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이라는 만화책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간혹 서울에 다녀온 친구들이 말했다. 서울에서는 다들 힙합바지를 입는데. 내가 사는 곳은 몇 년째 교복 바지의 통을 줄여서 입는 게 유행이었다. 중학생들이 ‘잭니클라우스’나 ‘휠라’와 같은 골프웨어를 입었다. 지금이야 휠라가 레트로 한 브랜드로 사랑받지만 그때는 실크 재질의 폴로티를 파는 수입 브랜드였다.
힙합의 인기와 더불어 유승준의 인기도 치솟던 때였다. 지금이야 국민 역적이 되어 한국땅에 발도 못 붙이지만 그 당시에는 많은 남학생들의 우상이었다. 너도 나도 역기를 들고, 복근 운동을 하며 유승준처럼 근육을 만들고 싶어 했다. 역시 유승준을 좋아하던 어느 친구가 어느 날 새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왔다. 춤에도 관심이 많아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교복을 힙합으로 입고 다니던 친구였다. 만화 ‘힙합’이나 디제이덕(DJ.DOC) 가사집의 사진에서나 보던 신발이었다. 빨간색 세 줄이 선명한 아디다스 신발. 신발 앞 코 부분이 고무 재질로 되어있어 어색하게 느껴졌다. ‘신발이 그게 뭐여’라며 다들 무시했던걸 보면 그렇게 느끼는 게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랑곳하지 않고 그 친구는 새 신발을 신고 뿌듯해했다. 신발 이름이 ‘슈퍼스타’라고도 했다. 이름도 유승준의 노래만큼이나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오니 딱 붙는 청바지를 입은 건 나 밖에 없었다. 나 말고는 부산에서 온 동기 하나. 수능이 끝나고 밤 기차로 서울에 와 두타와 밀리오레를 휘저으며 장만했던 옷들은 모두 버려야 할 판이었다. 이대 앞에 가서 닥터마틴 짝퉁(혹은 짭)을 사서 신었다. 몇 달 가지 못하고 비가 샌다. 고등학교 때까지 운동화만 신었던 발이라 불편하기도 했다. 그 (짝퉁) 닥터마틴을 버리고 아디다스 매장에 갔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슈퍼스타를 골랐다. 하얀색으로. 빨간색 줄이 있으면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았고, 검정 줄은 너무 흔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하얀 운동화는 동네 할아버지가 쌀집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나갈 때 신는 신발 같았다. 서울에 오니 하얀 운동화의 위상은 사뭇 달랐다. 반짝반짝 하얀 에어포스의 위엄이라니. 하지만 나이키를 신으면 유행을 너무 따르는 것 같으니까 난 그냥 아디다스 할래. 이제 보니 이름도 세련된 것 같다. ‘슈퍼스타’라니, 그 당당함이람.
처음에 접했을 때는 별로였는데 나중에 정말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처음 스키니진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머뭇머뭇했지만, 지금은 남자도 스키니진을 입는 것처럼. 나에게는 먹을거리가 그런 경우가 많다. 시골 할머니 댁에 갈 때 기차 안에서 엄마가 노란 슬라이스 치즈를 주실 때, 슈퍼를 하던 외갓집에서 요거트(내가 처음 맛 건 꼬모였다)를 처음 맛보았을 때, 이온 음료가 뭔지도 모르고 포카리 스웨트를 처음 마셨을 때. 그때만 해도 내가 그것들을 이렇게 좋아하게 되리라고 생각지는 못했다. 빨간 삼선의 슈퍼스타를 처음 봤을 때 그 어색했던 조개 모양의 신발 앞코를 이렇게 좋아하게 될지 몰랐던 것처럼.
군대를 제대할 때, 활동화(부대에서 보급하는 하얀 운동화)를 놓고 나왔더니 신을 게 없었다. 일산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가 쌀국수라는 신박한 음식을 처음 먹고는 옆에 있는 아디다스 아웃렛에 갔다. 내 두 번째 슈퍼스타를 골랐다. 흰 바탕에 금색 호피무늬 줄이었다. ‘골드 정도는 신어야 복학생 티가 안 나겠지.’ 아웃렛에 딱 맞는 사이즈가 없어 한 치수 작은 걸 낑낑대며 신고 다녔다. 좀 불편해도 참을 수 있는 나이였다. 지금은 여름에도 슬리퍼는 불편해서 신지 않지만.
그렇게 하얀 운동화 몇 켤레를 닳아 없애고 나니 어느새 회사에서 대리가 되어 있었다. 평균 연령이 상당히 높은 회사다. 대부분의 아저씨들이 빛바랜 셔츠를 입고 넉넉한 양복바지에 검은색 또는 갈색 금강 구두를 신는 곳. 나도 적당히 눈치를 봐가며 싸구려 구두의 뒷 굽을 몇 번이고 갈아가며 신었다.
어느 날 다른 회사-우리 회사보다 평균 연령이 더 높고 더 보수적인-에서 회의를 하는데 어떤 과장이라는 사람이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들어왔다. 슈퍼스타였다. 몇 년 전부터야 전철을 타면 똑같은 슈퍼스타를 신고 있는 사람을 수십 명씩 볼 수 있지만, 그때는 아무도 신지 않을 때였다. 색도 평범하지 않았다. 뱀피 가죽이었다. 어디서 산거냐고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때쯤부터 나도 운동화를 신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평균 연령 따위 개나 주라지.
처음에는 나이키를 신었다. 슈퍼스타를 파는 곳이 없었다. 그래도 출근길이 1프로 정도 상큼해졌다. 그 나이키가 너덜너덜 해졌을 때 나의 세 번째 슈퍼스타를 샀다. 첫 번째와 같이 백 퍼센트 하얀색이었다. 회의실에 가면 검정 구두 사이에서 혼자만 하얗고 훤해 처음에는 조금 신경 쓰였지만, 이내 적응했다. 어차피 승진도 힘들다(아저씨들이 너무 많아서 올라갈 자리가 없다). 한참 유행이 시작될 때여서, 출근길에 전철을 타는 게 좀 부담이었지만 ‘난 유행이라서 신는 거 아니야…’라고 중얼거리며 스스로 차별화를 했다. 다행히 완전히 하얀 슈퍼스타는 그렇게 자주 보이지는 않는다. 역시 탁월한 안목이다.
비싼 물건은 잘 사지 않는다. 내 옷의 9할은 유니클로(세일)이고 1할은 회사 근무복이다. 슈퍼스타를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과는 좀 달라 보이고 싶다. 그런데 흔하지 않은 모델은 비싸다. 대부분 해외 직구 사이트로 연결된다. 나는 그냥 평균 연령이 50살쯤 되는 회사의 과장이다. 몇 십만 원짜리 운동화를 신어봐야 주변에서 알아 봐주는 사람도 없다. 더구나 특이한 신발일수록 직장에 매일 신고 가기는 무리다. 아무리 부장을 다는 건 포기했다지만 무리인 건 무리인 거다. 어느 날, 팀장 몰래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흔치 않은 슈퍼스타 모델을 발견했다. 은색 뱀피 가죽이다. 세일까지 한다. 장바구니에 3일 정도 보관하다가 구매 버튼을 눌렀다. 파란색 아디다스 신발 상자 속에 그대로 우리 집 선반 어딘가에 고이 모셔놨다.
몇 년쯤 뒤, 유행이 지나 아무도 슈퍼스타를 신지 않을 때 꺼내어 신을 거다.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고 다시 벚꽃이 피면 내 오래된 새 신발을 신고 (회사 말고) 공원으로 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