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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현 Apr 11. 2019

가늘고 길게 살 거다

새해가 되면 헬스클럽에 등록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지만 요즘에는 홈 트레이닝, 줄여서 홈트가 유행인 듯하다. 예전보다 더 건강에 관심이 생겼다기보다, 작심삼일의 체육관 등록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튜브에 관련 영상이 많아진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나도 유튜브를 보면서 집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이제 6개월 정도 됐다. 헬스클럽에 가봐야 일대일 강습을 하지 않는 한 누가 내 자세에 신경 써주지도 않고(신경 써줘도 귀찮다), 이용하는 운동기구라고 해야 티브이를 볼 수 있는 자전거나 러닝머신 정도이니, 나야말로 홈트가 제격이다. 헬스장에 가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가 풀리거나, 다른 사람이 운동하는 걸 보며 자극받아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헬스장에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는 집 놔두고 헬스장까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아깝고, 다른 사람에게 자극받기는커녕 한심한 내 근육을 보고 주눅만 들기 때문에 집에서 나만의 페이스대로 운동하는 게 좋다.


워낙 운동과 거리가 멀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서 운동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대학시절, 친구와 함께 교내의 저렴한 피트니스 센터에 몇 개월 다녀봤지만 매번 스트레칭과 샤워만 하고 나왔다. 군대에서는 근육질 후배들에게 나도 운동이나 배워 볼까 했지만, 푸시업 조차 제대로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가끔씩 나도 소지섭처럼 어깨 깡패가 돼 볼까 하는 마음에 난데없이 푸시업을 하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몇 번 숨을 과장되게 쉬면서 팔을 굽혀다 펴고 나면(푸후, 푸후), 유희열도 충분히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다는 생각을 하며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작년 여름 어느 날, 개업할 때 미처 가지 못한, 친구가 하는 치과에 갔다. 턱이 좀 아픈 것 같기도 해서, 턱관절 상담도 받고 겸사겸사 스케일링도 받을 생각이었다. 친구는 턱을 엑스레이로 찍어 보더니, 별 이상 없으니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적당히 지금처럼 살면 된다고 하고,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스케일링을 맡겼다. 치료가 끝나고 다른 손님이 없어서 원장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데, 그 친구 왈, 턱은 그만 신경 쓰고 운동을 하라고 한다. 우리 나이쯤 되면 이제 해줘야 한다나. 자기도 얼마 전에 시작했는데 해보니 좋더라면서. 그의 사무실에는 조립 전인 간이 철봉이 배달되어 있었다.


그동안 주변에서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은 숱하게 들었지만, 왠지 그 친구가 했던 말이 더 와 닿았나 보다.(치과 의사이긴 해도, 의사라서 그런가?) 그의 말을 듣고 며칠 뒤부터 스쿼트를 시작했다. 스쿼트는 생전 처음 해보는 운동이라, 유튜브의 여러 강습을 찾아보며 자세를 잡아갔다. 정말 많은 채널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운동 동작을 설명하고 있었다. 얼굴까지 잘생긴 근육남이지만 설명이 너무 장황해서 뭐가 중요한지 오히려 파악이 안 되는 전문가,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위화감 없이 친절히 알려주는 트레이너, 먹다 남은 치킨 상자가 보이는 자취방에서 나름 열심히 설명해주는 체대 학생, 얼짱 누구누구라고 하며 이미 유명세를 타는 듯한 강사 등. 여러 가지 채널을 보니, 동네 헬스장에서 어설프게 혼자 운동하는 것보다 나름 체계적으로 내 몸에 맞는 자세를 찾아갈 수 있을 듯했다.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평생 하체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는데, 스쿼트를 시작하니 한 달도 안돼 하체가 든든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체력은 건강한 하체에서 나온다는 의미도 이해가 되었다. 걸을 때 발 뒤꿈치로 땅을 뒤로 밀어내는 기분이 선명해졌다. 에어가 있는 운동화를 처음 신을 때처럼 걸음이 가벼워진 기분이랄까. 그 전에는 걸을 때 누가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제 누가 뒤에서 밀어도 버틸 것 같은 기분.


스쿼트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친구가 소개팅을 하고 잠깐 우리 집 근처에 들러 편의점 앞에서 만났다. 내가 스쿼트 얘기를 하자 ‘그 기분을 느꼈다면 이제는 그만둘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거리에서 이상한 자세를 취하며 런지도 해보라고 한다. ‘처음엔 잘 안될 걸’이라면서. 이상하게 그 친구의 말은 계속 듣게 된다. (역시 의사라서 그런가? 그나저나 소개팅은 어떻게 됐다고 했지?)

대략 이런 포즈?

유튜브에 런지라고 검색하니, 장점이 많은 운동이란다. 최근에 딸과 함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는데 균형감각 발달에도 좋은 운동이란 말에 별 고민 없이 시작했다. 정말 인라인 탈 때도 하체에 힘이 느껴진다. 딸에게 왠지 더 멋진 아빠가 될 것 같다. 지난겨울, 꼭 10년 만에 스노보드를 타러 갔다. 나에게 어느 운동이나 그렇듯 스노보드도 수준급으로 타지는 못한다. 흔히 말하는 S자 턴을 하며 내려올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이번에 탈 때는 10년만 임에도 불구하고 더 안정적으로 탈 수 있었다.

 

홈트를 시작하고부터 내 몸은 비로소 전성기를 맞이한 느낌이다. 물론 하루 한 갑씩 담배를 피우고 하루 정도는 술로 날을 새도 끄떡없었던 때와 비할 바는 아니지만. 주변에서 급격히 살이 찌거나, 운동을 잘하던 사람도 쉽게 부상당하는 걸 보며 ‘내 전성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어’라고 주문을 걸어본다.


원래, 가늘고 긴 게 이기는 거다. 런지, 스쿼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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