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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Sep 03. 2022

에필로그

나를 찾는 길은 내 안에 있다


물론 여기에 소개된 곳이 독일에서 가볼 만한 명소의 전부는 아니다. 특히 독일 남부와 라인강 줄기에 포도송이처럼 이어진 작은 마을들은 괴테가 파우스트 박사의 입을 통해 외친 말을 따라 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 멈추어라 [시간아], 너는 그토록 아름답구나!


그렇다. 힘든 세상이지만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순간 나도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이라도 팔아서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리 성현들이 세속이 부질없는 꿈과 같은 곳이라고 말씀하셔도 더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때가 바로 우리나라와 완전히 다른 곳에 가서 나를 잊고 시간도 잊고 나그네가 되어 시간을 잊을 때다. 그 순간 나는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많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홀로 서 있는 나를 더욱 뚜렷하게 의식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 나를 위해 만든 여정을 따라가 본다. 그리고 때로는 마치 영원한 시간을 선물 받은 특권을 누리듯이 즉흥적으로 길을 바꿔보기도 한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런 [사실 제한된 기간이라고 해도] 사치를 누릴 특권을 준 그 누군가에게, 신이든 절대자든 가족이든 아니면 나 자신이든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의 길을 간다.


I'm on my way!    


물론 이 길을 간다고 해서 반드시 잃어버린 나를 찾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여행을 하다 보면 늘 마주치게 되는 불편함이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소개한 장소들은 최소한 독일인들도 일반적으로 즐겨 가며 휴식을 취하는 곳이니 한 번쯤은 들러 볼 만하다. 서두에서 말 한 대로 이 책에서는 독일에 도착하여 차를 빌려 본인이 직접 몰고 가면서 만끽할 수 있는 여행지를 소개하였다. 홀로 차를 몰고 가서 홀로 식당에서 밥을 먹고 홀로 시내를 거닐고 홀로 숲 속을 산책하면서 내 안에 숨겨 놓았던 나를 보듬고 달래며 나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이 여행의 제일 목적이다. 특히 홀로 운전할 때 눈앞에 전개되는 정경의 낯섦은 나를 찾는 데 템플스테이보다 더 좋은 Denkanstoss, 정신적 자극을 준다.   

 

잘 알려진 대로 독일은 내연기관을 이용한 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 실용화한 나라이다. 그런 나라답게 자동차에 관한 기술만이 아니라 문화가 고도로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도로도 일찍부터 잘 발달하여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대단히 편리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독일 여행은 직접 차를 몰고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그리고 자동차 여행이 주는 여유와 자유는 일정 기간 주마간산으로 하는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줄 것이다.

 

독일에는 렌터카 회사들이 많아서 고르는 데에 고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개인적으로 이용해 본 경험으로 볼 때 대부분 안심해도 좋다. 독일의 강력한 법제도가 렌터카 회사들의 농간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자동차를 몰고 가다 보면 일정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기에 사진만 찍고 허겁지겁 다음 목적지로 달려가야 하는 수고도 덜고 현지의 독일인들과의 개인적인 접촉 기회도 더 많아질 수 있다. 단순히 눈요기가 아닌 문화 체험을 원한다면 꼭 개인적으로 자동차를 몰고 하는 여행을 해볼 것을 권한다. 더구나 나를 찾아 익숙한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완전히 벗어나 전혀 다른 세계에서 나그네가 될 요량이라면 더욱 홀로 차를 몰고 독일의 길에 나서야 할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나의 삶의 자리는 그대로 변함없이 남아 있고 나는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가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전혀 이질적인 독일에서 잠시나마 고독한 나그네로 나를 찾는 경험을 해보고 나면 이전의 나와는 달라진 자아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자아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비록 상처받은 치유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그래도 내 안에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만도 어디인가?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홀로하는 여행이 주는 값진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머물 자리를 찾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여행을 하기 위하여 잠시 머물고 있는 것이 또한 우리 인생이다.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이 인생임에도 그러하다. 오늘 하루도 문자 그대로 지지고 볶는 삶을 겨우 살아 내다 저녁이 이슥해져 힘든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다 보면 힘들고 어쩔 수 없이 고독이 밀려온다. 그러면서 답 없는 질문을 되풀이하게 된다. 왜 사는가? 누가 이 질문에 정답을 줄 수 있겠는가? 특히 챗바퀴처럼 반복되는 삶 안에서 10년, 20년을 보내고 나면 허무감이 어쩔 수 없이 들게 된다. 그러나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그것도 단 한 번 내게 주어진 삶이기에 살고 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와도 답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는 일단 멈추고 무조건 떠나야 한다. 그것도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말이다. 그렇게 이방인이 되어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의미도 찾지 말고 나를 비우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오히려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찾은 소중한 나를 그러안고 다시 나의 삶의 자리로 돌아오면 왜 사는지에 대한 정답은 아니어도 나를 귀히 여기고 싶은 기특한 마음이 들게 된다. 나를 찾고 다시 내 익숙한 자리로 돌아오는 데 오히려 내가 나를 기다리는 매우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 다시 살아볼 마음이 든다. 그래서 여행에는 중독성이 있다. 그런 여행을 통하여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 내게 중독되어 보는 경험도 한 번 사는 나의 인생에서 할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답이 안 나오는 느낌이 들면 나는 다시 짐을 싸기 시작한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흔히 말하는 대로 인생은 지구라는 낯선 장소를 잠시 방문해 머물다 가는 여행 아닌가? 그런 인생의 본질을 잊고 살다가 문득 잃어버린, 아니 잊혀진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나면 내가 다시 보인다. 그 안쓰러운 나를 찾아 나서는 여행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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