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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수는 결국 누구란 말인가?

예수는 영원한 수수께끼다

by Francis Lee

역사적인 인물 가운데 예수만큼 많은 사람에게 그토록 널리 알려진 존재도 드물다. 현재 전 세계 80억 명의 인구 가운데 22억 명 정도가 기독교 신자이다. 그러나 정작 예수가 누구인가를 물어보면 대답을 잘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성경을 숙독하고 연구했다는 사람들조차 정작 예수가 누구인지를 잘 모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예수는 무조건 믿어야 하는 신적 존재였다. 그래서 그의 본질에 관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그에 관한 자료가 매우 빈약하다. 사실 성경 이외에 예수에 관한 ‘신뢰할 만한’ 자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성경조차도 그 편집된 내용을 보면 예수에 관하여 알기 위한 자료로는 빈약하다. 유대교의 경전인 <타나크>(תַּנַ״ךְ)를 재구성한 구약, 예수를 직접 보았거나 관련된 인물들이 기록했다는 복음서, 그리고 예수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면서도 스스로 예수의 사도가 된 바울의 편지들과 일부 사도들의 글이 전부이다. 물론 성경 이외에 예수가 지상에 머문 시절의 역사에 관한 문헌이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 이야기는 거의 안 나온다.


게다가 예수에 관한 가장 생생한 기록인 복음서마저도 서로 맞지 않는 서술이 많이 담겨 있다. 그러니 <루카복음>에서 말한 것이 ‘진짜’ 예수인지를 식별할 ‘객관적’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인류는 예수에 관하여 계속해서 이야기해 왔다. 그러다 보니 예수 이야기는 왜곡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분열도 낳았다.


가톨릭교회가 동방정교와 갈라서게 된 공식적 이유는 예수의 본성에 관한 논쟁, 곧 ‘filiusque’ 문제 때문이었다.


또한 예수의 본모습을 아는 데에 더 큰 문제가 된 것은 이른바 예수의 열두 사도가 세운 이른바 ‘초대교회’는 77년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초토화할 때 사실상 소멸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이때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기독교인들은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바울이 세운 것과는 별도의 자체적인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현재의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교회는 예수의 십이 사도의 정통성을 부여받지 않은 바울이 소아시아 지역에 세운 교회들이 뿌리가 되어 성장해 왔다. 다시 말해서 적자는 사라지고, 서자가 그것도 스스로 서자라고 자처한 자가 기독교의 발판을 마련한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서 말고는 예수를 본 적이 없는 바울이 기술한 예수 공동체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를 이해해야만 하는 답답한 상황에 놓인 셈이다.


여기에 더하여 예수 제대로 알기에 문제가 된 것은 기독교의 국교화에 따른 이른바 이단의 배척이었다. 기독교 안에서 기득권 세력에 반대되는 주장은 모두 이단으로 몰려 극단적인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서로의 세력이 비슷할 때는 서로를 파문하며 각자의 길을 가기도 하였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분열이다. 사실 분열은 중세가 아니라 이미 초대교회에서부터 있어온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일이다. 이미 베드로가 살아 있을 때 바울과 대립했고 바울이 세운 교회 안에서도 또 파벌들이 난무했다.


그래서 신앙이나 파벌에 따라 왜곡된 것이 아닌 ‘과학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방법으로 예수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노력의 결실은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른바 ‘성경해석학’의 등장이다. 이 연구 결과 오늘날 합의된 내용은 예수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로마 총독 빌라도의 명령으로 사형을 당했다.’ 정도이다. 그러나 예수의 언행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파벌과 학자마다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앞에서 말한 대로 원천 자료가 워낙 빈약해서이다. 그리고 그 자료마저도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읽는 사람의 주관적 해석이 없이는 이해가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복음서마저 그것을 저술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단독으로 기술했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있다. <마태복음>을 마태가 썼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요한복음>은 더욱더 문제다. 결코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 많은 학자가 공감하는 정설이다. 예수를 이야기하는 원천 자료의 신뢰성이 없는 상황에서 예수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당연히 ‘비과학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비과학적 문서는 원래 그리스어나 아람어로 쓰인 것인데 번역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역과 자의적 번역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의 ‘본모습’을 어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현대의 학자들은 일단 성경에 나온 예수의 이야기만이라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해석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여 읽는 전통을 이어왔지만, 가톨릭의 경우 중세 라틴어로 쓴 이른바 <불가타> 성경만을 정경으로 고집하며 오랜 세월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개신교에서도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해석’은 오로지 성직자의 몫이었다. 평신도가 ‘감히’ 성경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경죄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결국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많은 ‘평민’들이 성경을 적극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비로소 예수의 ‘참모습’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독일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받는 과정에서 자세히 알게 된 예수의 ‘본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언젠가는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었다. 그래서 예수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교회의 신학이나 신앙에서 말하는 것 이외의 예수의 역사적 ‘참모습’을 연구하는 것은 18세기 말 계몽주의에서 시작되었다. 그 선구자는 독일 철학자 라이마루스 (Hermann Samuel Reimarus, 1694–1768)이다. 그의 연구 결과는 사후에 독일 철학자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이 <익명의 필자의 원고>(Die Fragmente eines unbekannten Autors)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하였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에 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불러일으킨 것은 튜빙엔대학교에서 공부하고 강의한 독일 신학자 슈트라우쓰(David Friedrich Strauss, 1808~1874)가 1835년에 출판한 <예수의 생애, 비평적 연구> (Das Leben Jesu, kritisch bearbeitet)이다. 참고로 비슷한 무렵에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 (Ludwig Andreas von Feuerbach, 1804–1872)가 출판한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은 아예 기독교 자체의 허구성을 지적한 책이라 일단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는 것이 나을 법하다.


