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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r 17. 2021

생리작용도 훈련이 되나요?

야생에서 문명으로 향하는 고달픈 여정

모카가 처음 우리 집에 도착해 한 행동은 배변이었다. 연한 노란색의 소변을 내 엄지손가락 정도 크기로 거실에 흘리고는 천연덕스럽게 쳐다봤다. 털뭉치 상태의 모카를 데려올 때도 실감 나지 않았던 나의 ‘반려 생활’이 더 이상 2D나 미디어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라는 감각은  모카의 소변에서 찾아왔다.


물론 어린 강아지의 배변훈련이 필요하다는 점과 그 과정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각오한 부분이었다. 훈련이 잘 먹혀든 강아지는 2주 만에 완벽하게 배변을 가리고, 반대로 평생 똥오줌을 못 가리며 내키는 곳이 화장실이 되는 강아지도 있다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의 생리작용을 쥐락펴락한다는 건 훈련을 받는 동물 입장에서 꽤 힘겨운 관문이다. 견주 입장에서도 배변훈련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면 평생 냄새나는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고, 혹여나 집에 손님이라도 오면 바짝 긴장하게 마련이다. 최악의 경우 배변훈련이 되지 않아 강아지를 파양 하려는 사람도 예상보다 많다.


2개월째에 우리에게 온 모카는 하루에 10번 정도 소변을 봤고, 4번 정도 대변을 봤다. 그것도 모두 거실이나 방바닥에. 처음엔 잘 모르니 최대한 배변판에서 볼일을 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어쩌다 배변판에 배변을 하면 지붕을 뚫고 날아갈 정도로 환호하며 칭찬하고 간식을 먹이며 가르친다.

나는 배변할테니 엄마는 치우거라 시절

나는 모카의 배변훈련을 하며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만약 개가 칭찬 며칠 들었다고 배변을 100% 가린다면 그건 개가 아니다. 개의 탈을 쓴 사람 어른이다. 결코 개일 리 없다. 칭찬과 간식을 반복하며 한 달여를 가르쳤지만, 모카는 내킬 때 아무 데나 배변을 하며 자유로운 영혼을 과시했다.


키우는 개가 바닥에 실수를 많이 해서 마루가 썩었다는 어느 집의 사진을 본 적 있어서 내 마음은 하루하루 메말라갔지만, 모카는 개의치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바닥에 볼일을 봤다. 모카가 배변을 하려는 시그널을 보낼 때 곧장 배변판으로 데려가라는 조언을 듣고 시도해봤지만, 배변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내 발등에 시원하게 소변을 쏟았을 뿐이다.


배변훈련이 어려워서 커뮤니티에 질문하고 주변에 개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병원에 물어봐도 답은 늘 한결같았다.

“폭풍 칭찬을 해줘야 돼.”


그래, 나도 다 안다. 배변훈련 시절 모카는 내가 수십 년간 살면서 들은 칭찬보다 훨씬 많은 칭찬을 들었을 것이다. 우연히 배변판에 볼일을 보면 칭찬을 하고 간식을 주고 놀아줬지만 모카에겐 사소한 우연일 뿐이었다. 개연성이 없었다. 애초에 개가 인과를 깨닫길 바란 게 과욕이었을까?


배변훈련이 한 달이 넘어갔다. 이쯤 되자 나와 모카는 서로 눈치 게임을 시작했다. 모카가 움찔거리거나 움직이기만 하면 나는 배변을 하는 줄 알고 번개처럼 달려갔고, 모카는 움찔거리다 가만히 앉아 나를 멀뚱멀뚱 바라봤다. 배변의 시그널이 아닌가 싶어 내가 하던 일을 하러  가면 그제야 모카는 일어나 바닥 어딘가에 쉬를 하고 다시 뒹굴고 노는 맥락 없는 일상을 보냈다.

배변훈련에 성공했다는 건 드디어 러그를 깔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연유로 나는 하루에 열 번 넘게 바닥을 닦고 탈취제를 뿌리고 매일 집 청소를 했다. 강아지의 배변을 치울 때마다 손을 씻다 보니 손의 살갗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하필 남편은 지방으로 장기출장을 가서 나 홀로 온전히 모카를 돌봐야 했다.


