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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Sep 02. 2021

반려 생활이 진로가 된다면

나의 작고 어린 동물이 열어준 새로운 길

한 달에 두 번쯤, 이른바 ‘애카’에 간다. 키즈카페를 키카라고 부르듯, 애견카페를 애카라고 한다. 사람 중심의 상점에 강아지가 함께 들어가도 됨을 허락받는 애견 동반 카페와 달리 애견카페는 강아지 운동장이 있고, 강아지 먹거리를 팔기도 하고, 목줄 없이 울타리 안에 풀어놓는 형태의 카페다. 그런 곳에 가면 강아지가 몇 시간이든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으니 그렇게나마 한 번씩 모카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싶다.


그리고 나와 남편은 언제부턴가 애카에 가면 한가롭게 의자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머릿수를 센다.

“여보, 여기 지금 사람이 몇 명 정도에 강아지가 몇 정도니까 지금만 해도 얼마쯤 되겠지?”

“여기에 부동산 투자금은 대략 얼마일 거고, 그럼 계절 특수를 생각해도 일 년에 얼마쯤 벌겠다.”

“와, 애카 사장님은 좋겠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 위에서 모카는 카시트에 쭉 뻗어 자고, 우리 부부는 새로운 진로개척의 꿈을 꾼다.

“우리가 대출 얼마를 받아서 일을 시작하면 직원은 몇 명 있어야 할까?”

“우리 본업은 어떻게 하지?”

“몇 년쯤 있다 시작할까? 아, 그때는 우리처럼 애카 차리는 사람 많으려나?”

지난 6월 방문한 애견동반펜션

어쩜 질리지도 않고 애카에 다녀올 때마다 이런 대화가 오가는지 신기할 지경이지만 사실이다. 우리는 애카에 다녀올 때마다 ‘애카 차리고 싶다’는 생각에 가득 사로잡힌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초기 투자금과 노하우 등등 여건을 생각하며 ‘일단 보류’로 결론짓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의 루트가 비단 우리 부부만의 일은 아니란 걸 얼마 전 알게 됐다. 다른 견주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애카 이야기가 오가면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복사해서 붙여놓은 듯 똑같은 생각을 하는 건지!


다들 ‘애카하면 돈 잘 벌겠다.’에서 시작해 투자금과 운영과정, 인건비를 생각한다. 그러다 현재의 자금 사정과 계획을 생각하며 완전 포기가 아닌 일단 보류로 돌아서는 루트를 모두 비슷하게 밟고 있는 거였다. 애카라는 장소는 견주들의 머릿속에 달콤한 꿈과 설렘만 심어놓고 황급히 돌아서는 구남친 구여친과 같은 존재 아닐까?


애카 뿐만이 아니다. 강아지를 키우다 보면 반려동물 관련 직업을 한 번쯤 꿈꾸거나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이 정말 많다. 모카 중심으로 맺은 인스타그램만 살펴봐도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반려동물용품과 옷을 파는 견주가 정말 많다. 손재주가 좋으면 수제 간식을 만들어 팔거나 원데이 클래스를 연다. 정말 강아지를 좋아하고 온종일 붙어있어도 좋은 사람은 호텔이나 애카를 열고, 강심장을 지닌 사람은 애견미용사가 되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 역시 강아지 관련 직업을 잠시 고민한 적 있다. 모카의 목걸이를 직접 만들기 시작하면서였다. 잘 꾸미고 다니는 다른 강아지들처럼 목걸이를 하나 사주려다 DIY 키트를 발견했고, 키트를 사서 목걸이 하나만 해주느니 좀 넉넉히 만들어줄 생각으로 비즈공예 재료를 사기 시작했다.

모카가 착용한 목걸이는 모두 제가 만듭니다:) 왼쪽사진은 미용 전 털찐 모카(우)와 친구 모찌(좌).

그렇게 모카 목걸이를 몇 개 만들고 내 팔찌도 만들다가 모카 친구들에게도 하나씩 만들어주다 보니 강아지 목걸이로 자연스럽게 세컨드잡을 구상한 것이다. 거기다 주변 지인들의 칭찬은 세컨드잡이 내게 성공을 불러일으켜 줄 것처럼 용기를 불어넣었다. 특히 수많은 댓글 중에서도 “모카 엄마 금손이에요.”, “팔아도 되겠어요.”는 밤새 내 마음에 미래지향형 캠프파이어를 지펴댔다.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정말 내가 만들 듯이 강아지 목걸이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나보다 훨씬 좋은 실력과 비결과 감각이 있겠지만, 사실 원재료 값에 비하면 합리적인 가격은 아니었기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나는 어차피 본업도 있고 취미로 만들기 시작했으니까 좀 저렴하게 만들어서 팔면 잘되지 않을까?’


이쯤 되니 마음속에서 나는 이미 동대문 상가에 재료 사러 간 상인이 됐고, 밤새 비즈공예의 꿈을 펼치는 아티스트가 됐고, 돈을 벌어 모카 육포를 사주고 신상 옷을 사주는 환상이 나래를 폈다.

요즘 모카가 자주 가는 애카. 친구 로미랑.

그럼에도 실제로 나래를 펼치지 못한 건 현실의 디테일이 주는 압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장사를 하려면 사업자등록을 내고 매번 세금을 내며 일해야 하는 자영업자가 되는 것이다. 식품이 아니라 재고에 대한 부담은 덜하겠지만 어쨌든 초기에 투자해야 할 비용을 들이고 나면 본전 생각에 사로잡혀 취미의 즐거움이 사라질 터였다.


매번 배송하는 수고는 어쩔 것이며, 작업공간은 어디에 마련한담. 또 목걸이를 쓰다 끊어지거나 마감이 마음에 안 든다며 CS라도 들어오면 내 소심한 성격에 좋게 넘어가긴 글렀으니 나의 즐거운 구슬꿰기 시간이 비루한 노동시간으로 변질되는 건 너무나 뻔한 미래였다.


그렇게 보자면 애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강아지를 너무나 좋아해서 애견카페나 호텔을 차리고, 요리 솜씨와 사교성이 좋아 클래스나 간식 가게를 열어도 취미가 직업이 되면 따라오는 고충은 온전히 취미를 즐길 때와는 다른 감각으로 찾아올 게 확실했다. 비즈공예는 초기 재료비만 부담한다 치더라도 넓은 장소가 필요한 운동장과 카페는 임대료와 주차장을 확보해야 하고 공간 청결은 물론 안전관리도 틈틈이 해야 할 텐데 그것이 어떻게 100% 취미일 때의 즐거움과 같을 것인가 말이다.

모카와 애카에 다니며 애카사장님의 꿈을 잠시나마..

아마 이렇게 생각이 이어지는 과정을 많은 견주들이 경험했을 것이다. 한 번쯤 동경하듯 꿈꿔본 반려동물 관련 세컨드잡의 꿈. 끝까지 밀고 나갈 용기가 있다면 새로운 직업이 되는 것이고, 여러 차례 고민하다 현 위치에서 즐기는 선을 유지하겠다며 마음을 접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반려 생활이 진로가 된다는 건 나의 작고 어린 동물이 열어준 새로운 길이 될 수도 있고, 한여름 밤의 꿈처럼 즐거운 상상놀이가 되기도 한다.


결국 나는 즐겁게 집에서 구슬을 꿰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지만 이런 경험 자체가 매우 행복했다. 동물을 키우며 새로운 경험이 늘고 그로 인해 생각지 못했던 진로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얻은 게 많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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