예수의 역사성에 관한 연구와 더불어 진행된 것이 성경의 진실성에 관한 연구였다. 과연 성경이 제대로 쓰인 책인지, 단지 신자들만이 공유하는 신앙의 경전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책인지를 연구했다. 이 분야를 ‘성경 해석학’(biblische Exegese)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역사-비평적 방법’(historisch-kritische Methode)이다. 이 방법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프랑스의 신학자 시몽(Richard Simon, 1638–1712)이다. 그는 1689년 출판한 <신약 본문에 대한 역사 비평> (Histoire critique du texte du Nouveau Testament)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방법을 체계화하였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또한 종교를 신앙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에서 파악해 보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 결과가 그가 1793년에 출판한 <단순한 이성의 한계 안의 종교>(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역사-비평적 성경 해석의 바탕을 다진 데에는 이외의 여러 신학자들의 협력이 있었다. 그 가운데 독일의 신학자인 세믈러(Johann Salomo Semler, 1725-1791)는 역사-비평 방법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른바 ‘튜빙엔학파’를 창시한 바우어(Ferdinand Christian Baur, 1792-1860)야말로 역사-비평적 방법의 체계를 완성한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 모든 학자들은 개신교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사실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성경 자체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의 언행이 담긴 성경을 역사적 방법으로 비평적으로 분석한 결과 나온 예수의 모습은 어떤가?


예수는 기원전 4~6년에 태어나 서기 30~33년에 사망한 유대인이다. 우리가 쓰는 달력의 연도표기도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525년 엑시구스 수도사(Dionysius Exiguus, 470-544)가 ‘Anno Domini’, 곧 서기 개념을 만드는 과정에서 예수의 탄생연도를 잘못 계산하여 실제보다 4~6살이 어리게 만들어 버렸다. 나중에 이런 사실이 밝혀졌으나 이미 사용되는 연도 표기를 바꾸는데 혼란이 예상되어 그대로 사용하면서 오늘날이 이르렀다.


그래서 흔히 예수가 30살이나 33살에 죽은 것으로 이야기되지만 실제로는 36살 또는 40살이 거의 다 되어 죽은 것으로도 계산이 된다. 예수가 30살에 죽었다는 이야기는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날짜는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성경에는 그가 30살 무렵에 공생활을 시작했다는 구절만 나올 뿐이다.


사실 탄생 날짜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에는 예수의 생일이 나오지 않는다. 현재 12월 25일을 탄생일로 기념하고 있지만 이 날짜가 아닐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원래 이교도의 축일을 기독교에 도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라고 부르지만, 실제 이름은 히브리어로 여호수아(יְהוֹשֻׁעַ‎)의 축약형인 예슈아(יֵשׁוּעַ)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렇게 예수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개인적 신상에 관한 내용은 정확히 전해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집을 나와 이른바 공생활을 시작하기 이전의 삶에 관한 내용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은 다음부터 처형당하기 전까지의 1년 내지 3년 동안의 언행만이 복음서에 비교적 자세히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 성경 기록을 보아도 가족 관계를 비롯하여 개인적인 인적 사항은 매우 불비하다. 그렇다고 해서 많은 종교의 교주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초월적 존재도 아니었다.


기독교의 교리, 특히 기독론(Christologie)의 차원에서 예수는 완벽한 신적 속성과 완벽한 인간적 속성을 겸비한 존재로 여타 인간들처럼 희로애락을 드러내고 음식과 술이 나오는 만찬 자리에서 여러 사람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예수는 스스로 저술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이 그가 사망한 지 몇십 년 후부터 그의 어록을 제대로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와 바울 서간이다. 그런데 성경 연구를 통하여 복음서 작성자들이 참고한 원천 기록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이 이른바 <Q문서>이다.


