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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Jun 11. 2021

개도 수영을 못 한다

모카는 수영을 못 하지. 나는 운전을 못 해. 그럼 좀 어때!

체육학 사전에 ‘개헤엄’이란 게 있다. 배를 아래쪽으로 향하고 머리는 물 밖으로 내밀고 발과 팔을 저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원시적인 헤엄의 일종을 말하는데, 개가 수영을 할 때 모습과 닮아 개헤엄이라고 한다. 그러니 개헤엄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개는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인식이었다.


모카의 견종은 푸들이다. 푸들은 과거 오리 수렵견이었다고 한다. 푸들 특유의 미용법이 몸 털은 짧은 대신 다리털을 길게 남기는 이유가 물속에서 긴 다리털이 지느러미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다리털을 이용해 빠르게 수영해서 야생오리를 잡아 오는 게 과거 푸들의 역할이었다. 다시 말하건대 이 정보에서 알 수 있듯이 개는 수영을 할 수 있고, 푸들은 당연히 수영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모카가 1살이 된 여름, 한 번씩 함께 산책을 하던 모카의 친구견 설빙이의 견주로부터 반가운 제안이 있었다.

“우리 강아지 수영장 한 번 가볼래요?”


SNS에서 강아지가 바닷가나 계곡에 가서 노는 모습을 본 적 있었다. 궁금하기도 하고 모카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고 싶어 가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강아지 전용으로 지정된 공간이 아니라면 개를 키우지 않는 타인에게 썩 좋은 느낌은 아닐 듯하여 가지 않았다. 하지만 강아지 전용 수영장이라면 사정이 다르지 않을까?


그렇게 설빙이네와 가까운 강아지 수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에 강아지 수영장이 있었다. 처음 수영을 배우는 강아지에겐 간단한 코치도 제공한다고 들었다.

‘수영 코치? 하, 우리 모카는 무려 오리 수렵견의 후손인데 수영 그쯤이야.’


모카가 신나게 놀고 내게 물을 튀기거나 같이 발이라도 담가야 할 상황에 대비해 옷과 대형 타월, 샴푸와 클렌징을 빼곡히 챙기고 기분 좋게 김밥까지 포장해서 강아지 수영장에 도착했다. 날은 조금 흐렸지만 생애 첫 수영을 경험하게 될 모카에게 흐린 날씨는 안중에도 없을 터였다.

수영장 직원이 와서 모카와 설빙이를 맞아주고 수영장 앞에서 설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을 살짝씩 강아지 몸에 끼얹어 주시고요. 제가 수영장 대각선에서 강아지를 물에 넣으면 대각선 반대 방향에 견주님이 서서 강아지를 불러주세요. 그럼 강아지가 견주님을 향해 나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수영을 하게 돼요.”

아니, 이렇게 쉽게 수영을 배울 수 있다니. 오리 수렵견의 후손인 모카에겐 너무나 간단한 첫 수영 아닐까? 나는 자신 있게 대각선 끄트머리에 서서 모카를 불렀다. 아주 당당하고 여유 있게. 


하지만 나의 기대와 달리 눈앞에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초라한 모카만 보였다. 개는 본능적으로 수영을 하는 동물인 줄 알았건만, 모카는 수영장 직원이 몸을 내려놓자마자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며 주변에 서 있던 모든 이들에게 물벼락을 씌웠다. 그 와중에 물에 쫄딱 젖어 생쥐 꼴을 한 모카의 모습이란. 오리 수렵견의 후손,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수영장 직원은 수영이 처음이라 당황했을지 모르니 잠시 후 다시 시켜보자고 했다.


그 사이 함께 간 설빙이가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영장 직원이 물속에 넣고 대각선 반대편에서 설빙이의 견주가 이름을 불렀다. 모카와 마찬가지로 오리 수렵견의 후손인 설빙이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수영을 유유하게 해내며 대각선 끝까지 나아갔다. 여유 있게 다리를 움직이고 방향을 잡기 위해 꼬리를 동글동글 돌렸다. 물 밖으로 나와서도 수영의 감각이 몸에 남아있는지 네 발을 허공에서 천천히 휘저었다.

수영한 자와 수영에 실패한 자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다시 수영장 직원과 마주 서서 모카를 수영장에 넣었다. 몇 번을 넣어도 허우적대기만 할 뿐 단 한 번도 수영하지 못했다. 성공할 때까지 시도해보려던 나를 수영장 직원이 말렸다.

“너무 많이 시도하시면 물에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어요.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치시죠.”

