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슬쩍 밀자 오래된 건물의 육중한 현관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복도 너머의 정적 속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복도의 끝에서는 위압적인 철제문이 서 있었다. 그리고 거기, 에테리얼한 빛에 물든 붉은 망토를 입은 소녀가 철제문의 손잡이를 잡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철제문을 천천히 닫는 동안에, 나는 이상한 호기심에 끌려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복도의 끝에 또 다른 철제문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문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붉은 망토를 입은 소녀가 반쯤 열려 있는 철문의 손잡이를 잡고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 소녀가 철문을 천천히 닫았다. 나는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그 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러자 복도 끝에 또 다른 철문이 있었고 그 소녀가 다시 그 문의 손잡이를 잡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 소녀는 다시 철제문을 천천히 닫았고 나는 또다시 그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렇게 철제문, 붉은 망토 입은 소녀. 그 문을 여는 나의 발걸음이 계속되면서 세계는 흐릿해져 갔다. 나는 문을 밀고 들어갈 때마다 그 차가운 공기가 피부밑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끼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춤이 계속되었다. 열고 지나가기, 물러나고 들어가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그 긴 공간을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갑자기 깨어났다. 꿈이었다! 내 무의식이 직조한 긴 태피스트리였다. 침대의 따뜻함이 방학으로 나이브해진 나의 몸과 마음을 더 머물라고 유혹했지만, 의무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엄마가 교회 성가대 성가 연습을 하는 날이라고 나를 재촉했다. 한숨을 쉬며, 나는 잠자리의 아늑함을 포기하고 시리도록 찬 아침 공기를 마주했다. 1984년 2월 22일 수요일 영하 2도의 쌀쌀한 아침이었다
서리가 내린 1984년 3월 2일 금요일 아침, 소명여자중학교에서 요란한 입학식이 거행되었다. 식이 끝나자, 나는 새 친구들과 함께 교실 건물로 향해 걸어갔다. 걸을수록 피부에 와닿는 공기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2월보다 더 추운 겨울의 냉기가 내 심장까지 뚫고 들어왔다. 그런데 꿈속에 보았던 바로 그 건물의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아주 긴 복도가 보였다. 왼쪽은 책상이 꽉 찬 교실이 보이는 창문이 오른쪽은 나무와 운동장이 내다보이는 창문이 길게 이어졌다. 복도는 마치 나무와 돌로 이루어진 미로 같았다. 그러나 꿈에 나온 철제문은 없었다. 아이들과 나의 발걸음 소리가 매끄러운 마룻바닥을 울리며 멀리 퍼져나갔다. 그것은 내가 본 꿈속의 장면과 대조적이었다. 현실의 변덕스러운 본질의 증거였다. 그 꿈을 꾼 날보다 훨씬 더 추웠기에 몸이 덜덜 떨렸다. 그래서 학교를 더 둘러볼 마음은 있었지만, 너무 추워서 엄마 손을 잡고 빨리 집으로 돌아오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행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학년 3반 교실은 70명의 학생과 학부모로 가득 차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키가 커서 교실 맨 뒤쪽 책상에 앉게 되었다. 무심히 옆을 돌아보았는데 나와 비슷한 키의 여자애가 앉아 있었다. 꿈에서 본 바로 그 아이였다. 옷도 꿈에 본 그 빨간 망토를 입고 있었다.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이 매우 부잣집 아이처럼 보였다. 얼굴도 꿈에 본 것처럼 단아하였다. 빨간 망토에 가려진 그는 일상 속의 빛바랜 신비한 환영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현실이었다.
그 아이가 먼저 인사했다.
“안녕. 나는 채유진이야.”
내가 바로 응답했다.
“안녕. 나는 전현주야.”
그렇게 인사하고 나서 나는 다시 앞을 보고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이날 이후 나의 인생은 그 여자애 때문에 완전히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입학식 날 꿈속에 본 그 아이를 현실에서 만나고도 그런 운명적인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저 너무 추워서 덜덜 떨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마침내 모든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서자 비로소 안도감이 몰려왔다. 아빠는 회사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저녁 약속을 잊지 않았다. 해 질 무렵 아빠 엄마와 나는 집 근처 한식집에서 갈비탕과 불고기로 따뜻한 저녁을 함께 했다. 그렇게 나의 운명적인 중학교 입학식이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