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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민지 Dec 31. 2021

네가 날 채워줬으면 좋겠어

섹스의 비밀 묘약은 사랑이야*

그 흔한 첫경험보다 중요한 것


당신의 첫경험은 언제인가요? 이 같은 질문에 우린 으레 삽입 섹스(sexual intercourse)의 처음을 돌이킵니다. 하지만 첫 삽입 섹스가 좋기란 어렵습니다. 첫 삽입 섹스가 좋았다고 말하는 여자는 한 명도 보지 못했거든요. 남자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첫 삽입은 해안에 정박하려는 난파선의 시도에 가까울 때가 많죠. 미숙함의 다른 말은 풋풋함이라고 하지만, 글쎄요.


모두가 그렇게 좋아하는 섹스는 첫 삽입 섹스의 그림과는 거리가 멉니다. 사람들이 밝히는 섹스는 몸과 정신이 완연히 피어난 섹스인데, 처음부터 그러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한쪽이 준비가 돼 있다 해도 다른 한쪽이 예열돼 있지 않으면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특정한 종교나 가치관을 제외하면 ‘경험이 없어서 좋다’는 말은 소유욕에서 오는 만족이 팔 할이라고 봅니다.


거칠게 말하면 첫 삽입 섹스는 그 이후의 성생활을 이끄는 데 별 힘을 갖지 못합니다. 여성의 질과 남성의 음경이 결합되는 첫 순간은 1000피스짜리 퍼즐을 완성할 때의 감동과 거리가 멀고, 아마추어의 붓질처럼 동작도 엉성합니다. 여성의 경우 성감이 발아하는 것조차 쉽지 않죠. 게다가 평소 취할 일이 없는 동물 같은 자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회의감까지 부릅니다.


반면 ‘누군가에게 성적 갈증을 느낀 첫 순간’은 다릅니다. 한 인간의 섹스 라이프의 결정적 역할을 하죠. 끝나지 않을 마라톤의 첫 총성이랄까요. 걸어도 좋고, 뛰어도 좋지만 멈출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 순간을 ‘첫경험’으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Carl Newton @Pexels




섹스 라이프가 시작되는 3가지 조건


물론 타인을 향한 성적 갈망이 섹스 라이프의 신호탄이라고 해도, 전부는 아닙니다. 한 사람의 성생활이 시작되려면 3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신체 기관의 작동, 정신의 깨어남, 그리고 타인을 향한 성적 열망입니다. 첫 번째가 빠지면 몸이 흥분하지 못합니다.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죠. 세 번째가 빠지면 그냥 자위입니다. 누군가와 섹스를 하더라도, 나르시시스트의 자기만족에 불과하죠.


제가 보기에 신체적 기능은 디지털의 이진법에 가깝습니다. 0 혹은 1. 작동 여부만이 중요하죠. 발기할 수 있거나, 없거나만 나누면 됩니다. 정신적 감흥은 넓이를 지닙니다. 취향을 발전시키는 과정과 비슷하죠. 클래식 음악에 빠지는 것처럼요. 같은 곡을 수없이 돌려 들으면서 귀를 예민하게 만들고, 곡의 형식이나 작곡가에 대한 배경지식을 늘려갑니다. 그처럼 섹스에 대해서도 정신의 민감도를 계발할 수 있죠. 테크닉쯤 관심만 기울이면 연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사람을 향한 성애가 있습니다. 성애에는 많은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일순간 감도는 짜릿한 성적 긴장감도 있지만, 가장 깊은 곳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만큼 무한대로 증식할 수 있는 마음은 없죠. 사랑은 섹스 라이프에 관여하는 세 요소 중 가장 잠재력이 뛰어납니다. 저는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 1>에 나온 B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섹스의 비밀 묘약은 사랑이야”.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 1> 스틸샷




섹스 라이프가 개화하는 과정


성기를 발견하는 경험은  쾌감을 확인하는 경험입니다. 영화 <님포매니악 1>의 조가 이 최초의 발견을 잘 보여주죠. 조는 2살 때 자신의 성기를 발견합니다. 조는 친구 B와 화장실 바닥에 샤워기로 물을 뿌리고, 치마를 걷어올리고 엎드린 채 접영하듯 앞으로 나아가죠. 그들은 이것을 ‘개구리 놀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타일 위 찰방거리는 물은 조의 성기에 기분 좋은 떨림을 안깁니다. 여자아이가 음핵을 발견하는 순간을 이보다 더 진실되게 묘사할 수 없을 거라 봅니다.


조가 색정증이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남녀를 막론하고 아이가 자신의 성기를 발견하는 일은 매우 이른 시기에 진행됩니다. 많은 아동이 유아 자위를 하죠. 아동기가 기억나지 않더라도, 사춘기 몸에 찾아온 2차 성징은 덩치를 키우느라 잊혔던 성감대를 자극하도록 유도합니다. 저 역시 제 몸에 존재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8000개의 신경 말단을 10대 때 발견했습니다. 노란 햇빛이 낮게 내려앉던 오후 그곳의 낯선 감각을 몇 번이나 깨웠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성기를 발견했다고 정신이 깨어난 건 아닙니다. 만지면 짜릿한 성기의 쾌감은 물리적 반응에 불과합니다. 섹스 라이프의 두 번째 조건은 정서적 감흥인데요. 제 경우 이는 성기를 발견한 그해, 혹은 그 이듬해에 일어났습니다. 친척집에 비치된 무협지가 계기였죠. 세계문학전집은 여럿 읽었어도 무협지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둔덕과 유방이라는 활자는 보자마자 성적인 감흥을 일으켰죠. 다리를 꼿꼿이 세운 채 성애의 세계로 무방비하게 빨려 들어갔습니다.


