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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현 May 14. 2019

궁극의 카메라


세상에 있지도 않은 궁극의 물건을 찾아 헤매는 경향이 있다. 내 고상한 취향에도 걸맞고, 품질도 빠지지 않아 한 번 사면 오랫동안, 때로는 평생을 쓸 물 건. 그것을 찾아내기 힘든 건 내 ‘궁극’의 여러 요소에 ‘비싸지 않은 가격’과 ‘쉬운 접근성’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내 궁극의 옷은 유니클로다. 가슴에 브랜드 로고가 박힌 옷을 좋아하지 않고, 박혀 있더라도 악어 로고 정도면 좋겠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 로고가 박힌 옷은 참 비싸기도 하다. 커다란 프린팅이 있는 옷은 더 싫은데, 그중 가장 싫어하는 옷은 폴로 경기를 하는 그림이 셔츠 앞면의 사분의 일을 차지하는, 몇 년 전까지 한참 유행했던 바로 그 옷. 여러 가지 면에서 유니클로는 내게 최적의 옷이다. 우선 로고가 없다. 이전에도 로고가 없는 옷으로는 무인양품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매장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가격 또한 내게는 결코 싸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어디에나 매장이 있고, 로고도 없으며, 가격 또한 적당한 유니클로가 내게는 궁극의 옷이다.


몇 가지 더 찾아낸 궁극의 아이템 중 하나는 바로 ‘폰카’다. 스마트폰 뒷면에 붙어있는 바로 그 작은 카메라. 

대학 신입생이 되고, 건축과라는 과의 특성상 아무래도 카메라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한창 디지털카메라가 300만 화소네 500만 화소네 하며 쏟아져 나올 때였지만 여전히 필카의 위상이 살아 있는 때였다. 수동 카메라로 사진을 배워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카메라의 가격은 넘사벽이었고 그 벽을 넘기 전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그 무거운 짐덩어리를 들고 다닐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전 아무래도 카메라를 하나 사야 했다. 카메라를 고르기에 앞서 사진 찍기나 카메라 선택에 가이드가 될 만한 책을 한 권 골랐다. 윤광준 사진작가의 ‘잘 찍은 사진 한 장’. 에세이의 형식을 빌어 카메라의 기본 원리와 사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러고 보니 이 책도 내게 사진과 카메라에 대한 궁극의 책이다. 이 책의 내용보다 카메라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갈 생각도 없고. 여하튼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어 내 첫 번째 카메라를 장만했다. 콤팩트 카메라. 액정이 가장 큰 모델로 선택했다. 정확히 책의 어떤 구절에 용기를 얻어 그 초소형 똑딱이 카메라를 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하튼 가볍고 액정이 큰 게 내게 가장 적합한 카메라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바디의 색은 클래식한 블랙으로. (왠지 처음 만나는 여자들에게 ‘어머나! 참 깜찍한 카메라네!’라는 소리도 들을 것도 같고)  그 카메라로 참 열심히도 찍어댔다. 호주에서 농장 일을 할 때 살던 카라반에서, 동부 해안의 여러 도시에서, 그리고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그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재킷 겉 주머니에 항상 소형 카메라-소형이라고 해도 내 것 보다 훨씬 큰-를 넣고 다니는 교수님이 계셨다. 왠지 그분을 따라 하고도 싶었는데, 아무래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는 좀 불편했다. 큰 주머니가 달린 재킷이 있지도 않았고. 그래서 항상 매고 다니던 백팩에 넣고 다녔는데, 아무래도 겉 옷 주머니에서 바로 꺼내어 찍는 것보다는 번거로웠다. 가령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 뭔가 찍고 싶은 게 눈에 띈다. 등에 있는 가방을 앞쪽으로 돌리고 지퍼를 열어 카메라를 꺼낸다. 가끔 어느 주머니인지 헷갈려 가방을 뒤적거린다. 그리고 또 카메라 케이스를 열어 이번에야 말로 진짜 카메라를 꺼낸다. 전원을 켠다. (아무래도 구형은 전원이 들어오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셔터를 몇 번 누르고 앞의 과정을 거꾸로 반복해 카메라를 넣는다.


상당히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름에는 카메라를 꺼내다 티셔츠가 땀에 젖어버리고, 겨울에는 손이 시려 꺼낼 마음이 들지 않는다. 점점 카메라를 꺼내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어느 날 가방 속에서 아주 카메라를 꺼낸 뒤로는 여행을 갈 때마다 ‘카메라가 어디에 있더라…’ 하고 서랍장을 뒤진다.  마지막으로 그 카메라를 사용한 건 지금의 아내와 해외여행을 갔을 때였는데, 그때도 배터리 성능이 유독 약한 (일명 조루) 내 카메라 대신 약간 더 최신 똑딱이였던 여자 친구의 카메라를 사용했다.


결혼 후 아기가 태어났다. 다른 부모들처럼 나도 아기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DSLR이나 미러리스같이 제대로 된 카메라를 사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역시-아무리 아기가 귀여워도- 그것을 들고 다닐 엄두는 나지 않았다. 대신 중고로 하이엔드 기종을 하나 샀다. 모양도 클래식해서 들고 다니면 뽀대도 좀 날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 카메라로는 총 몇 컷 찍지도 않았다. 뭐가 ‘하이엔드’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 눈에는 나날이 발전하는 핸드폰 사진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몇 차례 중고 미러리스 카메라를 질러볼까(내가 가진 하이엔드랑 크기도 별 차이 없다니까!)도 했지만 역시 그만두었다. 사실 내가 좋은 카메라 혹은 커다란 렌즈로 찍고 싶은 사진이라는 건 기껏해야 아웃포커싱 된 사진이다. 가끔 렌즈를 몇 초동안 열어서 야경을 찍고 싶기도 하지만, 그 정도 가벼운 욕심으로 그 무거운 카메라를 항상 휴대할 수는 없다.

항상 이런 사진을 찍고 싶은 건 아니니까


이제 모든 사진은 언제든지 휴대하는 스마트폰으로 찍는다. 그냥 주머니에서 꺼내어 버튼만 누르면 된다. 가끔 버튼이 바로 안 먹힐 때 살짝 짜증도 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백팩을 열고, 카메라 케이스를 열고, 또...) 렌즈를 애지중지 관리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2년쯤 뒤에 더 좋은 카메라로 바꿀 테니까. 폰카의 성능이 계속 발전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내게 한번 사서 평생을 쓰는 카메라는 없지만, 대신 2년마다 업그레이드되는 ‘궁극의 카메라’가 이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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