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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예수는 좋은데 기독교는 싫은 이유는?

기독교 신자의 위선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by Francis Lee

I like your Christ, I do not like your Christians. Your Christians are so unlike your Christ.


번역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간디가 했다는 말이다. 예수는 그토록 훌륭한데 그를 추종한다는 기독교 신자들은 왜 그렇게 예수와 다른지 모를 일이라고 비꼬는 말이다.


사실이다. 간디가 살던 인도만이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를 따른다고 '고백'하면서 그들의 삶에서는 전혀 예수와 닮지 않은 경우가 많다. 원인은 무엇일까? 예수를 가짜로 믿나? 예수의 가르침을 모르나? 불순한 의도를 감추고 예수 믿는 척하는 것인가?


일상생활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전혀 실천하지 않으면서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을 많이 본다. 십자가를 백미러에 주렁주렁 걸고 다니면서 온갖 불법 운전은 다 한다. 칼치기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른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쌍욕을 해댄다. 예수 믿고 금주한다면서 고주망태가 되기 일쑤다. 같은 신자들끼리 편을 갈라 원수처럼 싸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같은 교회 신자들끼리 험담하는 것이 취미가 될 정도다. 극히 일부 못된 신자들의 일탈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예수의 언행을 그대로 실천하는 예수를 닮은 기독교 신자를 찾아보기가 하늘의 별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도대체 기독교 신자는 뭘 믿고 이리 위선을 떨면서 일요일에는 꼬박 교회에 나가 눈물 콧물 다 쏟으면서 기도를, 그것도 통성 기도를 드리면서 '회개'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일까? 당연히 예수를 믿어 그러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가 가사 대로 세상 그 무엇도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왜 자기를 믿는다는 기독교 신자들이 이리 위선을 떨어도 가만히 있는 것일까? 그의 사랑이 너무나 커서 그 어떤 잘못도 심지어 기독교 신자들의 위선도 용서하는 것일까? 그래서 예수를 만만히 보고 오늘도 '교회 안에 죄인'들이 그렇게 하나 가득 모여 있는 것일까?


물론 기독교의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원죄론에서 나오는 죄의식이다. 그리고 교회는 오랫동안 신자들의 죄의식을 빌미로 신자들을 꾸짖고 억압하고 착취해 왔다. 죄를 용서받고 싶은 이들의 약한 심리를 이용하여 면죄부를 팔아먹는 짓까지 저질렀다. 그 면죄부를 팔아서 모은 돈으로 오늘날 바티칸의 중심부에서 찬란히 빛나는 베드로 대성전 보수 공사 비용에 보탠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종교개혁이라는 일대 사건이 벌어지면서 교회는 산산조각이 났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교파는 수백 개에 이른다. 그 출발점이 아이러니하게도 가톨릭 교회의 권위를 상징하는 베드로 대성전 건축 기금 모으기에 있는 것이다.


물론 가톨릭 교회에서는 면죄부를 산다고 죄가 면해지는 것은 아니며 실질적으로 면죄부를 교회가 조직적으로 판매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가톨릭 교리에서는 고해성사라는 제도가 있다. 비록 예수가 인간의 원죄에 대한 '벌금'은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 갚아 주었지만 이른바 잠벌은 남아 있다는 논리로 그 죄는 고해성사로 해소해야 한다는 제도를 만들었다. 고해성사를 하고 나면 신부가 신을 대신하여 죄를 사해주는 대신 보속이라는 것을 하도록 요구한다. 죗값을 치르라는 말이다. 그 보속이 대부분 기도나 주모경 외우기 또는 선행하기 등의 '귀찮은' 일이다. 중세 농노가 일하기 바쁜데 그런 일을 언제 다 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그런 이들이 돈으로 대신 갚을 방안으로 바로 면죄부를 교회가 팔기 시작한 것이다. 돈을 극도로 싫어하는 예수를 교주로 삼은 가톨릭 교회에서 돈을 내면 죄를 사해주는 희한한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그러니 간디 같은 사람도 예수는 좋지만 예수쟁이는 싫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가톨릭 교회의 위선적인 교리와 관행이 싫다고 뛰쳐 나와 문자 그대로 종교 개혁을 했다는 개신교는 더 가관이다. 성경 어디에도 없는 직제를 만들어 목사 장로 집사 권사로 이어지는 계급을 교회 안에 만들었다. 예수는 단 한 번도 제자들 사이에 계급을 나눈 적이 없고 오히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개신교 교회는 가톨릭 교회보다 돈을 더 밝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왜 그리 돈을 밝히나? 대답은 간단하다. 개신교는 가톨릭에 비해 부동산이 부족하다. 그래서 현금 장사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돈이 조금만 모이면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린다. 이른바 건축 헌금의 광기가 목사와 교회를 지배한다. 그것도 모자라 갖은 명목의 특별 헌금에도 집착한다. 십일조는 성경적 근거가 매우 희박하고 유럽 국가의 교회에서는 시행하지도 않는 유명무실한 것인데 마치 신의 명령인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마음의 평안을 얻고 예수와 같은 선한 삶을 살아보겠다는 장한 결심으로 교회 문을 두드렸지만 막상 와보니 문자 그대로 '개판'아닌가? 그러니 누가 기독교를 좋아하겠나? 여론 조사 통계 자료를 보아도 기독교 신자가 비신자보도 더 도덕적이고 자선을 더 베풀고 더 모범적인 삶을 산다는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 적이 없다. 기독교 신자도 비신자만큼 범죄를 저지르고 낙태하고 술담배를 즐기고 이혼하고 가정폭력을 저지른다. 이럴 거면 뭐 하러 기독교 신자가 되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것도 모자라 툭하면 교회 안에서 신자끼리 패가 갈려 서로 죽일 듯 싸운다. 싸움이 심해지면 결국 상대방을 이단으로 몰아가기까지 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들의 언행을 보면 사회가 교회에 빛을 비추고 소금을 뿌려야 할 지경이다.


성경, 특히 공관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언행에 대한 기록을 보면 비신자라도 감동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 감동으로 교회를 찾으면 대부분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통계에도 나오듯이 예수에 감동하여 세례를 받은 신자들의 대부분은 6개월 안에 교회 나가는 일을 그만둔다. 그런 신자들을 두교 교회는 게으르다 세상의 쾌락에 빠져 주님을 멀리한다는 말로 비난한다. 사실 교회가 타락하고 교회가 죄인으로 넘쳐 질려서 안 나가는 것인데 말이다. 정작 교회와 이른바 교회 죽순이 죽돌이만 그 사실을 모른다.


이런 지경의 교회가 과연 회개하고 쇄신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집 나간 탕자처럼 냉담하는 신자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현재 교회의 행태로 봐서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그래서 100여 년 전 간다가 한 말이 새삼 탄복을 불러일으킨다. 너희 기독교인은 왜 그다지도 예수를 안 닮았니? 그러고도 어찌 감히 예수 믿는다고 고백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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