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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민지 Oct 20. 2021

 ‘아무나’와 ‘찐 사랑’ 타령은 이제 그만

섹스는 몸과 마음의 티키타카

섹스 경험이 많으면 불행할까


어느 날 저는 온라인에서 ‘섹스는 보수적일수록 좋다’고 주장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는 다양한 섹스 경험은 사람을 비교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어 불행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특히 결혼 후 부부 생활에 방해가 된다고요. 한 번 본 맛은 잊히지 않기 때문이라는데요. ‘A는 이렇게 해줬는데’ ‘B는 이런 걸 잘했는데’ 따위의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는 뜻이죠.


필자는 섹스에 대한 취향이 발달한 이를 세단부터 SUV까지 승차감과 연비 등 다양한 차종을 타본 드라이버에 비유합니다. 특정한 부분이 아쉬운 차를 타면 더 좋은 차가 생각나듯 잠자리에서도 이전의 파트너가 떠오를 거라고요. 반면 혼전순결을 지킨 부부는 그럴 일이 없습니다. 서로가 처음이기에 비교할 과거가 없고, 그래서 온전히 만족할 수 있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비교항이 늘수록 불행해지는 걸까요? 경험과 그에 따른 비교는 그 자체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내가 가진 것과 그렇지 못한 걸 비교합니다. 그렇다고 당장 현실을 내팽개치진 않습니다. 그게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이면 몰라도요. 제대로 된 성인이라면 곁에 누워있는 A를 두고 B와의 정사가 그립다고 침대를 뛰쳐나가진 않습니다.


불행은 비교하는 행위가 아니라, 알량한 태도에서 옵니다. 손가락 까딱 않고 상대가 기대에 부응해줬으면, 하는 게으른 바람이 불행의 진짜 씨앗이죠. 팀플에서 다 된 과제에 숟가락 얹으려는 팀원 심보랄까요. 자신은 노력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체력과 테크닉, 마인드셋까지 갖추길 바란다면, 섹스토이를 쓰는 게 낫습니다.

영화 <뉴니스> 스틸 이미지




낫다 별로다, 하기 전에 난 어땠을지


그보다 섹스는 비교할 수 있을까요? 섹스를 비교할 수 있다는 생각은 타인과의 섹스를 포털 사이트 가격비교처럼 줄 세울 수 있다는 시각에서 옵니다. 더 큰 음경, 더 물이 많았던 여자를 나열할 순 있겠죠. 기술도 점수를 매길 수 있을 겁니다. 허리를 움직이는 리듬이나 손을 쓰는 방법까지.


신체적인 스펙은 선천적입니다. 음경 길이나 질 너비를 평가 항목으로 둘 수야 있겠지만, 키만큼이나 억울하죠. 물론 테크닉은 평가할 수 있습니다. 과거 아이유의 3단 고음처럼요. 하지만 섹스의 예술적 측면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거죠. 그의 눈빛이 얼마나 촉촉했는지, 더티 토크가 얼마나 창의적이었는지, 섹스 후 몸가짐이 얼마나 근사했는지.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섹스에 대한 객관적 비판은 불가능합니다. 나부터 참여자니까요. 우리는 특정 작품을 적당한 거리에서 제대로 비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쓴 영화가, 내가 만든 소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무리 C와의 섹스가 별로였더라도, ‘그애는 섹스를 못해’라고 일축하긴 어렵습니다. 정작 나는 그와의 섹스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했나, 라는 질문이 따라오죠.

영화 <뉴니스> 스틸 이미지





스펙 반 노력 반, 이만하면 공정 게임


또 누군가는 말합니다. 섹스는 웬만하면 맞기에 맞춰볼 필요가 없다고요. 세상에는 ‘잘못된 만남’이라는 게 있습니다속궁합에서 이는 스펙 차에 해당합니다. 일반적으로 질의 깊이는 10cm 전후, 음경 길이는 발기 기준 12cm 전후라고 하는데요. 대부분 평균 안팎이지만, 살다 보면 종종 같은 종족인지 의구심이 드는 상대를 만나곤 합니다. 이건 <안 되는 사이>입니다. 그 옛날 JTBC <마녀사냥>에서 ‘동그라미 세모’ 드립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이런 경우는 있겠습니다. 사각형과 둥근 사각형이요. 그럴 땐 둘 사이 남는 공간에 약간의 쿠션을 더해 보완할 수 있을 겁니다. 혹은 아귀는 딱 맞는데 조금 뻑뻑한 경우도 있겠죠. 테크닉은 이럴 때 빛을 발합니다. 핑거링을 잘하는 남성은 여성의 그곳을 금세 촉촉하게 만듭니다. 반대로 발기는 됐지만 긴장한 탓에 삽입을 못하는 애인을 다정하게 인도해 줄 수도 있죠. 이런 부분은 세심한 관찰과 노력으로 맞춰갈 수 있습니다.


