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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Mar 27. 2022

나도 누군가에겐 회사이니까

회사는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그 회사 어때?" 회사를 옮긴 지 얼마 안 된 내게, 가까운 이들은 꼭 이렇게 묻곤 했다. 무작정 확신을 갖고 말하긴 어려우니 '나쁘지 않다'거나 '괜찮은 것 같다'고 뭉뚱그려 답하면 '적응은 잘했느냐', '회사 동료들은 좀 어떠느냐', '일은 할 만하느냐'는 후속 질문이 이어지곤 하는 그 질문. 한데 한순간 나도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소개팅을 마치고 온 내게 '그 사람 어때?'라고 묻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째서 '회사'를 두고 서로에게 이렇게 질문하는 걸까?


업무 강도나 환경, 팀 동료들, 출퇴근 거리, 워라밸, 조직문화와 각종 복지제도들.. 일터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요소가 어떤지 한번에 물어볼 때 이만한 질문이 없나 싶다가도, (인간이 어찌 항상 엄밀하겠냐마는) 과하게 뭉뚱그려 물어보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던 와중 지난해 읽은 한 책이 떠올라, 생각이 머무르는 지점이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펜데믹의 시작점 즈음해서,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를 읽었다. 기존에는 생각이 가닿지도 않던 감염, 백신, 면역이라는 개념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계기였다. 이 같은 과학적인 개념들 외에도 사람들과 관계하고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는 크나큰 고찰을 얻을 수 있었다. 겉으로는 감염과 면역에 대해 서술한 책이지만, 그 속에서는 영향을 주고받고 살아가는 인간(人間)이라는 존재에 관해 넉넉히 설명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우리가 사회적 몸을 무엇으로 여기기로 선택하든,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다.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우리 몸들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지. 우리 몸의 건강은 늘 남들이 내리는 선택에 의존하고 있어. (…) 요컨대 독립성이라는 환상이 존재한단 거야."


특히 건강과 안전의 문제에서 인간은 결코 독립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팬데믹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크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옮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옮길 수밖에 없는" 이 잔인한 역병이 우리에게 알려 준 것은, 주변 환경은 물론이고 내 몸조차도 마음대로 다룰 수가 없다는 답답한 진실이었다. 그 사실을 너무 비싸게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선물받은 것들로 채워지는 사무실 책상. 우리는 이렇게나 다른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최근 2~3 사이, 하나의 망령(?) 스타트업씬을 떠돌고 있다. '최고의 복지는 동료다(a.k.a. 최복동)'라는 (어쩌면 너무 당연한) 강령이다. 위의 이야기들을 모아  가지 해답을 나름 덧붙이자면, '자신이 존재 자체로 동료들의 환경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최고의 복지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어떤 동료가 최고의 복지가 되는지는 각자가 생각하는 모양이 천차만별이겠지만.


'회사는 어떠냐'는 질문의 본뜻을 찾으러 다시 돌아가 본다. 뭉뚱그려진 표현인 걸 감안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무의식 속에서 '회사'라는 존재를 생동하는 무언가(유기체)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물을 수 있을 리가! 무의식이 그렇게 가정한 유기체 안에는 '서로의 회사인 우리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겠고.


'그 회사 어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옆자리 팀원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회사'라는 말에 떠올린 사람들, 그들이 곧 회사고 환경인 셈이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 팀원들이 '회사는 어때?'라는 질문을 받을 때 (특정 모습의) 나를 떠올릴 수도 있다는 말이 되겠다. 율라 비스의 말을 빌려 살짝 비틀자면, "회사는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인 것이다.


나도 참 우스운 것이, 허다하게 이런 고민만 하니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라는 말을 이렇게나 풀어 쓰게 된다. 이래저래 정리하고서야 내가 맡은 작은 일들에 정성을 더 보태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오늘 나는 어떤 동료였을까? 고민 한 번에 반성과 다짐을 합쳐 서너 번. 나도 누군가에게는 생의 삼분지일을 함께하는 회사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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