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세를 찾아 떠난 독일낭만가도의 동쪽 끝인 퓌센에서 더 동쪽을 향해 자동차로 두세 시간 달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들르고 나서 다시 남쪽으로 30~40분 정도 차를 몰고 가다 보면 독일의 베르히테스가덴 (Berchtesgaden) 근처에 있는 매우 아름다운 호수인 퀘니그스제 (Königssee)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몸과 마음의 힐링을 위한 길이 시작된다. 사실 퀘니그스제는 엄밀히 따지자면 람사우(Ramsau)라는 매우 작은 마을 옆에 있는 호수이다. 그런데 정작 람사우에서는 더 가까이에 있는 힌터제(Hintersee)와 타우벤제(Taubensee)를 더 내세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람사우는 차우버발트(Zauberwald), 곧 마법의 숲으로 유명하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차를 몰고 가면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가 나온다. 베르히테스가덴이 있는 지역을 오버바이에른(Oberbayern)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고도가 높아서이다. 남부 독일에서는 남북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고도를 기준으로 위(ober), 아래(nieder)를 구분한다. 그래서 오버바이에른이지만 오히려 지리적으로는 남쪽으로 뻗어 오스트리아 쪽으로 깊이 파고 들어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영향으로 사실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는 문화적 차이가 많지 않아 보인다. 강력한 가톨릭 색을 여전히 보이고 있고 사투리나 풍습에서도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출신임에도 바이에른에서 별다른 저항 없이 정치적 권력 기반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지리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매우 친근한 지역이라 잘츠부르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가면 베르히테스가덴과 람사우에 쉽게 도착할 수 있다. 차를 잘츠부르크에 두고 버스를 이용하면 주변 경치 감상하는 데 훨씬 편하다.
람사우의 바겐드리쉘호른 산을 배경으로 한 상트 세바스티안 성당
다시 베르히테스가덴으로 돌아가 보자. 여기에서 시작하여 독일에서 가장 큰 호수인 보덴제(Bodensee)에 접한 도시인 린다우 (Lindau)까지 450km에 이르는 독일알프스길 (Deutsche Alpenstraße)을 따라가다 보면 알프스가 스위스만 독점적으로 누리는 자연의 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퓌센은 이 독일알프스길의 여정 중간에 있는 마을이라서 여기에서 서쪽으로 갈 수도 있지만 일단 잘츠부르크에서 하루 이틀 정도 머문 다음 느긋하게 베르히테스가덴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편한 방법이 될 것이다. 여기를 지나면서 독일알프스길을 마무리하고 다시 잘츠부르크로 돌아가는 것이 여정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매우 번거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독일을 남쪽에서 서쪽으로 그리고 다시 동쪽으로 돌아서 독일 남부로 내려오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아예 오스트리아에서 타고 올 생각을 하는 것도 좋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말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을 따라 10여 개의 도시를 거쳐 보덴제에 이르는 이 독일알프스길은 사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여행길이다. 오스트리아 국경과 겨우 30km밖에 안 떨어진 마을인 베르히테스가덴은 유명한 켈슈타인하우스 (Kehlsteinhaus)가 있는 1,834m 높이의 켈슈타인 (Kehlstein) 산으로 유명하다. 켈슈타인하우스는 제3제국 시절 독일의 나치 간부들의 모임 장소였다. 히틀러 자신도 즐겨 이 장소를 찾았다. 현재 이 건물과 그 주변은 관광 중심지가 되어 식당과 비어가든 (Biergraten)으로 이용되고 있다. 물론 베르히테스가덴 남쪽에 있는 독일에서 세 번째인 2,713m 높이의 바츠만산(Watzmann)이 더 웅장하다. 이 산에 올라 동쪽을 바라보면 쾨니그스제가 한눈에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인 이유로 켈슈타인산이 더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베르히테스가덴을 배경으로 한 켈슈타인하우스 전경
