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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현 May 03. 2019

나의 동아리 탈퇴기

존재감 없는 것보다 존재하지 않는 게 편하니까

내 생애 처음으로 가입한 동아리-그때는 써클-는 ‘다이렉트’였다. 고등학교에 가니 방송반, 농구부, 무술부(무슨 권법인가를 매일 아침 연마했다) 등의 써클이 있었다. 다이렉트는 배구부였다. 잘하는 운동은 딱히 없었고, 그전까지 배구공은 만져본 적도 없었다. 친해진 친구와 점심시간에 체육관에 갔다가 그 친구가 가입하길래 같이 가입해버렸다. 내게 적당한 분위기이기도 했다. 어차피 배구를 해본 친구는 별로 없었고, 농구는 너무 주류 스포츠, 방송반은 좀 모범생 느낌? 적당히 존재감 없이 지내는 내가 큰 부담감 없이 가입할 수 있는 분위기랄까. 매일 나오는 주장 선배도 적당히 착해 보였고, 연습도 시켜주니 그럭저럭 따라가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저주받은 운동신경은 어쩔 수 없었다. 기본적인 토스와 리시브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고, 스파이크를 때리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토스를 받고 어느 박자에 스텝을 내디뎌 점프를 해야 공을 때릴 수 있는지 통 감이 오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대체 박자를 어떻게 맞추는 거야?’라고 아무나 붙잡고 물어볼 텐데, 그때는 그게 참 창피했다. 알려줘도 잘 따라 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도 컸고. 옆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연습을 더 하는 대신, 나는 한결 간편한 방법을 택했다. 바로 탈퇴하기. 처음에 함께 갔던 그 친구 외에는 더 친해지는 사람도 없었고, 어느 날 엉거주춤 체육관에 서있던 내게 그 착해 보이던 선배가 한 말도 있어서였을 거다.


“너도 다이렉트냐?”

너도 다이렉트냐... 옆에 있던 친구와 이 대사로 한동안 낄낄대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내상은 좀 있었겠지. 존재감 없이 가입되어 있는 것보다는 그냥 존재 자체가 없는 게 상처 받을 일도 없다. 이렇게까지 논리 있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탈퇴를 하고 싶었다. 동아리를 나간다고 했을 때, 그 선배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좀 말렸던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별 무리 없이 탈퇴를 했다. 가입할 때도 그렇고, 고등학교 써클의 탈퇴라는 게 별 절차가 필요한 일은 아니니까.      


두 번째 써클-이번에는 소모임이라고 불렀다-은 ‘엠에이씨(M.A.C)’였다. 무슨 약어인지는 그때도 지금도 모르겠으나, ‘3D MAX’와 같은 건축설계 프로그램을 익히는 곳이었다. 내가 입학한 건축과는 총인원이 많지 않아, 대부분이 ‘중앙 동아리’(과와 관계없이 모이는 교내 동아리)에 가입하기보다는 ‘소모임’이라고 부르는 과 내의 동아리에 가입하고 활동했다. 나름 가족 같은 분위기였달까. 하지만 나는 어느 소모임이건 가입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입을 권유하는 선배들도 그냥 부담스러웠고, 엠티며 뒤풀이를 따라다녀야 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엠에이씨 역시 얼결에 가입했다. 멤버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여자 선배는 더욱 없었다. (한 명이 있었는지 전혀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 회장이라는 선배는 사람은 착한데 어딘가 모자란 것 같이 잘 웃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니까 나같이 존재감 없는 신입생을 붙잡고 끈질기게 가입을 권유했겠지. 아무래도 거절하기가 힘들어 가입을 승낙했던 것 같다.


