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본가에서 가족과 함께 보냈다. 매서운 찬 바람 속에서도 봄이 성큼 다가오는 기운이 느껴졌다. 대공원 호숫가를 천천히 두 바퀴 걸으면서, 지난밤의 꿈을 곱씹어 보았다. 꿈속에서 나는 친구와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창밖 풍경은 신비롭고 청초했지만, 어느 순간 차에서 내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차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나는 뛰어내렸다. 바깥세상은 더 이상 싱그럽지 않았다.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한 풍경 속에서 혼자가 된 나는 걷기 시작했다. 주변은 점점 녹색 미로로 변했고, 그림들이 걸린 복도를 따라 출구를 찾으려 했다. 코너를 돌 때마다 새로운 코너가 나타났다. 갈수록 초조해질 무렵,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프로이트는 꿈이 내면의 무의식과 욕구, 불안을 반영하는 통로라고 했다. 꿈은 단순히 지나가는 상상이 아니라, 우리가 무의식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욕망을 투영한다. 미로에서 헤매는 꿈은 스스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단단히 잡고,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말라"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자, 말해봐. 뭐가 불안한 거야?"
나는 정해진 고속도로를 달리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한 오솔길을 걷고 있다. 몇 번의 굵직한 결정을 내렸고, 그 선택의 대가로 자유와 함께 불확실성을 얻었다. 자유를 갈망하며 달려왔지만, 막상 자유를 얻고 나니 성공을 향한 욕망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는 자유와 성공이라는 모순된 갈망을 동시에 안고 사는 사람이다. 성공을 추구하다 보면 자유를 꿈꾸고, 자유를 누리면서도 성공을 갈망한다. 이 모순적인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불완전함을 사랑하려고 노력 중이다. 삶은 늘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다짐한다.
성취를 추구할 때: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자유를 누릴 때: "쉬어가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최근 프랑스로 떠나야겠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내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물론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와 같은 외부 변수,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이 끊임없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질문들을 던지며 마음을 점검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게 되더라도, 프랑스로 갈 것인가?
코로나를 비롯한 외부 변수로 계획이 어그러지더라도 계속 시도할 것인가?
모든 어려움을 남 탓하지 않고 스스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가?
내 대답은 YES다. 이를 통해 미로에서 헤매는 꿈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결심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결심은 점차 자신의 고유한 관성을 얻는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것을 바꾸는 건 더 힘들어진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결국, 삶은 내가 걸어온 길의 총합으로 이루어진다. 완벽할 수 없는 나를 사랑하고,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으며, 불확실성을 끌어안기로 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걸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이 길을 선택한 건 나 스스로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파란 하늘 아래에서 들었던 음악처럼, 나는 앞으로의 여정을 온전히 나만의 리듬으로 채워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