주민이 7,700명밖에 안 되며 학교라고는 초등학교 1개와 인문고등학교 1개, 그리고 직업학교 1개만 있을 정도로 작은 동네이지만 켈슈타인하우스와 더불어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소금광산, 그리고 무엇보다 호흡기 질환과 알레르기에 효과가 있는 동굴과 소금 온천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독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문자 그대로 ‘힐링’을 겸한 관광을 하러 온다. 사실 독일은 곳곳마다 자연환경을 잘 보호하여 자연 속에서 산책하고 조용히 쉴 만한 곳이 무척 많다. 그럼에도 지역적 특색을 갖춘 관광지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특히 건강에 관련해서 말이다. 건강은 인류 보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사실 평균 수명을 80으로 놓고 볼 때 인간이 일하는 시간은 얼마 안 된다. 표준적인 삶을 기준으로 한다면 일단 수면으로 하루에 8시간을 보내고, 먹고 마시고 쉬는 시간으로 또 8시간 정도를 사용한다. 나머지 8시간 정도를 일에 투입한다. 물론 이것은 이상적인 경우이고 대부분의 직장인의 경우에는 하루 10시간 이상을 일 때문에 사용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여러 가지 잡일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술 한잔 하는 경우에는 수면 시간이 4~5시간 정도밖에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작 '의미 있는 일'을 기준으로 해보면 계산이 달라진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가운데 몇 시간이나 '의미 있게' 사용하고 있을까? 많은 경우 먹고살기 위하여 문자 그대로 피땀을 흘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피로에 지쳐 무의미하게 보낸다. 식사 시간과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유흥과 오락, 그것도 아니면 문자 그대로 시간을 죽이는 일을 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길지 않은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질문을 너무 늦게 하게 된다.
한국과 같이 치열한 경쟁을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그런 질문조차 사치가 된 지 오래이기에 시도할 엄두도 못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정말로 어느 날 문득,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이게 아니다!"라는 외침이 들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가 온다. 그때에 인간은 문자 그대로 실존적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실존주의의 창시자인 키엘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는 자신의 작품 <이것이냐 저것이야>(Entweder Oder)에서 답을 얻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그 두꺼운 책을 읽을 시간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삶의 의미에 대한 심오한 질문의 답을 구하고자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결단이 필요하다. 이게 아니다 라는 외침이 들릴 때,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하던 일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키엘케고르의 책을 읽는 것은 아니어도 적어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템플스테이도 나의 자아 성찰에 도움이 되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여행만 한 것은 없다.
다시 알프스 산자락으로 돌아가 보자. 이 마을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작은 마을인 쉐나우(Schönau)에 있는 호수인 퀘니그스제(Königssee)를 볼 수 있다. 빙하가 녹은 물로 형성된 이 호수는 남북 길이 7.7km, 동서 폭은 1.7km의 기다란 형태를 띠고 있다. 호수의 이름이 퀘니히, 곧 왕이지만 사실 왕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호수이다. 원래 이 호수는 쿠니히제 (Kunigsee)로 불렸는데 이는 독일 이름 콘라드 (Konrad)의 애칭인 쿠노 (Kuno)에서 온 것이라는 전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이 호수 서쪽에는 순례지로 유명한 상트바톨로메오 성당 (St. Bartholomä)이 있다. 알프스 산자락에서 자연의 힐링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이 마을에 머물며 산책을 해보는 것이 매우 좋을 것이다.
퀘니그스제의 명소인 상트바토롤메오 성당
사실 적지 않은 독일 사람들은 기관지와 관련된 만성 증상과 알레르기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독일 여러 지역에 힐링을 위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베르히테스가덴도 그 가운데 한 지역이다. 그러나 굳이 힐링이 아니어도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알프스 산자락의 맛을 보며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고자 한다면 이 마을만 한 지역도 드믈 것이다. 다만 날씨가 고르지 못하기에 좋은 날에 이 마을을 찾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날이 좋으면 산책이든 드라이브든 다 좋다. 이곳에 마냥 있어도 좋지만 린다우까지 가는 길에도 좋은 마을이 얼마든지 있으니 적당히 즐기고 마을과 작별할 준비를 해야 한다.
유명 관광지답게 식당도 다양하다. 그러나 굳이 비싼 식당을 찾을 필요는 없다. 가격 대비 맛과 분위기가 뛰어난 곳이 많다. 그 가운데 ‘바우흐푸이’ (Bauchgfui)를 추천해 본다. 날씨가 좋은 날에 주변 경치를 제대로 감상하며 돈에 구애받지 않고 요리를 즐기고 싶다면 ‘그라프회헤 빈드보이텔바론 식당’ (Gasthaus Café Graflhöhe Windbeutelbaron)을 찾아보면 된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