그 소모임에서도 얼마 안가 탈퇴를 했다. 5월 초였던 것 같다. 날씨도 좋으니 첫 엠티를 가자는 것이었다. 아... 뭐 특별히 여자 동기들이나 여자 선배들과 같이 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아... 그 멤버에 끼어서 가고 싶지는 않았다. 몇 명 되지도 않는데 하나같이 존재감 없고 재미없어 보이는 형들과. 특히 그 회장 형은 말이 좀 많은 편이었는데 항상 웃는 얼굴로, 본인에게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무래도 가고 싶지 않다. 며칠 정도 고민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지?’ 결국 회장 형에게 전화를 했다. 수능을 보고 처음 산 모토로라 핸드폰으로. 꾹꾹 번호를 누르고 탈퇴를 하겠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긴 설득이 이어졌다. 역시 말이 많은 사람이다. 핸드폰이 붙어있는 귀에서 땀이 나 여러 번 핸드폰 방향을 바꿨을 것이다. 이번 엠티까지는 갔다 와서 다시 생각해보라는 게 주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차마 엠티에 가기 싫어서 탈퇴한다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이런 말도 했던 것 같다.


“꼭 ‘탈퇴’란 걸 할 필요는 없어.”

맞는 말이기는 하다. 사실 여러 소모임에 가입만 하고 활동은 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가입이나 탈퇴가 특별한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니, 굳이 탈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어쩌겠나, 나는 ‘존재감 없는 것보다는 그냥 존재 자체가 없는 게’ 편안한 사람이거늘. 그 후로 그 회장 형은 가끔 나를 볼 때마다 '엠에이씨였던 애'라며 특유의 재미없는 농담을 던졌다.

이런 것 까지 바랐던 건 아니라고요

마지막 동아리 탈퇴는 회사에서다. 입사를 하니 학생 티가 남아있는 신입사원에게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축구 잘해?”

“아니요.”

“ 그럼 농구는?”

“ 그것도…”

“ 그럼 당구는 쳐?”

“ …칠 수는 있습니다.”

“몇 치는데?”

“... 30이요”

“아, 그럼 스타(스타크래프트) 했구나?!”

“그것도 못하는데요…”

물어보는 사람도 한심하게 생각했겠지만, 대답하는 나 자신은 더 한심했다. ‘아, 어떻게 적응하지…’ 전 직원이 200명이 되지 않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회사다. 50명 정도로 시작했다가 최근에 인원이 많아진 거라 아직까지 ‘가족 같은’ 분위기가 남아 있달까… 다른 말로 하자면 내가 가장 불편해하는 분위기. 회사에는 동아리가 몇 개 운영되고 있었다. 당구도 못 치고 스타도 못하는 신입 주제에 아무 곳에도 가입하지 않으면 왠지 건방져 보일까 봐, 한 군데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번에는 농구 동아리. 농구를 잘하고 못하고는 상관없었다. 어느 동아리든 술을 마시는 게 주목적이기 때문에 그냥 제일 인원이 많은 동아리에 가입했다. 술을 마시러 가도 있는 듯 없는 듯 있을 수 있는 그런 곳. 어느 날 퇴근 후 농구 경기를 보고 회식을 하게 되었다. 역시 신입 주제에 빠지면 안 될 것 같아 꾸역꾸역 잠실 실내 체육관에 가서 농구를 보고, 근처의 한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구웠다.


그렇게 삼겹살 냄새를 풍기며 전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생각했다. 어차피 존재감도 없으니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크게 달라질 게 없겠구나. 그 후로 농구동아리 행사에 참석은 하지 않았다. 그냥 가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이번에는 탈퇴라는 단어를 굳이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나름 어른스러워졌달까.


그래도 매달 급여에서 빠져나가는 오천 원인지 만 원이지 하는 동아리 회비가 아까웠다. 회비는 (나는 가지 않는) 회식을 하거나, 운동복 같이 쓸모없는 선물을 주는데 쓰였다. 싸구려 농구 바지며 티셔츠 같은 선물을 몇 개 받고 났을 때쯤이었다. 전사적으로 동아리 조직을 개편 및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직원에게 동아리의 가입신청서를 다시 받았다. 기회가 온 것이다.  ‘이제 대리쯤 되었으니 굳이 가입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나는 내 마지막 동아리를 ‘탈퇴’라는 거창한 절차 없이도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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