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goals) : 가고자 하는 거시적인 방향성을 추상적으로 제시한 것 / 측정할 수 없음 / 외부의 불확실한 변수들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여러 번의 궤도 수정을 허락함 / "하고 싶은 것", 즉 Vision /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인생의 방향성만을 포착한 채 일단 미로 속을 과감히 출발함
목표 (objectives) : 더 구체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바를 설정하는 것 / 측정 가능해야 함 / 확실성의 추구 / "해야 하는 것", 즉 Mission / 철두철미한 사전 준비와 계획 세우기에 몰두하는 완벽주의자
20대 초반까지의 나는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 - 내면의 소리와 개인의 기호를 외면한 채 눈앞의 목표만을 향해 달려왔었다. 결과만을 중시하던 소녀는,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으나 자기 자신에게는 인정받을 수 없었다. 목표 달성의 기쁨은 잠시, 또 다른 목표를 세우느라 숨이 찼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자괴감이 절정에 달했다. 공부로 비교당하는 매 순간이 견디기 힘들었다. 수능 전날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되면 어쩔 수 없다. 할 만큼 했다.' 공부로서는 존재감이 없었지만 통통 튀는 친구, 아이디어가 많은 친구, 그림 잘 그리는 친구, 항상 열심히 사는 친구로 기억되며 잊지 못할 추억들은 참 많이 생겼다.
결과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막상 들어오니까 허무했다. 음... 이제 뭘 해야 하지? 당장의 목표가 없으니까 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걸 조금씩 해볼까?
땀 흘리면서 춤도 추고, 공연도 하고, 춤을 추는 매 순간이 행복했다. 춤을 추다 보니까 더 배우고 싶어서 건대로, 홍대입구로 유명한 스트릿댄스 스튜디오는 다 찾아다녔다. 1년 동안 돈 벌어서 유럽여행도 한 달간 다녀왔다. 이 여행이 거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유럽이 존재하긴 하는구나! 그 당시에는 10년 후 유럽에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외국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토플 접수하고 또다시 1년 동안 돈 벌어서 1년 후, 아무도 모르는 Montana로 교환학생도 갔다. 매 주말마다 근처 국립공원들 캠핑도 가고, 거의 매일 학교 근처의 언덕에 올라 노을도 감상하고, 시내 펍에 가서 애들이랑 술도 마시고, 홈파티도 다니고, 술 취해서 새벽 3시에 언덕에 또 올라가서 별똥별 쏟아지는 것도 보고, 학교에서 곰도 보고, (스니커즈 신고) 하이킹도 하고... 공부 빼고 다 했다. 덕분에 영어 말문이 터지고 외향성이 폭발했다.
미국인 친구 Elise와 친해져서 추수감사절 기간 동안 집에 초대를 받게 된다. Elise네 집에서의 일주일은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소위 미국의 엘리트셨다. 그러던 두 분께서 결혼을 하고 하루는 로드트립을 하던 중... 몬타나 허허벌판 지금의 집을 발견하셨다고. "우리 아이들을 이곳에서 키우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겠다". 그 후 커리어를 두 분 다 내려놓고 그곳으로 이사를 와서 함께 살고 계셨던 것이었다. 혹시 커리어를 내려놓고 이곳에 정착하신 것을 후회하진 않으셨냐고 여쭤봤었는데 Elise의 부모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단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행복하고 감사해."
늦가을 무렵 매력적인 외국인 남학생과 썸(?)을 타게 되었다. 앞으로 살면서 또다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들만큼 도파민 폭발이었다. 근데 미래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선수 쳐서 사귀지 말고 친구로 지내자고 했으나, 교환학생 기간이 끝날 때까지 애매한 사이를 유지하다가 마지막날, 서로 약속을 했다. "5년 후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만나자."
한국으로 돌아왔고, 가까워져서 내가 상처받을까 봐 먼저 선수 쳐서 친구로 지내자고 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 당시 머릿속엔 온통 그 친구와 "5년 후 캘리포니아" 뿐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미국에서 일을 구하려면 전문적인 기술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을 읽다가 'Data Scientist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칼럼 한 줄을 읽고 곧장 5개년 플랜을 짰고, 거의 비슷하게 실행이 되었다. 검색해 보니 데이터 과학자로 미국에서 취업하려면 미국에서 최소 Data Science 석사는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전공 학부생에 돈도 없고 졸업반을 앞두고 있던 찰나, 부모님한테 '제가 해외취업을 하려는데 유학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대학까지는 우리가 도와줬으니 그 이상은 네 힘으로 해라." - 맞는 말씀이었다.
