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된 시간, 무한한 몰입

by Su



“1년 후,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의 순간을 맛본 후 서른이 되는 날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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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마 아마리의 자전적 소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를 읽었다. 위와 같은 주인공 아마리의 비장한 결심은 의외로 나 자신의 상황과 감정에 깊이 닿아왔다. 필명 ‘아마리’는 일본어로 ‘여분’을 의미한다. 스스로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여분’으로 부여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본다는 작가의 의지는 내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책 속의 아마리는 낮에는 파견 사원, 밤에는 호스티스, 주말에는 미대 누드모델로 살아가며 블랙잭 훈련과 영어 공부를 병행한다.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그 열정과 에너지는, 죽기 직전까지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의 발로였다. 무엇보다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 특히 절실함 속에서 빛나는 몰입의 힘이 인상 깊었다.




이 책을 읽고, 유학을 준비하며 내 삶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자아 성찰의 시간은 생각보다 고되고, 때로는 막막하다. 특히 유학 동기서(SOP)를 작성하는 작업은 마치 나라는 존재를 한 장 짜리 서류에 응축시켜 세상에 소개하는 기분이었다. SOP를 쓰기 위해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나는 왜 이 학문을 공부하려고 하는가?"
"왜 하필 프랑스인가?"
"왜 우리 학교를 선택했는가?"


이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됐다.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 흐릿하게 떠다니던 생각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았다. 한 글자, 한 문장씩 써 내려가며 나는 조금 더 명료해지고 있었다.





유학 준비는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여정이었다. 추천서를 부탁드리는 과정도 그랬다. 평소에 누군가에게 무엇을 요청하는 걸 어려워하던 나로선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것도 급하게 유학 준비를 시작한 탓에 시간적 여유 없이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셨고,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셨다. 그분들의 호의 덕분에 내 안에 자연스레 감사한 마음이 피어났다. 나중에 꼭 더 나은 모습으로 보답해야겠다고 결심했다.




2020년 2월은 나에게 여러모로 시험대 같은 달이었다. "이렇게 커리어에 공백을 두고 나중에 재취업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몰려올 때가 많았다. 특히, 한 번쯤 가보고 싶던 회사에서 채용팀의 제안 메일이 왔을 때 흔들릴 뻔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당장은 유학이라는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고. "매 순간을 진심으로 살아가다 보면, 더 나은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었다. 흔들리는 감정을 글로 기록하며 다잡았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기록은 나를 붙드는 닻 같은 존재다.




최근 '알갱이 라이프'라는 이름으로 하루를 관리하고 있다. 원룸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스스로 설정한 작은 규칙들이 일상에 활기를 더해준다. 감정이 흔들릴 때마다 지난 글들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며 기분 전환을 한다. 또한, 큰 목표 대신 작은 목표들을 설정한다. SOP 초안 완성, 추천서 요청, 프랑스어 공부 등 하루하루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다. 가끔 우울감이 스며들지만, 이 작은 행동들이 우울감을 밀어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나를 믿으며, 앞으로

팬데믹이라는 외부 변수는 2월 들어 점점 커지고 있다. 프랑스 유학에 대한 열망과 막연한 불안감이 공존하지만, 지금은 한 걸음씩 내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너는 괜찮은 사람이고,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러니 조금만 더 용기를 내자.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1년 후, 나의 알갱이 같은 기록들이 어떤 결실을 맺고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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