다만 둥근 사각형과 사각형 정도의 스펙 차여야 합니다. 웬만하면 맞다니요. 할 때마다 아픈 사이도 있는 걸요. 게다가 처음 강조했듯 태도까지 나태하면 개선의 여지가 없습니다. 잔인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그래도 섹스는 인생의 다른 부분보다 낫습니다. 운이 끼어들 틈이 없거든요. 운명을 빠르게 수용하면, 노력한 만큼 성취감을 얻을 수 있죠.

영화 <뉴니스> 스틸 이미지




사람은 클라우드 속에 살지 않는다


그리고 항상 나오는 얘기.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껴둬야지.’ 예상하셨겠지만, 전 일평생 한 사람과 섹스해야 한다는 관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가치관 싸움입니다.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둘 중 하나죠.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는 합니다. 섹스는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다채로운 행위를 했는지 카운팅할 만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섹스는 몸과 마음을 나누는 애정 행위. 신상 언박싱 하는 수준의 액션이 아닙니다. 이 역시 저만의 가치관이겠죠. 


누구나 사랑을 합니다. 그리고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닙니다. 몇 번의 사랑이 일생에 걸쳐 왔다가죠. 그리고 인간은 육신을 지닌 존재입니다. 클라우드에 떠나는 존재가 아니라요. 몸이 있는데 어떻게 정신만 교류할 수 있을까요. 마음이 가면 몸이 가고, 몸이 가면 마음이 가기 마련입니다.


이만하면 ‘찐 사랑과만 자야 한다’와 ‘아무나 자고 본다’ 사이의 소모적 논쟁은 피했다고 봅니다. 요는, 적절한 시기에 마음이 통하는 상대와 자는 일이 지탄받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섹스는 몸과 마음의 대화입니다.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죠. 공감도 하고, 반박도 하면서 긴장감 넘치는 티키타카를 주고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제 눈에 비친 섹스는 난자와 정자를 취합하는 생물학적 행위도, 성스러운 그 무엇도 아닙니다. 그저 짐승에서 한 발짝 나아간 존재로서 정신과 몸을 엮을 줄 아는 생물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 중 하나죠. 

영화 <뉴니스> 스틸 이미지




당신의 섹스가 체험형 인턴이 아니길


그래도 덧붙이자면, 섹스가 체험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직장 두세 개만 다녀봐도 어떤 조직이 건강한지는 알 수 있잖아요. 굳이 엉망인 조직을 여럿 거칠 필요는 없죠. 건강한 회사는 역량을 발휘해 더 나은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는 조직입니다. 그처럼 섹스도 경험을 쌓으면서 추억을 축적할 수 있는 사람과 나누는 편이 좋습니다.

일정 기관 일관된 상대와의 꾸준한 섹스는 잠자리를 풍요롭게 합니다. 여러 명과 얼마나 많은 섹스를 했는지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등장인물이 바뀌면 서사가 바뀌니까요. 경력이랍시고 떠들 무용담은 될지 모르겠지만 컬렉팅이 된 성관계란, 글쎄요. 단발적 섹스는 멀리 나아가지 못합니다. 피드백을 주고받을 미래가 없으니까요.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와의 대화를 떠올립니다. 따뜻한 애정과 튼튼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섹스도 그처럼 완연한 충족감을 줄 수 있습니다. 섹스를 섬광 같은 쾌락으로만 본다면, 섹스의 일면 밖에 모르는 겁니다. 섹스가 얼마나 깊고 끈끈한 커뮤니케이션이 될 수 있는지요. 

애인과 야한 밤을 보낼 예정이라면 무슨 보고서 브리핑하듯 말고, 언어유희를 즐기세요. 솔직하지만 다정한 피드백도 나누고요. 좋은 책이란 질문을 낳는 책이라고 하잖아요. 섹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인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당장 애인은 없더라도, 섹스가 대화인 걸 안다면 언젠가 세상 충만한 섹스를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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