손놀림에 성기가 부풀어 오르고, 단어 몇 음절을 엮은 성적인 텍스트에 뉴런들이 긴밀한 연락망을 형성하고 나면, 그다음에 남는 건 외부 동인입니다. 욕망의 대상이 될, 한 인간이죠. 한 사람에게 매료되면 그를 나의 일부로 흡수하고 싶어집니다. 나라는 개체와는 완전히 별개의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채우는 환상에 시달리죠. 그때부터 몸과 정신은 섹스의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Masha Raymers @Pexels




‘첫경험’은 무수한 조율 뒤에 따라오는 것


음핵을 발견하는 일은 최소 10분간의 물리적 마찰을 필요로 합니다. 정신을 야하게 만드는 건 연애의 촉을 발달시키는 일과 유사합니다. 나중엔 살색만 봐도 머릿속에 전기가 팡 들어오지만, 처음엔 그게 신호인지도 모르죠. 동정 상태의 캄캄한 머릿속을 땀이니 협곡이니 하는 낱말을 촛불 삼아 밝힙니다.


한 사람을 원하기까지는 더 긴 시간이 요구됩니다. 일단 결핍이 전제돼야 하는 데다가 상대가 나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적임자라고 피부로 느껴야 하죠. 혼자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감정에 지배당한 최초의 순간. 이러한 ‘첫경험’은 처음으로 나체로 마주한 두 남녀가 성기를 끼워 맞추려고 버둥거리는 순간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단숨에, 불현듯, 갑자기와는 아주 거리가 멀죠.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엔 마냥 어색하고 우스웠던 몸놀림도 어느덧 유려하게 한 몸이 됩니다. 서로를 서로에게 꼭 맞게 어르고 달랜 결과죠. 그쯤 되면 손끝만 스쳐도 젖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첫경험’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조율한 지 10년은 된 피아노와 몇 시간을 씨름한 조율사가 어느 순간 명징한 음을 들려주는 때. 이후 연주에 대해선 설명이 불필요하겠죠.


서로만을 겨눈 채 몸과 마음을 감응시키려고 겨루는 시간은 그 자체로 섹슈얼합니다. 그 시간의 한복판에 있는 연인에게 사랑과 섹스의 차이를 묻는 건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한 인간의 몸과 정신이 또 다른 한 사람을 향해 언제든 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만으로 둘은 분리하기 힘든 것이 되죠.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 1> 스틸샷




(몸 x 정신) * 사랑 = 성적 쾌감


<님포매니악 1>에서 조의 친구 B는 클럽을 결성합니다. 같은 남자와는 다시 자지 않는 것이 조직의 룰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B는 자신이 세운 룰을 깨게 됩니다. B는 눈을 흘기는 조에게 속삭입니다. “섹스의 비밀 묘약은 사랑이야”라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도 B에게 공감하죠. 제롬을 사랑하게 됐으니까요. 전 B의 이론을 조금 더 정리하고 싶습니다.


앞서 신체 기관의 능력은 0 혹은 1인 이진법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발기할 수 있거나 없거나 정도면 충분합니다. 정신적 감흥은 그보다 확장성이 뛰어납니다. 관심도에 따라 그 몫을 키워갈 수 있죠. 신체라는 상수에 정신의 윤활도를 곱하면 한 사람의 성적 쾌락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곧 몸이 작동하지 않으면 그 값은 언제나 0. 몸이 작동한다면 정신의 민감도만큼 값이 커지겠죠.  


섹스 라이프의 마지막 요소, 사랑은 어떨까요. 사랑은 제곱입니다. 신체가 멀쩡하고, 정신이 3 정도의 민감도를 가진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값은 1x3=3이죠. 사랑이 없다면 여기에 그칩니다. 하지만 사랑이 더해진다면 그 값은 제곱으로 불어납니다. 1x3에 3승, 27이 만들어지죠. 성적 쾌락은 애정의 농도에 따라 곱절로 늘어납니다.


1 x 3 = 사랑 없는 섹스의 값 ‘3’
(1 x 3) * 3 = 사랑이 동반된 섹스의 값 ‘27’


한 사람의 성욕과 쾌감을 키우는 데에는 사랑만한 것이 없습니다. 사랑을 통한 지고의 오르가즘을 경험하면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한없이 점으로 수렴하는 감각은 다른 어떤 활동에서도 쉬이 얻을 수 없죠. 그렇게 사랑하는 이는 내 안의 갈증을 해소해 줄 유일한 이온음료가 됩니다.





(



                               .)


그가 떠난 뒤 해가 들지 않는 밤이 계속됩니다. 취미나 자기계발 따위로 어둠을 밝혀본들 다 인공조명입니다. 희미한 빛이라도 들면 몸을 기울여 보지만 허사입니다. 사랑을 속삭이던 비밀스러운 밤에 비해 그림자 하나 없는 사회의 대낮은 권태로 다가옵니다.


성적 욕망을 제곱으로 키우는 건 사랑입니다. 제곱근에는 나 자신의 몸과 정신이 있죠. 결국 제곱근은 스스로의 산물입니다. 사랑이 좀 떠났다고 몸과 마음이 퇴화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애정이 결여된 오르가즘은 보잘것없습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는 서로의 기억을 지운 연인이 나옵니다. 그들은 사랑으로 울고 웃었던 시간을 지운 채 다시 만나죠. 한 사람에게 품었던 성적 열망을 그들처럼 지우는 상상을 합니다. 내 안의 갈증을 채워줬던 전해질의 인간을 어떻게 잊어야 할까요. 당신이라는 허기를 모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요즘입니다.





*부제는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 1> 중 조의 친구 B의 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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