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샤갈 러브 앤 라이프展 > 리뷰
전시장을 나오니 그제야 다리가 아파왔다. 세 시간 가량의 에어컨 바람에 두 팔이 얼어버렸다. 그러나 힘든 줄도 모르고 빠져들어 봤다. 탐닉하며 봤다. 한 사람의 세계를 마주한다는 것은 이렇게 거대한 일이구나, 싶었다. 마르크 샤갈이었다.
샤갈의 위대함을 말하기에 앞서 이번 전시의 훌륭함에 대해 말하고 싶다. 아티스트가 아무리 훌륭해도 전시의 구성과 설명이 작품을 제대로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면 아티스트의 진가가 묻혀버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샤갈을 제대로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우선 전시 규모 자체가 굉장히 큰데, 단지 작품의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작품의 스타일이나 기법 등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예술가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샤갈이 가진 여러 면을 다채롭게 볼 수 있는 전시였다. 관람객이 다소 많았던 것만 빼면 전시장의 구조나 동선도 나쁘지 않았고, 작품 설명 또한 (줄 간격이 약간 좁기는 했지만) 감상을 해치는 것이 아닌 감상이 풍부해지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코멘트였다.
이렇게 품질 좋은 옷을 입고 대중 앞에 선 샤갈의 작품세계는 그만의 찬란한 빛을 여과 없이 드러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화가들은 대부분 그들의 대표작으로 기억된다. 고흐의 타오르는 듯한 해바라기, 세잔의 사과, 모네의 햇빛이 반짝이는 물결. 혹은 달리의 녹아내리는 시계나 몬드리안의 직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추상화도 있다. 거장의 이름은 그의 대표 작품을 가장 먼저 연상시키고, 이는 샤갈도 예외가 아니다. 샤갈, 이라는 이름은 화려한 색채와 꿈꾸는 듯한 연인들, 환상적인 구도와 색감의 유화를 떠올리게 한다. 한 화가가 자신만의 화풍 혹은 스타일을 구축하는 것을 넘어서, 100여년이 넘도록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회자되는 자신의 대표작을 남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위대한 작품 한두 개로 위대한 예술가를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장이 거대한 빙산이라면, 우리가 기억하는 대표작은 빙산의 일각 중에서도 아주 작은 일각뿐이다. 위대한 예술작품 하나가 탄생하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다른 작품들과 습작들, 무수한 도전과 변형 그리고 개인의 역사까지 동원된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이면(裏面)을 다룬다.
전시 초입에서부터 나는 그동안 알고 있던 샤갈의 이미지를 버려야 했다. ‘초상화 그리고 자화상’이라는 첫 번째 섹션에서 마주한 한 초상화에는 자유롭고 추상적인 형체 대신 단정한 직선과 확고한 명암만이 있었다. 사실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 흑백의 드로잉이 샤갈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몇 번이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또 ‘연인들’ 섹션에서는, 한 벽면에 걸린 세 작품들의 스타일이 모두 제각각이라 이것이 한 사람이 그린 작품들이 맞는지 싶은 적도 있었다. 엷고 희미한 드로잉이 있는가 하면, 굵고 진한 곡선에 뚜렷한 색채가 얹히기도 했고, 완전한 추상성으로 부유하는 작품도 있었다. 한편 채색화 중에 ‘샹봉 쉬르락의 교회’라는 작품은 내게 작은 충격이었다. 샤갈의 작품에서 종종 쓰이는 부드럽고 몽환적이고 약간은 탁한 색감과는 정반대였다. 선명한 빛과 뚜렷한 형체를 구현한 이 채색화는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이것이 샤갈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그 놀라움을 배가했다.
샤갈은 진정 다작(多作)의 화가였다. 작품의 수 자체도 많지만 그 스타일과 기법도 너무나 다양했다. 드로잉들의 화풍이 서로 양극단에 놓여있고, 채색화 역시 비슷해 보이면서도 조금씩 다르며, 초상·사랑·성서·우화 등 작품의 주제와 소재 또한 그 범위가 굉장히 넓었다. 색채의 마술사로 기억되는 ‘샤갈’, 이라는 이름 뒤에 놓여 잘 기억되지 않는 ‘실제 샤갈’의 열정과 노력을 볼 수 있는 전시였다. 한두 작품으로 반짝이는 천재를 넘어, 수많은 작품들의 두께를 가진 거장으로서의 샤갈을 만날 수 있는 전시였다.
