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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민지 Oct 12. 2021

Nocturne for Bed two body

당신에게서 비에 젖은 나무 향이 나


고소한 달큰함에 반해버렸지 뭐야 


그게 처음 맛보면 어떤 느낌이냐면, 잘 만든 크렘 브륄레 같아요. 왜 영화 <아멜리에>에 보면 아멜리가 숟가락으로 톡톡 깨어 먹는 디저트 있잖아. 겉은 살얼음처럼 바삭한데 안은 촉촉한 거. 얘는 그건 아니지만 일단 둘 다 계란이 들어가는 게,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색다른 긴장감이 있다는 점이 같죠. 사실 색만 보면 옅은 캐러멜 색이라 술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부들부들한 계란찜 같은 거품은 또 어떻고.


거품을 넘기면, 코끝에 아몬드를 볶은 듯한 고소한 냄새가  들어와요. 사실 아몬드는 아니고 살구씨로 만들었지만. 그리고는  익은 복숭아를 닮은 달큰함이 입안을 감싸죠. 이날 이후로 아마레또 사워는  최애 칵테일이 되었어요. 쉬이 묘사가 어려운  고소한 달큰함이 매력이죠.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무화과향, 저기에 초점을 맞추면 꿀에 절인 꽃잎향이 나요.  구운 파이지에 각종 과일을 잔뜩 올린 타르트 같기도 하고요. 마치 어떤 악기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달리 들리는 오케스트라처럼.

@Daria Shevtsova, pexels



 몸의 향기를 지우지 말아 줘


흔히 칵테일은 , ,  3번에 걸쳐 맛보는 술이라죠. 어떤 날의 섹스도 이처럼 독특한 풍미를 지닙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얘기를  건데요. 침대 시트에 남은 향은 당신과 그의 체취, 잔향만 간신히 남은 향수, 그날 함께 걸었던 밤거리에 떠도는 향의 총체입니다. 모텔에 들어가기  머문 공간이 연탄과  연기가 가득한 공덕동의 골목길인지, 혹은 오렌지빛 천막이 흔들거리는 종로3가의 포차인지, 영화 <대부> 떠오르는 이태원의 시가 바인지에 따라 향도 달라지겠죠.


잠자리에서 사람은 둘로 나뉩니다. 씻고 하는 사람, 바로 하는 사람.  데이트  씻고 나왔다는 전제 하에 섹스는 바로 하는  좋다고 봐요. 섹스는 문명사회를 살아가면서 인간이 일상에서 동물성을 느낄  있는   되는 행위이니까요. 몸에 계면활성제가 들어간 바디워시를 묻히는 순간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청결이 도덕률처럼 여겨지는 것에 반대합니다. 각종 위생용품이 온갖 컨셉을 입고 나오는 마당에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죠. 물론 손만큼은 씻어야 합니다. 세상의 온갖 사물을 탐색하느라 세균이 가득하거든요.


아무튼 섹스 직전 씻는 건 막 술을 따르려는데 술잔을 씻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위생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펜션의 오래된 찬장에서 꺼낸 술잔을 한 번 헹궈야 하는 것과 닮았죠. 잔을 닦으면 물기를 꼼꼼히 훔쳐야 합니다. 술맛이 흐려지면 안 되니까요. 온도 변화는 말할 것도 없죠. 술자리는 흐름이 중요합니다. 섹스도 그렇고요. 물론 잠자리는 오로지 둘만의 문제입니다만, 일상에서 타인의 체취를 들이마실 일은 좀처럼 없는 걸요. 이처럼 드문 순간, 그때의 조건에 충실한 것도 섹스의 매력입니다. 피임은 열외지만요.

@Polina Kovaleva, pexels



잠자리의 즐거운 습관 


사람마다 자신만의 주정(酒精) 있습니다. 고유한 체취에 아침에 뿌렸을 코롱, 세탁기의 섬유 유연제와 하루의 흔적이 만나 31 피부 위에서 특유의 향을 연출합니다. 검지와 엄지 사이에  들어오는 귓불, 체격 좋은 남자여도 가장 여린 부위인 손목, 입술로 덮기 좋은 목덜미, 움푹  겨드랑이까지 제각기 다른 농도로 냄새를 완성하죠. 여기에 서로의 살결을 부딪히는 행위는 각종 체액과 땀을 분출시킵니다. 단추 사이로 은근히 흘러나오던 체취가 폭발하는 순간이죠.


