 길인 ‘Via Claudia Augusta’의 길목에 놓인 작은 마을로 시작되었다. 이 길은 원래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에도 한때 로마제국 군사기지가 있었다. 도시 이름인 퓌센은 독일어로 발을 뜻하는 Fuss에서 온 것이다. 산자락에 있어서 그리 불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산자락이라기보다는 산간 지역이라는 말이 더 맞다. 가장 낮은 곳이 백조의 성의 배경이 되는 해발 775m 높이에 있는 호수 포르겐제 (Forggensee)이기 때문이다.

 

퓌센은 지리적으로 로마와 게르만 지역의 물자 교류의 요충지였다. 알프스 산을 건널 때 길이 좁아 말에 싣고 온 물건들을 퓌센에 내려놓으면 이것을 모아서 레흐강(Lech)을 이용하여 배로 아우크스부르크까지 대량 운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와 중세를 이어 유럽에서는 경제적 요충지가 결국 중요한 도시를 건립하는 기초가 되었다. 사람 사는 곳이니 먹고사는 문제가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문화도 융성하기 마련이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가을

 

그러나 퓌센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런 오랜 역사가 아니다. 백조의 성으로 알려진 노이슈반슈타인 (Neuschwanstein) 성이 근처 마을인 호헨슈방가우 (Hohenschwangau)에 있어서 유명해졌다. 원래 이 성이 있는 자리에는 1090년경에는 두 개의 작은 성이 서 있었다. 그런데 루드비히 2세가 왕으로 등극하면서 그 당시 왕들이 흔히 하듯이 그 자리에 새로운 성을 건축하고자 하였다.  

 

특히 루드비히 2세는 그의 동생인 오토 (Otto)가 아이제나흐(Eisenach)에 재건한 바르트부르크성 (Wartburg)과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왕을 위하여 재건된 피에르퐁성 (Pierrefonds)을 보고 백조의 성을 옛 성의 폐허 위에 짓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원래 루드비히 2세는 중세의 낭만주의적 ‘리터부르크’(Ritterburg) 곧 기사의 성의 모양으로 짓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성은 그의 왕궁이 있던 뮌헨에서 벗어나 휴양을 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그러나 조부인 루드비히 1세가 물려준 재산으로 짓기 시작하였으나 곧 돈이 다 떨어져 자신이 원하던 수준으로 완성할 수가 없었다. 비스마르크의 지원으로 겨우 자금을 확보하기는 하였으나 또 다른 건물을 짓는 데 사용하여 백조의 성의 완공은 계속 지연되고 말았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배경으로 한 퓌센의 야경

 

당초 계획을 14년이나 넘긴 1886년에야 겨우 건물 외부만을 어느 정도 완공하였으나 바로 그 해에 왕은 죽고 말았다. 이 성을 바그너 (Richard Wagner)에게 헌정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정작 그는 이 성에서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였다. 방만한 소비로 빚에 허덕이던 루드비히 2세는 폐위의 압력을 받던 중인 1886년 6월 13일 슈타른베르거 호수 (Starnberger See)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결국 그가 사랑한 백조에 성에서 머문 날짜는 총 172일에 불과하였다.  

 

왕이 죽고 나서 이 성은 입장료를 받고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이 돈으로 왕의 빚을 청산할 심산이었다. 이 성은 공식적으로 루드비히 2세의 동생인 오토가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정신병을 앓고 있어서 결국 유산관리사무소가 성을 인수하여 1899년에야 빚을 청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1918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선 다음에 마침내 이 성은 국가의 소유가 되었다.

 

사실 이 성의 내부는 그 유명세에 비하여 탁월하게 아름답지는 않다. 뭔가 어두침침한 이른바 중세 ‘기사의 성’의 분위기를 내다가 만 느낌이다. 그리고 건물들도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지 않고 산만한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중세의 성의 가장 중요한 요새로서의 기능은 전혀 하지 못한다. 그리고 당초 계획에 있던 소성당은 기초도 놓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한 해에 150만 명이 찾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이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인과 일본인의 덕분이다. 특히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에 이 성을 모방하여 만든 성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유명한 곳이니 필자도 여러 번 손님들을 모시고 가게 되었다. 그만큼 독일 여행의 상징이 된 성의 사진을 찍고자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성을 아름답게 찍기 위해서는 성 뒤에 있는 마리엔 다리로 가야만 한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 되었다. 주변의 호수를 배경으로 보는 성은 안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낭만을 느끼게 해 준다.


알펜제와 호헨슈방가우성을 배경으로 한 노이슈반슈타인성

 

맛난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백조의 성 근처에는 별로 추천할 만한 곳이 없으니 시내로 나오는 것이 좋다. ‘감스엔글로리아’ (Gams&Gloria)와 같이 반드시 예약을 하고 가야 하는 고급 레스토랑도 있다. 그러나 토속적인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마담 플뤼쉬’ (Madame Plüsch)도 권할 만하다. 전통적인 독일 음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200km 정도 차로 달리면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가 나온다. 별도의 시간을 내서라도 꼭 찾아볼 만하다. 잘츠부르크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곳으로 가는 알프스 자락을 따라가는 길이 문자 그대로 그림 같다.


잘츠부르크의 야경

 

워낙 아름다운 동네라서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갈 길이 바쁜 나그네의 마음으로는 그러기 힘들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더 머물고 싶지만 그리고 괴테처럼 ‘멈추어라! 너는 그토록 아름답구나!’ (Halt! Du bist so schön!)을 외치고 싶은 순간이 있지만, 시간은 결코 멈추지 않고 비가역적으로 흘러가 버린다.  

 

그런데 그렇게 쫓기듯 살다 보면 어느 사이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어느 모로는 우리 조상님들이 말씀하신 대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가 반드시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된다.  

 

그러나 어쩌랴. 그저 놀기에는 너무나 짧은 인생이 아닌가? 게다가 모든 인간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밀란 쿤데라의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Die unerträgliche Leichtingkeit des Leben)에서 일갈한 대로 전혀 연습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연극배우들이다. 참으로 쓸쓸하다. 백조의 성을 보며 그 다사다난했던 건축사를 생각해 보면 그런 인생무상을 더욱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우울해할 것도 없다. 어차피 인생이 한 번뿐이기에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다는 자각만 있다면 굳이 감상적인 상념에 깊이 빠져들지 않게 될 것이다.


여행이 주는 이러한 정신적 사치의 소중함을 직접 경험을 해보아야만 알 수 있다. 그래서 시간과 돈을 어렵게 마련해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 같다. 결코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삶에 쫓기며 살기에는 긴 인생이다. 그 인생을 향해 잠시 멈출 것을 명령하고 짐을 싸서 전혀 낯선 장소에서 잠시라도 인생과 나 자신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누리는 사치는 분명히 가치가 있다.

 

사실 퓌센은 매우 작은 동네라 오래 머물며 구석구석을 살펴볼만한 관광지는 아니다. 그러나 알프스 산자락의 경치를 바라보며 그저 편히 쉬고 싶다면 나쁘지 않다. 다만 관광객이 많아 번잡한 느낌을 주는데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한가할 것이니 뜻밖에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겠다.


퓌센의 관광 안내를 받으려면 공식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주소: https://en.fuessen.de/)  영어로 된 것이라 언어의 어려움도 없을 것이다. 원한다면 이 사이트에서 바로 숙소 예약도 가능하다. 이 사이트에서는 가격대에 맞추어 숙소를 찾을 수 있어 편리하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예약 엡에서 할인 혜택을 받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그럼에도 숙소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광 정보를 찾기에 편하니 이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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