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번외편)
취리히 공항이다. 짐을 부치기 위해 대한항공 부스에 줄을 선다. 대낮같이 밝은 저녁이다. 공항 가는 기차에서 본 취리히 사람들은 선글라스를 끼고 리마트Limmat강변에서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공항 특유의 티타늄 빛 공간에는 스위스식 독일어, 다양한 억양의 영어, 물론 한국어, 그리고 알 수 없는 여러 나라의 말들이 뒤섞인다. 간간히, 실은 상당히 빈번하게, 안내 방송도 들린다. 독어 먼저, 영어가 뒤따라 나온다. 안내 방송 전에는 ‘댕동’ 하는 소리가 먼저 나오는데, 제법 의젓한 종소리이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도 않고, 어쩌면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묻힐 법도 할 정도로 청량하지만, 그 청량함이 오히려 방송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비록 전자음이긴 하지만, 이 정도라면 중세 시대 만들어진 시계탑이나 교회의 종소리를 대체하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이번 여행의 비행기 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떠올려 본다. 우선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밤 비행기 안에서 본 영화 ‘스타 이즈 본(A Star Is Born)’. 내게도 뭔가 로맨틱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그런 영화. 음악은 말할 필요도 없이 끝내준다. 지금도 이 영화의 OST를 들으면 그 밤, 그 비행기가 생각나니까. 제법 괜찮은 여행의 시작이었다.
내 건너편 좌석에는 아기를 동반한 승객이 있었다. 헤드폰을 끼고 느긋하게 와인 한잔을 비우고 영화를 보는 나와,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아기의 엄마.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의 차이보다 극명한 대비이다. 어떤 연유로 이 장거리 노선을 타게 됐을까. 아기나 엄마나 안쓰럽기는 매한가지이다. 둘 다 무탈히 도착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이런 일도 있었다. 리스본에서 제네바로 가는 비행기였다. 아침 시간이었지만 K부장은 여느 때처럼, 기내 서비스로 제공되는 맥주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캔맥주를 종이컵에 붓다가 상당히 많은 양을 그만 엎지르고 말았다. 문제는 그 맥주가 뒷자리에 앉아있던 어느 노부인의 등산화와 양말을 흠뻑 적셨다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 뒷자리의 노부부는 처음부터 어딘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뒷좌석은 원래 비어있었는데, 이륙 후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자 자리를 옮긴 분들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뭐라고 계속 잔소리를 해댔고, 할아버지는 자리에 앉지 못하고 안절부절이었다. 그런 할머니의 등산화-깨끗하게 닦아서 오늘 아침에 신고 나온 듯한-에 맥주를 엎은 것이다. 할머니는 방방 뛰었다. ‘지금 흘린 게 뭐야?’ ‘응? 맥주라고?’ ‘오 마이 가쉬, 맥주라고? 정말 고마운 일이네! 너무 고마워!’
말할 수 없이 미안한 실수를 저지른 것은 틀림없지만, 저렇게까지 감정표현을 다 하는 할머니를 보니 죄송스러운 마음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 그래도 두 분, 부디 맥주 냄새일랑 잊고 좋은 휴가 보내셨길.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대한항공 보잉 747기에 앉았다. 내 옆자리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스위스인 2명이 앉는다. 하이킹과 사이클링을 좋아할 것 같은 (내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스위스 젊은이다. 이미 저녁을 먹었다며, 둘 다 기내식을 먹지 않았고, 이어폰을 꺼내어 끼더니 이내 잠이 든다. 나도 (기내식을 깨끗이 비우고) 잠이 든다.
깨어보니 승무원이 커피와 차를 따라주고 있다. ‘커피나 차 드릴까요?’라는 승무원의 말에 옆 자리의 건강해 보이는 스위스 대학생은 ‘yes’라고 한다. 그런데 승무원이 미처 듣지 못하고 지나쳐버려 내가 대신, ‘이 분, yes라고 했어요’라고 전한다. 옆 자리의 Thank you라는 말에 나는 쿨하게 You’re welcome.
이 취리히발 인천행 비행기는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끝이고,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시작이다. '댕동'. 내 여행의 끝과 그들의 여행의 시작이 제법 의젓하고 청량하게 교차하는 순간이다.
표지 사진 : KE918편_ⓒK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