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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민지 Aug 10. 2021

한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공간에 대해

<알고 있지만> 유나비의 원룸과 <청춘시대> 쉐어하우스


최근 드라마 <알고 있지만>에 푹 빠졌습니다. 주인공 유나비와 박재언 사이에 감도는 긴장감을 주시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갑자기 드라마 얘길 하려는 건 아니고, 유나비가 사는 공간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유나비의 집은 머리가 샐 때까지 살아도 될 정도로 넉넉한 원룸입니다. 한 귀퉁이를 차지한 침실은 야외 공연장을 방불케 하죠. 허벅지까지 높게 올라온 3단 계단은 이 집에서 침대가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줍니다. 침실 양쪽에 있는 좁은 유리창은 미약하지만 침대와 책상을 가르는 파티션 역할을 합니다.


침대에서 대각선 방향으로는 거실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이 펼쳐집니다. 다시 대각선 방향에는 저녁을 해 먹을 수 있는 부엌이 자리하죠. 좋아하는 남자를 불러 사랑을 나누고, 밥을 해 먹고, 다시 거실에서 온종일 뒹굴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문득 대학생 다섯 명이 쉐어하우스에 사는 이야기인 드라마 <청춘시대>가 떠올랐습니다. 극 중 인물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2명씩 같은 방을 쓰는데, 침대 2개와 책상 2개를 테트리스처럼 조합한 모양이었죠. 여럿이 사는 생활감이 묻어납니다.

JTBC <알고 있지만> 공식 사이트


지인을 초대하는 자유


누구나 유나비처럼 혼자 넉넉한 공간을 누리고 살면 좋겠지만, 생활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여럿이 함께 사는 것을 감수하게 되는 이유죠. 하지만 동거란 번잡스러운 일입니다. 현관을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삶의 양식은 필연적으로 얽히니까요.


생득적 혈연가족도 예외는 아닙니다. 제 초등 5학년은 소위 말하는 ‘인싸’ 시절이었는데요. 저와 엄마의 충돌이 유독 잦았던 시기였습니다. 깔끔한 성격의 엄마는 외부인을 집안으로 들이는 것을 싫어했는데, 저는 부득불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곤 거실에서 수다를 떨거나 안방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죠.


맞벌이를 하는 엄마는 5시경 집에 돌아왔는데, 7교시를 기준으로 하면 노는 시간은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엄마의 퇴근이 임박하면 방에 어지른 흔적을 없애기 바빴죠. 하지만 아무리 깔끔하게 치워도 엄마는 누군가 다녀간 기색을 금세 알아채곤 했습니다. 제발 안방만큼은 친구 좀 들이지 말라고 혼나곤 했죠.


지금이라면 누군가가 그렇게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제겐 친구들과 노는 것이 그렇게 간절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코인노래방도 없던 시절인 걸요. 지금 생각하면 다른 무엇보다도 제가 원했던 건 지인을 초대하는 자유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안방 사용은 다른 문제지만요.





코리빙 공간에서 섹스할 수 있을까


몇 년 새 우리나라에는 쉐어하우스가 하나의 주거형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집세만 함께 감당하는 소극적 방식부터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함께 살아가면서 커뮤니티를 누리는 방식 등 스펙트럼이 넓죠. 다양한 주거방식만큼 룰도 제각각일 겁니다.


최근 동대문구에 새롭게 신설된 공유 하우스를 찾아갔습니다. ‘코리빙(co-living)’이 말하는 주거 형태란, 동거 양식이란 무엇인지 궁금했죠. 호텔을 개조했다는 공간은 입구에서 발열 체크를 하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사는 아파트 입구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약간 낯설었죠.


1인실을 둘러봤습니다. 방은 세탁과 부엌을 바깥으로 뺀 것을 고려해 딱 취침과 개인 업무를 볼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로비와 카페, 식당과 루프탑은 다른 사람들은 물론 지인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마련돼 있었죠.


저는 방에도 지인을 초대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외부인 초대에 대해 물으니 전용 앱을 통해 방문등록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11시가 되면 퇴실하는 조건이었죠. 원칙상 연인과 살을 섞을 순 있어도 함께 밤을 보낼 순 없었습니다. 알림을 보내진 않더라도, 외부인을 꼼꼼히 관리하는 것은 알 수 있었죠.

동대문구의 코리빙 하우스의 창문


집 놔두고 왜 밖에서 섹스해야 할까


<알고 있지만>의 유나비는 마음껏 친구들을 불러들입니다. 과 친구들을 초대해 술 게임을 하고, 관심 있는 남자를 초대해 온종일 몇 날 며칠을 보내기도 하죠. 반면 <청춘시대>의 쉐어하우스 벨 에포크는 금남의 구역입니다. 남자친구를 몰래 들였다가 심장 졸이는 에피소드도 있죠.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집 놔두고 왜 밖에서 섹스를 해야 할까. 가족이나 하우스 메이트와 동거해 봤다면 무슨 뜻인지 알 텐데요. 꼭 살을 섞지 않더라도, 집 데이트가 불가한 환경만 따져봐도 그렇습니다. 비는 방을 놔두고 바깥에서 데이트를 할 때면, 성적 관계와 주거 공간의 관계란 무엇인지 그려보곤 했죠.