내가 해외취업 하려는데 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아, 우선 경제적으로 온전히 자립해야겠다. 그러면 최대한 데이터 과학과 관련된 직업을 한국에서 우선 갖고 3년 정도 경력 쌓으면서 유학 자금을 모아야겠다. 우선 당장 다음 학기부터 최소 통계학 부전공이라도 해야겠군.
사람이 어딘가에 미치면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일들도 거침없이 해낼 수 있음을 그때 경험으로 깨달았다. 강렬한 감정이 내면에 불을 지펴서 절실한 목표가 생기니까 생각이 단순해졌다. 4학년 1학기, 졸업을 1년 앞두고 한 학기에 수학 과목 6개를 듣고, 1~2학년 때 춤추느라 C를 받았던 공학수학(3)도 재수강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 전부 100점 맞아서 평균 성적을 회복시켰다. 초과학기를 다녀야 하니까 돈이 더 필요해서 인턴십도 하고, 그때부터 데이터 과학 관련 외부 Meet-up도 찾아다니고, 타과 교수님 허락 하에 통계 대학원 수업도 무료 청강을 하고, Coursera에서 앤드류 응 교수님 강의도 연달아 들으면서 수료증도 착착 모으고...
절실함이 통했던 것인지 비전공 학부생으로 경쟁률 100:1이 넘었던 데이터 과학자 신입 포지션을 뚫었다. 어느덧 해외취업의 꿈에 불을 지펴주었던 몬타나 조각미남과는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겼고, 해외취업의 동기는 더욱 강화되었다. 나는 5년 후를 정해놓고 역순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듯 살아가고 있었다. 회사에서 크고 작은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그래도 월급도 주지, 원하던 직무에서 경력도 쌓게 해 주지, 회사 돈으로 자격증 취득도 도와주지, 교육도 시켜주지, 프로젝트도 보내주지... 참 감사하고 좋았다. 같이 일하던 윗분들과 새벽까지 회식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런데 2년 가까이 일을 하다 보니까 안정적인 것을 놓고 도전하기가 망설여졌다. 이 분야에서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도 넘쳐나고, 괜히 퇴사하고 유학 갔다가 낙동강 오리알 되는 거 아니야? 혼란스러웠다. 원래 내가 원하던 게 이거였나? 그러던 찰나...
신기하게도(!) 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회사에서 연말까지 데이터 팀을 없애겠다고 언급을 했고, 다른 회사의 오퍼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그러던 중 불란서 이웃(현재의 남편)을 만나게 된다. 이상형과는 167도 정도 다른 사람이었다. 게다가 비자가 7개월 후 만료가 되어 한국을 떠날 가능성이 농후했다. 괜히 헤픈 인연을 만들었다가 혼자 남겨져 상처받기 싫어 계속 친구로 지냈다. 그런데 그가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비록 우리의 미래에 많은 난관이 존재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 않겠니?"
불현듯 4년 전 후회가 떠올랐다. 그때 비록 불확실한 미래일지라도 용기를 낼 걸. 결국, 2019년 연말에 선 퇴사를 했다. 불란서 남자친구는 비자가 만료되어 파리로 돌아갔다. 다음 날, 차가운 방바닥에서 눈을 떠서 현실을 자각했다. 그는 떠났고, 나는 혼자고, 백수다. 운이 좋아서 이번 라운드 프랑스 대학원에 합격을 하더라도 이건 나만의 트로피가 될 수도 있다. 이번 학기에 지원을 했는데 다 떨어질 수도 있다. 프랑스에 갔는데 외노자로 원하는 직업도 못 구하고 고학력 무직자가 될 수도 있다. 남자친구와 헤어질 수도 있다. 과거의 나는 목표만을 중시했기 때문에 이런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결코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플랜 B 없이 퇴사 후 유학을 준비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보장된 게 없는 거니까.
그렇지만 직관이 파리로 가서 부딪혀보라고, 지금이 위기이자 기회라고 소리치고 있고, 이제는 나도 내면의 목소리에 한 번쯤 귀를 기울여보고 싶다. 나는 아직도 미숙하지만, 이제는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되면 '아님 말고'라고 조금은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의 적절한 균형이 중요하다. 게다가 목적과 목표는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맞물려 돌아가는 관계다. 게다가 사람의 성향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마도 미래의 나는 끊임없이 목표들을 만들어내고 열심히 살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르는 대로 한 발짝 두 발짝 걷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하얀 도화지에 전체적인 윤곽만 '직관'이라는 연필로 쓰윽- 그린 후에, 음영 잡고 색 입히고 수정하는 건 목표 지향적 나한테 맡기는 거야.
시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