거장의 두께는 단순히 예술성 혹은 탁월함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샤갈의 세계에는 끊임없는 배움과 시도와 모험이 있었다. 이번 전시는 끝없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나갔던 샤갈의 열정을 잘 보여주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유화가 아닌 구아슈(불투명 수채물감) 채색화, 먹 드로잉 작품이 정말 많았으며, 또한 판화와 스테인드글라스도 전시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판화는 샤갈이 애용했던 기법으로서, 책의 삽화를 넣기 위해 일부러 베를린의 판화 기술자에게 판화 기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서전 “나의 인생”과 우화집 “라퐁텐의 우화”의 삽화를 비롯한 샤갈의 판화 작품 다수를 만나볼 수 있었다.
마르지 않는 그 열정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샤갈 자신이 가진 예술에 대한 사랑이 가장 컸겠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평생 동안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끔 한 뿌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번 전시의 이름이 ‘러브 앤 라이프’인 만큼 이 전시는 샤갈의 정신적·예술적 뿌리에도 초점을 맞췄다. 대표적으로는 샤갈이 사랑했던 벨라. 벨라 로젠펠트는 샤갈의 뮤즈라고 알려져 있지만, 벨라 또한 문인이자 저술가로 활동했던 예술가였다. 전시에는 벨라의 저서인 “타오르는 불꽃(Burning Light)”과 “첫 만남(First Encounter)”의 발췌본이 샤갈의 삽화와 함께 소개되어 있는데, 그 양이 상당한 덕에 벨라의 작품세계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캔버스 위에서 넘실거리는 색의 너울”이라는 샤갈의 표현처럼, 벨라의 문장에는 탁월한 감각과 섬세함이 느껴졌다. 샤갈과 함께 예술세계를 공유했던 샤갈의 동료이자 동반자인 벨라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그려졌다.
또한 샤갈에게는 고향 비테프스크라는 지리적 뿌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테프스크의 풍경과 그곳에서 샤갈이 교류했던 닭, 말 등의 동물을 소재로 한 그림 여러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유대인이라는 샤갈의 민족적 뿌리는 샤갈에게 상처인 동시에 지지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유대 민족으로써 정착할 곳 없이 유랑해야 하는 삶, 나치에 의한 핍박과 학살, 그 모든 과정에서 받았던 상처와 불안감이 그의 몇몇 작품에 짙게 깔려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갈은 자신이 유대인임을 잊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작품으로 그려내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끝으로 성서 테마는 샤갈의 종교 및 정신세계에서 강력한 뿌리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성서 교육을 받고 자란 샤갈은 그가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혼돈과 갈등이 화해되고 통합되는 안식처를 성서에서 찾았다고 한다. 전시에는 샤갈이 작업했던 성서 삽화뿐만 아니라 거대한 태피스트리(색실을 사용한 직물 작품) 및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의 재현본도 소개되어 있었다. 이 작품들을 실제로 마주하면 얼마나 큰 충격과 울림을 받을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전시의 끝에 오면 한 사진을 만나게 된다. 벨라와 샤갈, 그리고 그들의 어린 딸 이다가 앉아있고, 그 뒤로는 “나와 마을”, “생일” 등 샤갈의 너무나도 유명하고 대표적인 작품들이 벽에 걸려있다. 벨라의 그 눈빛, 샤갈의 그 손, 그리고 그의 위대한 작품들. 사진 속 그들이 가진 아우라에 사진 밖에 있는 나는 숨이 막혀왔다. 그들의 삶과 생각과 예술이 가진 두께에서 아직 헤엄쳐 나오지도 못했는데, 그 사진 한 장에 그 모든 두께가 집약되어 있었다. 머리가 아찔해졌다.
샤갈은 이제 ‘색채의 마술사’와 같은 단어들로 정리되지 못할 것이다. 그의 그 어떤 작품으로도 대표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샤갈을 묻는다면, 내가 아는 한에서 최대한, 나는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샤갈은 샤갈입니다. 그는 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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