후각에 대해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예민합니다. 뇌에 냄새를 담당하는 세포가 더 많기 때문이라죠. 그러고 보면 확실히 잠자리에서 상대방이나 심지어 자신의 몸에서 나온 체액에 코를 박고 있었던 건 언제나 제 쪽이었습니다. 갓 분출된 체액을 닦자마자 휴지통에 버리는 건 어쩐지 서운합니다. 암모니아가 득실거리는 분변도 아닌 걸요. 몸에 들어가면 새 생명이 될지도 모르는 남성의 그 액체는 밤꽃 냄새와 비슷하다고 하는데요. 아쉽게도 밤꽃을 볼 일이 없어서 여태 비교는 못했네요.


체액을 시향하는  잠자리의 즐거운 습관이었습니다. 끈적이는 피부를 맞대고 말간 액체에 코를 들이대면 방금까지 둘을 묶어준 잠자리를    재생해 줬으니까요. 섹스가 아니면 맡지 못할  냄새는 잠자리의 여운을 늘여주는 페르마타 같은 것이었습니다.


@Ketut Subiyanto, pexels


아쿠아는 싫고 짙은 숲향이 좋겠어


그는 언제나 선명한 블루를 연상시키는 아쿠아향 향수를 뿌렸습니다. 채도가 높은 시원한 향이었죠. 그를 좋아했으니 그의 것들을 수용했지만, 그래도 제 취향은 따로 있었습니다. 솔직히 아쿠아향은 영 정이 가지 않습니다. 물 하면 새파란 동해 바다가 먼저 떠오르는데, 몇 년 전 스노클링을 하면서 맛본 동해바다는 그런 맛이 아니었거든요. 염화나트륨의 짠맛에 각종 비린맛이 뒤섞인 바닷물은 아쿠아향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죠.


남자의 향이라고 하면 역시 새벽안개가 자욱한 숲속향이 좋겠습니다. 밤의 고속도로를 지날  맡는 생생한 암녹색 향이죠. 칵테일로 치면 알싸한 생강맛의 진저비어에 라임이 곁들여진 모스코  같은 술이랄까요. 결국 즐기는 술이 이렇게 향수 취향과 맞닿네요.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인 아마레또 사워는 평소 사용하는 구어망드 계통의 향수와 맞닿고,  번째로 좋아하는 산뜻한 풀향이 나는 칵테일은  번째로 좋아하는 우디 계열 향수와 만납니다. 애인에게 바라는 향이기도 하고요.  


마침 지난달 연남동의 G 브랜드 매장에서 언젠가 애인에게 선물하고 싶은 향기를 만났습니다. 갑작스레 내린 가을비에 공원을 가로질러  카페로 들어선 남성의 젖은 트렌치코트에서  법한 냄새랄까요. 물기 어린 나무를 연상시키는 향이 근사했죠. 낙낙한 후드티에도, 목까지 잠근 셔츠에도 어느 쪽이든  어울릴 향이었습니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경의선 숲길을 빠져나오면서  다시 찾아오리라 마음먹었죠. 


@Kaique Rocha, pexels



어둠이 발밑까지 내려앉은 공원을 걷습니다. 팔짱을 고쳐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그의 점퍼에서 가라앉은 녹색 향이 올라옵니다. 서로의 발뒤꿈치가 한껏 무거워질 때쯤 발길을 돌려 그의 집으로 향합니다. 번호키를 누르기 무섭게 현관문이 닫힙니다. 그리고 노란 조명 아래  사람의 조향 작업이 시작됩니다.   어른 둘이 어우러지는 데에는 이만한 이중주가 없습니다. 애인의 가장 깊숙한 잔향까지 앗아가려는  몸놀림이 벌써 사랑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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