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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현 Aug 24. 2019

마침표 : 나는 왜 이 여행기를 썼을까?

에필로그

  대학생 시절,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내 생애 처음 ‘여행’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그곳에 가면 스케이트 보드를 배우리라 생각했다.

  도착한 바로 다음날 도미토리에서 만난 스웨덴 녀석에서 중고 보드들 사들였다. 몇 번 타지는 못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나를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 뒤로 3개월간 농장에서 일을 해 여행 경비가 마련됐다. 스케이트 보드는 그때 살던 카라반의 낡은 침대 밑에 두고 나는 그곳을 떠났다. 그 스케이트 보드는 어쩌면 내게 호주의 상징 같은 물건이었다.

  

  몇 년 전, 그러니까 호주에서 돌아오고 십여 년이 지나서, 온라인 마켓에서 중고 스케이트 보드를 하나 마련했다. 누군가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가지고 왔다는 물건이었다. 그 스케이트 보드를 내 아파트에 가져오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14년 전의 여행이 완전히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리스본, 스위스 여행에서 돌아와 -실로 오랜만의 ‘여행’이었는데- 한동안 공허함이 떠나지 않았다. 여독이 덜 풀렸거나, 시차 적응에 따른 단순한 후유증은 아니었다. 뭐랄까, 그곳에 꼭 뭔가를 놓고 온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처음부터 이 여행을 글로 남길 계획은 아니었다. 몇 달 전부터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지만, 여행기는 써본 적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겨우 회사에서 포상 차원으로 보내주는 8박 9일의 여행이 뭐 그리 대수라고. 어쩌면 여행 내내 조금은 심드렁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고, 메모를 하거나 일기를 쓰지도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돌아와서 이 여행을 어떻게 글로 풀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 자리를 잡고 키보드를 두드리니 거짓말처럼 이야기가 써지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며 매일 그 날의 일정을 정리한 P차장의 노트와, 일행들이 찍은 사진들을 하드디스크에 모아서 정리하며 기억을 하나하나 복기해 나갔다. 여행 중에는 오히려 잘 몰랐던 지명이나 길 이름 하나하나를 구글맵을 뒤져가며 정확히 확인했다. 구글맵 속에서 리스본의 거리를 다시 걷고, 스위스의 기차역 주변을 둘러봤다.


  이렇게 여행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글로 정리하니, 그제야 비로소 이번 여행이 조금이나마 마무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놓고 온 듯한 기분의 실체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것은, 여행을 떠날 때 리무진 버스 안에서 문득 ‘가스 밸브는 잠갔던가?’라고 떠올리는 정도의 사소하지만 왠지 찝찝한 기분과 비슷한 것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집이란 장소는 돌아와서 밸브 상태를 확인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여행지의 가스밸브는 잠갔는지 안 잠갔는지 (대부분의 경우 평생 동안)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이런 것 일 수도 있겠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는데, 볼펜이 보이지 않는다. 집의 책상 위에 그대로 놓고 왔는지, 오는 길에 어디에서 흘렸는지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 펜이기는 하지만, 문구점에 가서 천오백 원을 주면 언제든 다시 살 수 있는 그저 그런 물건이기도 하다. 이 볼펜의 행방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있든, 잃어버렸든, 둘 중 하나다. 모든 것이 선명하다.

  그런데 이 볼펜을 여행지에 놓고 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걸 호텔의 협탁 서랍에 두고 왔는지, 환승 공항에서 여권을 꺼내다가 떨어뜨렸는지 알 수가 없다. 다시 그 호텔에 돌아가서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볼펜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영영 알 수가 없다. 뭔가 선명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는 것이다. 볼펜이든 가스 밸브든 물론, 전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여행지는 -하루를 있었든, 한 달을 머물렀든- 그 장소가 오롯이 ‘내 것’이라는 감각이 생기지 않는다. 생선구이가 딸려 나오는 백반집이 어디인지, 어디에 가야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이 있는지를 훤히 아는, 우리 동네, 우리 집이라는 곳에 비하면 말이다. 또한 여행의 기억은 너무나도 쉽게 일상에 묻혀버린다. 매일같이 학교에 가거나 출근을 하고, 공과금을 내고, 때가 되면 자동차 엔진 오일을 갈아주고, 동네 미용실에서 주기적으로 이발을 하는 그 일상 속으로 말이다. 여기에,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의 감정까지 더해진다. 그러면서 여행지에 뭔가를 두고 왔다는 근거 없는 기분에 더욱 집중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것’이 되지 못한 장소에 대한 일종의 집착 같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영영 ‘내 것’이 될 수 없는 장소에 대한 집착.

 

  다행히 이 여행을 글로 쓰면서 -내가 갔던 곳들을 다시 찾아보며 정확한 이름과 유래를 알고, 내가 느꼈던 사소한 감정들을 정리하면서- 이미 떠나온 그 여행지가 조금이나마 ‘내 것’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호텔에 두고 온 볼펜 따위는 없으며, 잠가야 할 가스 밸브 같은 건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곳에 대한 집착을 털어내며 한국에 -내 집에, 내 직장에- 완전히, 그리고 온전히 돌아왔음을 느꼈다.     


  사실, 스케이트 보드를 사고 호주의 여행이 완전히 끝났다는 말은 거짓이다. 나는 여전히 호주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기분이고,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미 그 여행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렸다. 8개월을 보냈던 호주는 여전히 ‘내 것’이 되지 못했다. 어쩌면 나의 일부는 끝내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내 현실에, 그러니까 우리 집과 우리 동네, 아파트 단지와 공원과 백화점이 있는 이 곳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시답지 않은 여행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써야만 했다.

이 곳에 내가, 있었다_ⓒ이이현


표지 사진 : 리스본 위성사진(구글맵 이미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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