곧 복음서 가운데 <마르코복음>과 <Q문서>가 가정 먼저 작성되었고 이것이 <마태복음>과 <루카복음>의 원자료가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마르코, 마태, 루카가 쓴 것으로 여겨지는 복음은 서로 중첩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이 세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독자적인 예수 이야기가 나오기에 이른바 공관복음에 포함되지 않는다. 오늘날 학자들은 이 4개의 복음서는 각자의 필자를 내세우는 별도의 공동체들이 작성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원래 한 사건을 직접 목격한 여러 사람의 증언조차도 막상 기술을 하다 보면 서로 차이가 나는 법이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관찰한 것을 녹음기나 카메라처럼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추가하여 기억하게 된다. 이른바 편견이 작용하는 셈이다. 그래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에 대한 설명이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르코복음>에서는 예수를 단 한 번도 신과 동격으로 묘사한 글이 나오지 않는 데 반하여 <마태복음>에서는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족보를 예수에게도 부여하고 있다. <루카복음>은 <마르코복음>을 많이 인용하면서 필요에 따라 내용을 편집 정리하였다. <요한복음>은 더 나아가 기독론을 체계화한다. 곧 예수를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인 존재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공관복음에는 예수의 활동이 1년 정도로 정리되었으나 <요한복음>에서는 3년 동안 활동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공관복음과는 달리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가 곧 신이라고 선포된다.


이렇게 예수에 관한 거의 유일무이한 1차 자료인 복음서에서도 예수의 모습은 서로 다르게 묘사된다. 연대기적으로 보아도 저술 연도가 각자 다르다. <마르코복음>은 서기 66~70년, <마태복음>과 <루카복음>은 서기 85~90년, <요한복음>은 서기 100년 이후이다. 특히 <요한복음>은 서기 200년 정도에 최종본이 완성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모두 예수 사망 후 적어도 30년 이상, 곧 한 세대가 흐른 다음에 기억을 더듬어 기술된 것이 복음서들이다. 특히 <루카복음>은 <마르코복음>을 인용한 것 41%와 <Q문서>를 인용한 것 23%에 스스로 수집한 자료 35%를 더한 것으로 보아 자료 수집과 편집에 매우 다양한 원천을 참조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마태복음>도 비슷한 방식으로 자료를 수집 정리하였다.


<신약성경>의 중요한 부분인 바울 서간에는 예수에 대한 직접적 증언은 없다. 모두 자신이 세운 교회의 관리에 초점을 맞춘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곧 제도화된 ‘교회’라는 조직의 원활한 운영의 기술적 측면에 신경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예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의 기술보다는 믿음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미 예수가 신성한 존재가 된 이후의 신앙 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역사적 예수에 관한 자료를 찾기에는 역부족인 문서들이다. 사실 바울이 예수를 직접 만난 적이 없기에 이는 당연한 일이다.


예수에 관한 유일한 자료인 성경이 이렇게 정작 역사적 예수의 전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수가 누구인지를 이야기하다 보면 독자의 상상력이 상당 부분 개입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특히 제도화된 교회의 성직자들의 이런 문서에 대한 배타적 해석을 독점하면서 이른바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알아내는 것은 더욱 난망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예수의 신성을 따지거나 가족 관계를 알아내기보다는 그의 언행에서 도덕적 가르침만을 배우고자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단순히 기복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그 어느 것도 역사적 예수에 대한 바른 접근법은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제대로 아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러 방법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교회가 예수를 각 교파의 편의대로 해석한 것을 살펴보면서 성경에 비추어 예수가 ‘아닌 것’을 주장한 내용을 역으로 분석하는 방법이 효과가 있다. 현재는 이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앞으로도 이러한 길을 가야 할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다만 논란이 되지만 해결책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른바 현상학적 ‘판단중지’(εποχη)의 방법을 사용하는 지혜를 발휘하면서 말이다.


다시 말해서 논쟁의 여지가 있어서 결국 아무런 결론에도 이르지 못할 무익한 예수에 관한 논의를 일단 중단해야 한다. 고고학적 자료나 명징한 학문적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그리고 성경으로 돌아가 예수의 언행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의 주관이 개입되는 위험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경을 객관적으로 읽어야 한다. 될 수 있으면 원어로 읽고 그것이 어려운 경우 여러 나라의 번역본을 참조하여 객관적 뜻을 읽어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목사가 자기 교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에 귀 기울이지 말고 말이다. 예수는 개인이 직접 만나는 대상이다. 마치 무당이 귀신과 인간을 중개하듯 목사가 예수와 신자 중간에 서서 뜻풀이를 해주도록 기다리는 것이 가장 위험한 태도이다. 그러지 않고 그저 교회를 사교 모임 장소로 여긴다면 영원히 예수의 언행의 뜻을 살필 길이 없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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