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온천욕을 하러 갔다. 여름의 끝이었다
아직 여름이 다 지나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는 게 싫다. 여름이 좋아서가 아니라 가을이 오는 게 싫다. 가을의 청량함과 서늘함이 싫지 않으면서도 그 투명한 공기와 말간 햇빛 사이에 어린 느낌이 싫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또는 감상과 관련된 거니까 내가 그렇다는 거다. 여름이 가는 게 그래서 싫어.
온천 갈까. 느닷없이 아내가 말했다. 그러지 뭐. 어딘지 안다. 아내가 좋아하는 곳. 북한산 자락에 온천이 있다. 온천이라고 이름은 붙여져 있는데 그냥 목욕탕 정도다. 그런데 산 속에 들어 있어서 어느 정도는 온천에 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침에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갔고, 또 쏟아질 듯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다. 이럴 때 온천욕 하기 좋지. 아직 텁텁한 여름날이지만 말이야. 사람이 별로 없고 물은 여전히 좋았다. 코로나 오기 전에 그래도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왔던 거 같은데, 그 후로는 통 오질 못했다. 그러니까 한 3년만에 온 거다.
시간은 1시간 40분. 딱 정하고 들어간다. 표를 사면 아내에겐 수건을 준다. 왜 여자들한테는 수건을 따로 주나 궁금하다. 마음대로 쓰게 두면 여자들이 목욕탕 수건을 집어가기 때문이라는데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탕에 들어서면 옅은 유황냄새. 포천 일동유황온천에 가면 이런 냄새가 나는데, 나쁘지 않다. 왠지 물이 좋을 것 같은 기분. 욕탕 벽에 개그맨 사진과 그가 방송에 나온 장면이 죽 걸려 있다. 저 사람이 이 목욕탕과 관련이 있나보다.
먼저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입수. 열탕으로 바로 직행. 온탕에는 몸을 안 씻고 그냥 들어오는 인간들이 많아서 열탕을 선호한다. 몸이 쫙 풀어진다. 굳었던 무릎도 부드러워지는 느낌. 때를 밀고 열탕과 냉탕을 오가다 건식 사우나에 들어간다. 사람이 없어 좋구나. 5분짜리 모래시계를 엎어놓고 앉는데, 아저씨가 들어온다. 수건을 깔고 팔굽혀펴기를 두어 번 하더니 어흐 하면서 앉는다.
나를 흘끗 보더니, 이야 하체가 좋구만요 한다. 너무 굵지요 하니까 굵은 게 좋지요 한다. 옷이 태가 안 나요 하니까 자기도 그렇다며 젊을 때부터 바지를 허벅지에 맞추다보니 허리를 줄였다 한다. 그러더니 남자는 허벅지가 굵어야 돼요 정력도 거기서 나오거든요 한다. 가만히 있으니까 어색한지 골프 드라이브도 하체가 좋아야 멀리 나가요 한다. 골프 안 치는데요 하니까 무슨 운동 하세요 한다. 배드민턴 쳐요 하니까 배드민턴도 하체지요 한다. 하체 얘기를 5분 동안 했다. 모래시계를 다시 엎어 두었다. 아이씨 이제 오래 못 견디겠다니깐 하더니 아저씨가 나간다. 하체가 좋다. 나처럼 짧고 굵다.
5분 더 버티고 나가서 몸을 씻고 마무리. 1시간 40분이 금새 지났다. 피부가 보들보들해진 느낌. 나와보니 피부가 보들보들해진 여자가 인상을 쓰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참 뭐 하느라 늦어. 한바탕 소나기가 지났는지 하늘에 선명한 무지개가 걸렸다. 마당 너머 바지락칼국수집에서 칼국수. 영종도 미애네 칼국수보다 훨씬 낫네. 주인도 친절하고. 칼국수집 뒤로 하늘이 붉게 탔다. 이 여름의 말끔한 마무리는 온천욕으로.
- 2023년 9월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