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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민지 Nov 29. 2020

“네가 끝내주는 섹스를 못 해봐서 그래”

아무도 모르는 섹스의 진실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 11월. 개봉 예정일을 미룬 영화 자리에 20년 전 영화가 스크린에 걸렸습니다. 덕분에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으로 꼽히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 봤죠. 오늘은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합니다. 샐리와 해리는 시카고 대학에서 출발해 뉴욕까지 장장 15시간 넘는 시간을 차로 이동하면서 언쟁을 벌이는데요. 




당신이 끝내주는 섹스를 못 해봐서 그래


그들은 영화 <카사블랑카>에 대해 말합니다. 일자가 떠난 이유를 각자 주장을 펼칩니다. 샐리는 술집 주인과 결혼해서 여생을 카사블랑카에 박혀 살고픈 사람은 없을 거라면서 일리자의 선택을 설명하죠. 술집 사장의 아내가 되느니 체코슬로바키아의 영부인이 되는 편이 낫다고요. 이에 해리는 밤일을 잘하는데 단지 술집 사장이라고 차는 게 가능하냐고 반문합니다. 샐리는 당연하다고 확언하죠.


둘의 티키타카에 공백이 생깁니다. 샐리는 왜 그러느냐고 묻고, 해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샐리는 다시 뭣 때문이냐고 묻죠. 이윽고 해리는 "당신이 끝내주는 섹스를 해보지 못해서 그런다"고 대꾸합니다. 샐리는 화가 끓는 것을 참지 못하고 나도 끝내주는 섹스를 해봤다고 소리칩니다. 소란했던 식당이 일순 조용해 지죠.

샐리는 끝내주는 섹스의 가치를 모르는 걸까요. 아니, 끝내주는 섹스를 해 봤을까요. 당연히 이 모든 질문은 어리석습니다. 해리는 샐리가 끝내주는 섹스를 해봤는지 알 길이 없고,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섹스는 재현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성은 거짓말이 용이한 분야죠. 섹스는 일상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개 단둘이, 최소 반 나체로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죠. 섹스의 진실은 현장에 함께한 당사자끼리만 아는 수면 아래로 봉인됩니다. 





물어볼 수도 없고, 해볼 수도 없고


모두 다 섹스를 하지만, 아무도 타인의 섹스에 대한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일상에서 섹스를 목격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모든 일상을 전시하는 SNS의 시대에도 섹스는 은폐됩니다. 도덕적 질타가 두려워 속내를 감추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하기를 하기도 하죠. 교묘한 트릭으로 허를 찌르기도 어렵습니다. 잘못하다간 희롱이 되는 걸요. 말 그대로 ‘당사자들만 아는’ 이야기로 남죠.

샐리가 끝내주는 섹스를 해봤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그녀의 당시 파트너에게 물어보는 길뿐입니다. 하지만 이를 진솔하게 들려주길 기대하는 것은 맹랑한 바람에 가깝죠. 거기에 전 애인이 그녀에 대한 일말의 감정이 섞여 있다면 복수심이나 질투심에 진실은 왜곡될 수 밖에 없습니다. 듣는 해리가 샐리를 잠재적 애정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면 더욱요.

물론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습니다. 해리와 샐리가 진짜 섹스를 하는 것이죠. 실제 관계를 통해 ‘순 허풍이었네’ 혹은 ‘과연 진짜였구나’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허풍을 확인하고자 이 같은 위험을 무릅쓸 사람은 드물 겁니다. 섹스를 시시비비를 가리는 용도로 쓰기엔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거든요. 게다가 설사 잠자리를 치른들 반만 진실입니다. 주연 배우가 바뀌었으니까요. 오늘 너랑 한 섹스는 별로였어도, 지난 번 걔랑 한 섹스는 진짜 좋았다고 외칠 수 있죠. 결국 진실은 쉽사리 드러나지 않습니다.





5억 개의 콘돔은 어디로 갔을까


영화가 80% 가량 진행됐을 때 그들은 잠자리를 가집니다. 줄곧 서로에게 마음이 있었던 걸 아는 관객들 눈에야 이상하지 않죠. 한편 저는 해리와 샐리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끝내주는 섹스를 했는지' 말이죠. 약 10년 전 그들이 나눈 언쟁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물음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끝내주는 밤을 선물했을까요? 그들은 상대와 내가 성적 궁합이 좋은지 10년 만에 알았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 전혀 다른 의미에서, 샐리는 해리에게 십 년 전 자기와 잤던 쉘 고든과의 섹스가 괜찮았는지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말할 필요도 없고요.

며칠 전엔 결혼한 부부들의 대표적인 거짓말로 꼽히는 유머를 들었습니다. 남자들은 아내와 무슨 섹스를 하냐며 한탄하고, 여자들은 남편이 자기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며 잠자리를 과시한다고요. 남자들은 축소하고, 여자들은 과장합니다. 유머라고 도는 얘기인데, 살짝 웃기긴 했지만 많이 씁쓸했습니다. 

General Social Survey라는 전통적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18세 이상 성인 남자는 1년에 63회 섹스를 하며, 이중 23%는 콘돔을 착용합니다. 단순 셈법으로 16억 개의 콘돔이 필요한 셈입니다. 여성의 답변에 맞춰도 콘돔 11억개가 팔려야 하죠. 그러나 닐슨의 조사는 매년 단 6억 개의 콘돔이 판매된다고 말합니다. 1) 남성의 거짓말이 더 세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라진 5억개의 콘돔은 설명이 안 됩니다.  




결국 사람들은 섹스를 두고 파트너에게는 과거 경험을 은폐하고, 친구들에게는 상황을 부풀립니다. 혹은 아예 나누지 않죠. 설문조사에서는 자기 자신조차 속입니다. 섹스의 운명은 이상합니다.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진실에 접근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요?








참고

제목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중 해리 대사에서 따 왔습니다.
1)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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