둘이 공존할 수 없는 배경에는 먼저 집에 대한 소유권이 있을 텐데요. 거주지의 룰을 정하는 데 세 들어사는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는 물음이죠. 이는 부모님과 사는 집에서도 반드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대개 경제권이 없으면 따라야지, 하는 여론이 주를 이루더군요.


두 번째는 연인 관계가 띠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연인은 타인을 배제한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육체적 관계는 둘만 있는 상황에서 이뤄지고요. 성관계를 동반한 애정 관계는 여타 사회적 관계와는 다른 배타성을 띱니다. 어쩌면 그 비밀스러운 배타성이 거주와 공존하기 어려운 이유일지 모르겠네요.

JTBC 드라마 <청춘시대> 공식 사이트



한 집에 사는 사람끼리 그러는 거 아닙니다


동거인과 사는 곳에 애정 관계의 연인을 들이는 것은   되는 걸까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기혼자들이 많은 커뮤니티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밤마다 바짝 들이대는 남편이나 아내가 두렵다는 사연글에  달리는 댓글이었는데요. “가족끼리 그러는  아닙니다”.


이 같은 표현은 서로 껄끄럽게 느끼는 거주와 섹스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 줍니다. 한 집에 부대끼는 사람 사이에는 성적 긴장감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역으로 있던 성적 긴장감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집일 수도 있고요.


밀란 쿤데라는 ‘한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것은 한 침대에서 섹스할 수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고 했는데요. 과연 같이 자는 행위와 살을 섞는 행위는 비슷한 듯 다릅니다. 전자가 더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하죠. 나란히 잠든다는 건 상대의 수면 버릇부터 다음 날 아침에 가장 먼저 만날 얼굴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니까요.


누군가와 섹스를 한다는 건 그와 이튿날을 기약하고 싶다는 마음일지 모릅니다. 결국 자신만의 프라이빗한 공간을 가진다는 건 단순한 잠자리를 넘어 타인과 아침밥을 지어먹을 수 있는 환경을 시사합니다. 막상 함께 살면 댓글 마냥 섹스가 어색할지라도요.

Unsplash, @Toa Heftiba



누군가와 아침을 맞을 수 있다는 것


1인 가구 셋 중 하나는 청년입니다. 주거 형태로는 다가구 단독주택이 가장 많고, 오피스텔과 기숙사가 뒤를 잇죠. 연립주택에 방 한 칸 차지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그 좁은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고, 누군가와 식구가 될 수 있을지 그려봅니다.


‘사랑은 관광이 아니다’. 코로나로 생이별한 국제 커플들이 지난해 벌인 캠페인 구호입니다. 그럼 섹스는 무엇일까요. 누군가와 잔다는 것(sex)이 잠드는(sleep) 것과 동의어는 아닐지언정 유사어라면, 적어도 섹스는 누군가와 다음 날 아침을 기약하는 행위일 겁니다.


관광이 아닌 사랑은 생활에 가까울 겁니다. 그렇다면 섹스는 최소한 체류 아닐까요. 누구의 허락도 필요치 않은 나만의 공간에서 우리는 타인을 초대하고, 나체로 상대를 끌어안습니다. 집이 있다는 건 타인과 거리낌 없이 머물 수 있는 삶의 조건을 반영합니다.


주거지가 좁아질수록 타인을 초대하는 일은 어려워집니다. 타인을 들일 수 없는 환경은 환대의 마음을 증발시키죠. 간혹 모텔을 갔다가 관계를 거부해 마음이 상한 커플 사연을 보곤 합니다. 결국 비용 문제입니다. 잠시간 서로 살을 섞는 데 대실비를 지불한 탓이죠.


섹스는 확실히 사치입니다. 시간당 5천원 짜리 아메리카노에 비해 2만원에 달하는 대실은 얼마나 값비싼가요. 대실을 했는데 관계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는 이의 미숙함은 차치하겠습니다. 저는 그저 누구나 대실할 필요 없이 자기만의 프라이빗한 공간이 있는 그림을 상상할 뿐입니다.






1인가구가 늘어날수록 다양한 형태의 공유주택이 나오고 있지만, 이상하게 제 입가엔 씁쓸함이 감돕니다. 누군가와 살을 섞고,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집이 있다면, 많은 이들이 연인과 함께 사는 삶을 꿈꿀 거라 생각합니다. 사랑을 나누고 아침을 맞을 공간 하나가 없어서 각자도생하는 세상이니까요.


당신은 혼자 살고 싶으신가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 저의 낡은 생각일지 모릅니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사람에 대한 오래된 열망 말이죠.


이정향 감독 <미술관 옆 동물원> (1998)




표제 이미지

영화 <봄날은 간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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