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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Feb 27. 2022

손바닥만 한 이름표 한 장이지만

글쟁이의 별안간 이름표 제작기

지난 8월, 130명 남짓이던 회사에 합류해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팀원들 이름과 얼굴을 외우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외우라고 강요하진 않았지만 얼굴이나 앉은 자리를 잘 모르면 무언가 나눠 줄 때나(저의 경우 제가 쓴 글을 나눠 주는 일이 많습니다), 슬랙으로는 하기 복잡한 이야길 전하려 할 때마다 사무실을 빙빙 돌아야 했는데, 그 때문에 얼굴과 이름을 익혀 두지 않는 건 스스로를 고생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팀원들을 계속 대면하고 질문하고 또 답을 얻어내야 하는 업무를 하고 있는 제게는 더욱이 그럴 수밖에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제가 입사한 이후로 한 달 평균 입사자는 15명 가까이 됩니다) 회사이다 보니 좁은 사무실 안에서 자리를 이래저래 바꾸는 일도 한두 달 간격으로 생깁니다. 한번은 앉은 자리로 팀원의 위치를 파악하다가 팀이 전체적으로 자리를 옮겨버리는 바람에 사람 찾느라 몇 분을 허비한 적도 있습니다. 팀원이 늘어갈 수록 답답한 마음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방도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울 때쯤 한 팀원이 '자리에 이름표 같은 걸 만들어 붙여 놓으면 안 되냐'는 제안을 해 왔습니다. 아,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다른 팀원의 이름과 얼굴, 자리를 몰라 집중해야 할 시간을 뺏기는 건 일하는 팀원은 물론이고 회사에게도 손해인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흘러 온 업무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온 제가 이름표 제작 업무의 운전대를 잡게 됐습니다. 서로의 이름을 따뜻하게 곱씹어 부를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업무인 셈이니 조직문화 담당자가 맡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라고, 합리화(?)는 신속히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스티커를 붙여 DIY(?)한 제 이름표입니다.

멀리서도 이름이 뚜렷이 보일 수 있게 디자인적 요소는 배제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소속을 파악할 수 있도록 금손 디자이너님의 도움을 받아 이름 위에 소속까지 가벼이 새겨 넣었습니다. 석 자(혹은 두~네 글자) 이름이 잘 보이는 게 우선이었고, 제가 유지·보수를 맡아야 하니 텍스트만 배치해 단순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아주 중요했습니다. 별거 아니어 보일진 몰라도 아주 심혈을 기울인 작품(?)입니다.


이름표가 생기고 나니, 막힌 가슴을 뚫는 개OO콘을 마신 것처럼 후련합니다. 모니터 위에 하나둘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이름표가 귀엽기까지 합니다. (내 새끼들..?) 저 종이 쪼가리 덕분에 제가 만든 콘텐츠를 나눠줄 때나, 팅커벨에 제보해 준 팀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러 갈 때, 업무 중 궁금한 것이 있어 리드분들을 찾으러 갈 때 아주 쉽고 빠르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 거지요. 이에 더해, 잘 몰랐던 팀원들의 이름을 조용히 발음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래저래 바람직한 일이고요.

빼꼼.. 이름표가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저 집게를 고르는 데도 고생 많이 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밀당은 조직문화를 '목표를 빠르게 달성할  있는 도구' 정의합니다. 풀어 말하면 '업무에 집중하고  나은 효율을 이끌어낼  있도록 만드는 도구'인데요. 조직문화에서마저 '효율' 말한다니, 너무 팍팍하다 느끼는 분들도 계시려나요? 오해를 덜기 위해 덧붙이자면, 밀당이 말하는 효율은 '직원을 몰아붙여 회사의 이익을 최대한 끌어내는'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업무가  수월하도록 돕는 온보딩 시스템이나, 회사와 동료들  이해할  있도록 만들어진 조직문화 프로그램이나 콘텐츠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와 본질을 찾도록 돕고, 스스로 에너지를 쏟게 하는 효율이라고 하는  맞겠네요.


이제와 돌아보니 제가 맡았던 이름표 제작도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있겠더군요. 사실 '밀당의 조직문화 정의를 고려해 이름표를 만들었습니다. 조직문화 얼라인 짱짱'이라고 하면  멋쟁이 조직문화 담당자로 보이겠지만.. 좌충우돌하며 배우는 저는 아직  수준까지  갔답니다. 단순히 저와 팀원들의 작은 불편을 해결하려는 데서 시작한 일 뿐이지만, '끝마치고 보니 이렇더이다'라고 돌이켜 생각할  있는 것만으로도  잘한 일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손바닥만   종이가, 서로를  번이라도  다정히 부를  있도록 돕는 연결점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겠다 싶습니다. 하나의 이름은 하나의 세계를 담고 있다고 하지요. 그래서 이름표가 놓인 이후로는, 팀원들 자리로 찾아갈 때마다 괜히 이름을   불러 봅니다. 우리 일터에 '이름을 부를  다가와 꽃이 되는' 이상적인 상황만 벌어지지는 지만, 이제  시작한 인생에 보내는 응원을 응축한,  이름을 따스히 부르는 일만은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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