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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Apr 02. 2018

끝이 잘 기억나지 않는 J에게

너는 삶의 유한을 너무 빨리 맞이했다.

남편의 친구를 내 지인의 회사에 소개를 해줄까 해서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문득 떠올랐는지 남편이 내게 J의 소식을 물었다. J는 나와 남편과 함께 독서모임에서 만난 동생이었다.

“J도 취준이지 않았어? 걔는 취직했어?”


연락을 안 한지 2년도 훨씬 넘은 내가 알 턱이 없었다.

“나 연락 안 한지 좀 됐는데. 모르겠어. 페이스북으로 한 번 볼까?”


그렇게 접속한 페이스북에서 우리는 믿기지 않는 사진을 하나 발견했다. J의 아버지가 손글씨를 적어 올린 종이에는 J의 사망 소식이 적혀 있었다.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동명이인일 거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하고 헷갈렸나 보다. 이게 말이 돼?”


하지만 프로필 사진에 있는 긴 갈색 머리에 갸름한 J의 얼굴이며, 졸업한 학교의 이름과, 마지막으로 인턴활동을 했던 회사의 이름까지 확인하고 보니 사망한 사람은 J가 맞았다. 그럼에도 나는 믿기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 젊은 아인데.”

나와 마찬가지로 남편도 놀란 내색을 비쳤다.


J의 사망 소식은 그날 하루를 습하게 만들었다. 밥을 먹어도, 차를 마셔도 자꾸 생각이 났다. 이제 와서 J의 집에 연락을 하거나 장례식장을 찾아갈 수도 없었다. 내가 페이스북으로 확인하기 한 달도 훨씬 전에 J가 사망했으니까.


집에 돌아오는 전철에서 잠시 생각해봤다. 나는 J와 어떻게 연락을 끊었더라. 그 끝이 흐릿하지만 유쾌한 끝맺음은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그렇다 해도 J는 좋은 동생이었다. 애교 많고 긍정적인 아이였다. 서투르게 프로포즈를 준비하던 내 남편을 도와준 것도 J였다. 우리 신혼집에 처음 놀러온 J가 선물해준 화집은 아직 책꽂이에 꽂혀있다.

연애가 서툴렀던 J는 이성을 만날 때 고민도 많고 워낙 조심스러웠다. 부끄러워하면서도 내게 “언니 나는 연애를 책으로 배웠어요!”하던 천진한 얼굴이란. 친하게 지낼 때는 그런 이야기까지 털어놓던 사이였다. 함께 친하던 동생과 셋이 곧잘 만나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최근에 관심 갖고 열중하는 일이나 공부에 대해 깔깔거리며 이야기하곤 했다.


취업을 준비하던 J는 인턴생활도 하고, 스터디를 나가고, 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일을 하던 나보다 바빠 보였다. 나와의 나이 차이가 좀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졸업하던 때와는 차이가 있으니 지금이 더 취업이 어려울 거라 생각만 했다. 내가 졸업할 당시와 지금의 취준생이 느끼는 무게감은 차이가 클 것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바쁘게 공부하는 J를 보면 대견하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저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회사에 입사를 하면 J는 굉장히 성실한 직원이 될 것 같았다.


연락이 끊어지게 된 것은 그 무렵 J 때문에 셋의 약속이 몇 번 미뤄진 다음이었을 것이다. 무슨 사정이 생겼다며 셋이 만나기로 한 일정을 J는 미루거나, 자신을 빼고 만나라고 했다. 늘 그렇듯 밝고 명랑한 어투로 그랬다. 나는 그게 서운했던 것 같다. 취업준비를 오래 하지 않았던 나는 그 무게감을 짐작조차 못할 때였다.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거라 마음대로 정의하며 J에게 서운함이 켜켜이 쌓였다.


그리고 어느 날 J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 남자 친구가 생긴 것이다. 오래간만에 생기 넘치는 말투로 J는 이 소식을 우리에게 전했다. 나와의 약속은 뒷전이면서 이런 소식을 전하는 J가 달갑지 않았지만, 나는 축하한다고 몇 마디를 적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 셋의 대화방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말없이 나간 내게 별 다른 말이 없었던 걸 보면 J도 내 마음을 알아챈 게 아닐까 한다. 


시간이 얼추 지난 후에 생각해봤는데 몇 년씩 취업준비를 하던 J에게는 간절히 바라던 취직만큼은 아니어도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누굴 만나는 것을 그리 조심스러워하던 아이였다. 몇 년째 지인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하던 J는 기쁜 일을 우리에게 공유하고 싶었을 텐데, 몇 살이나 많은 언니가 야속하게 대화방을 나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서먹하게 연락을 안 하는 동안 가끔 생각했다. 이 녀석 취직은 했으려나, 취직하면 결혼하고 싶어 했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대화방을 나가버리고 뜬금없이 연락하자니 민망해 못했다. 괜히 오랜만에 연락해 다시 어색한 기운을 견디고 싶지 않아서 나는 단념한 척, 담담한 척 그렇게 J와 다른 사회를 살았나 보다. 그래서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그런 말이 나온 적 있다. 후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무언가를 해서 하는 후회와 하지 않아서 하는 후회가 있다고. 나는 후자에 해당한다. 어색하더라도 연락 한 번 했다면 내가 J가 죽은 줄도 모르고 지내지 않았을 테고, 장례식장에서 한 번 그 아이를 추모라도 할 수 있으련만.


그 아이의 사인에 내가 보탬이 된 것은 아니지만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정말 J에게 어떤 상처도 주지 않았을까? 그 애를 힘들게 하는 데 전혀 보탬이 없었을까?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함께 얼굴 보던 사람들에게 급히 연락을 해보니 나처럼 J의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다들 충격을 받았다.


서른이 채 되지 않은 그 젊은 나이에 이런 일이 생길 거라 누가 생각했을까. J의 죽음은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에게 어떤 경계를 남겼다. 젊다고 해서, 우리 나이가 아직 싱싱하다 해서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자주 안 보는 사이에 어색한 게 싫어서 혹은 먼저 연락하는 게 자존심이 상할까 사람들을 모른 척하는 동안 우리는 이미 후회할 일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집에 앉아 있다가 J가 준 화집을 꺼내봤다. 중간에 책갈피처럼 끼워진 게 있어서 꺼내보니 J가 화집과 함께 준 엽서였다. 주변에 결혼한 사람이 별로 없는데 나와 남편의 결혼 소식에 자신까지 기쁘고 설렌다는 예쁜 말들이 적혀있었다.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부부가 되길 기도한다는 말도 있었다. 예쁜 아이였다. 그 예쁘고 싱그러운 아이가 삶의 유한을 이토록 빨리 맞이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내 후회가 너무 커서 이 사실을 믿을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J가 떠나기 전 2년 정도 서로 연락을 안 했던 터라 취직을 했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치열했던 취업준비도, 어렵기만 했던 연애도 J의 천국에서는 즐거운 기억이길 바라고 있다. J가 정말 편안했으면 좋겠다. 속이 좁았던 나는 J를 잃었고, 후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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