“그럼 우리 강아지는 수영을 못 하는 건가요? 강아지는 수영을 다 할 수 있는 것 아니었나요?”

“그게…. 백에 한 마리 정도는 수영을 못한다더라고요. 흔치는 않지만 아주 가끔 수영을 못하는 강아지도 있긴 해요.”


그러니 백에 하나 가끔 나타나는 수영 못하는 강아지가 우리 모카였던 것이다. 수영하기 싫다고 주변에 물벼락을 씌워가며 거부하던 모카는 물 밖에선 신나게 달리기를 하고 간식도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첫 수영 경험에서 훌륭한 수영 실력을 발휘한 설빙이네는 너무나 즐거워했지만, 나는 모카가 수영을 못한다는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내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집으로 돌아가기 전 강아지 수영장에서 모카의 수영장 이용료는 받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 배려에 얄팍하게 남은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어져 나부꼈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도 이 사실을 전했다.

“여보, 우리 강아지가 수영을 못 해. 몇 번이나 시도했는데 안 돼. 강아지 백 중에 하나 정도는 수영을 못한다는데 그게 우리 모카인가 봐!

남편 역시 충격을 받았는지 즉시 욕조에 물을 받아보자고 했다.

“욕조에 물 받아서 수영 가르쳐보자. 우리 강아지가 수영을 못 할 리가 없어! 나도 수영할 줄 아는데 모카가 수영을 왜 못해! 믿을 수 없어!

수영은 안 하고 다른 강아지 꽁무니 따라다닌 모카

우리가 욕조에 물을 받느니 어쩌니 난리법석을 부리는 동안 외출이 피곤했던 모카는 깊이 자고 있었다. 시끌시끌한 우리 부부와 달리 평온하게 잠든 모카를 보다가 나는 욕조의 물을 잠갔다. 수영 여부에 발을 동동 구르는 우리와 달리 모카에게 수영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모카가 수영을 싫어한다면? 평소 씻는 것도 싫어하니 물을 싫어할 수도 있는데, 갑자기 수영장에 넣은 거라면? 이제 오리를 잡을 필요가 없는 오리 수렵견의 후손에게 수영이 아무 가치 없는 일이라면?


그렇다면 우리 부부에게 강아지의 수영은 무슨 의미였을까. 흔히 미디어에서 비치던 남들만치 자라길 바라는 부모의 욕심과 같은 건 아니었을까. 지식을 비교하는 부모를 욕했으면서 정작 키우는 강아지를 다른 강아지에 비교하는 데는 경각심을 놓아버린 건 아닐까.


사실 견주들 사이에선 은연중에 비교하는 행위가 있다. 우리 강아지는 털이 많이 빠져요, 낯을 많이 가려요, 입이 짧아요 등등. 어른들이 자신의 아이를 자랑하는 대신 조금씩 낮춰 말하며 겸손을 차린 것처럼 말이다. 우리 애가 좀 덜렁대요, 우리 애는 실력이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우리 애도 누구처럼 키가 크면 좋겠네요 등등.


사람과 마찬가지로 견주들도 얼핏 겸손하게 자신의 개를 표현하는 것 같지만 틀림없는 비교이긴 하다. 털이 덜 빠지는 개에 비해, 친화력이 좋은 개에 비해, 주는 대로 복스럽게 먹는 개에 비해 우리 개는 어딘가 조금 부족하거나 어리숙하다고 말이다.

그래도 모카는 귀여워!

이날은 모카의 수영 실패에 허탈해한 나의 속내에 자식들을 비교하던 어른들의 못난 구석이 음영을 드러낸 날이었다. 태평하게 자는 모카를 보며 혼자 속을 끓이던 나는 그 못난 어른의 반열에 들어선 것을 인정했다.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그리도 어려웠던 나의 모자람이었다.


이후로 모카는 다시 수영을 시도하지 않았다. 남편과 욕조에 물을 받아 수영을 가르치지도 않았다.

“모카는 수영을 못 하지. 나는 운전을 못 해. 그럼 좀 어때!”


내가 키우는 모카는 수영을 못 한다. 여전히 편식을 한다. 하지만 밝고 발랄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고, 다리가 길어서 비 오는 날 산책을 해도 배가 젖지 않는다. 수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지만 다른 강아지가 하는 모든 것을 잘하는 강아지는 로봇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것을 알기에. 못하는 건 못 하는 대로 인정하고 문제 삼지 않는 어른이 되자는 깨달음을 나는 5.6킬로그램의 작은 동물로부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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