이때는 서로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 없어 눈치 보던 시절이었다. 모카의 배변을 미리 알아채고 가르치고 싶어서 초집중하는 나와 내가 뭘 하려는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한 모카의 진 빠지던 나날. 집에서 일하며 모카를 돌보던 나는 한 번씩 너무 힘들어 엉엉 운 적이 있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모카의 눈빛도 마냥 밝지는 못했다.


이런 어려움을 토로하면 뭣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포기하라.”거나 “원래 개집에 사람이 얹혀사는 거라.”는 농담으로 위로하려 들었다. 아무 데나 생리작용을 벌여도 개는 본래 그런 존재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포기하라는 말을 듣고 모카의 소변과 대변이 아무 데나 뒹구는 집을 상상해봤다. 그 집엔 도무지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개집에 사람이 얹혀사는 거라는 자조적인 농담은 더욱 와 닿지 않았다. 나는 개 중심으로 돌아가는 집에서 불편하게 살고 싶은 게 아니라 개와 함께 어울려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불어’가 빠진 반려 생활은 의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배변훈련은 정답도, 빠르게 훈련을 완성하는 비법도 없었다. 굳이 답이라면 딱 하나였다. 끈질기게 훈련할 것. 칠전팔기라는 구수한 사자성어를 뇌리에 자수 놓듯 끈기와 인내로 훈련하는 게 유일한 답이었다. 끈질기게 칭찬하고 재빠르게 치우는 것 외에 할 게 없다는 단 하나의 선택지였다.

요즘 모카

배변훈련은 계속 이어졌다. 모카는 열에 한 번쯤 배변판에 볼일을 봤고, 아홉은 바닥에 쏟아냈다. 그걸 치우는 내 손은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졌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꾹꾹 참았다. 바닥이 새카맣게 썩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며 계속 치우고 닦고, 우연히 배변이 잘 되면 칭찬해주고 간식을 먹이며 모카가 제발 생리작용에 관한 이 단순한 인과를 깨닫기를 빌고 또 빌었다.


두 달쯤 지났을까. 모카가 아주 조금 말을 알아듣는다고 느꼈다. 잘 놀다가 배변판에 올라가서 볼일을 보고는 슬쩍 나를 쳐다보는 게 “이렇게 하면 간식 주는 거예요?”라고 묻는 듯했다. 그렇게 다시 반복하면서 두 달여 만에 배변훈련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개가 무언가 마렵다고 느끼면 알아서 배변판에 올라가 볼일을 보고 내게 찾아와 칭찬과 간식을 바라기 시작한다면 배변훈련의 좋은 징조다. 드디어 종일 배설물을 치우고 닦는 고단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배변훈련은 쾌적한 생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사람과 반려견의 소통실력이 일치한 교집합의 상징이다.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과 반려견의 말이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소통의 신비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일단 배변훈련에 성공하면 이후에는 웬만한 훈련이 수월하다. 반려견이 함께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알아둬야 할 안 돼, 기다려, 짖지 마 훈련이 어렵지 않게 흘러간다. 아마도 배변훈련을 겪으며 자연스레 먹게 된 ‘눈칫밥(간식)’ 덕분 아닐는지.


태어난 지 2달째에 시작해 4달째에 성공한 배변훈련은 모카에게 생존의 기초인 생리작용을 ‘훈련’함으로써 견생이 그리 널널하지 않다는 생생한 교육이었을 것이다.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려면 넘어야 할 허들로써 첫 번째 배움이었을 터다.


나 역시 어린 생명을 사회에 적응시키며 야생에서 문명으로 이끄는 과정을 살갗이 벗겨지도록 체험했다. 훈련 과정에서 모카가 가끔 미웠고, 찌들도록 피곤했다. 그럼에도 훈련에 성공한 모카가 드디어 ‘함께 살기 괜찮은 개’로 한 단계 올라갔다는 사실에 느끼는 만족과 성취는 나를 안도시켰다. 배변훈련에 성공했다고 확신한 날, 내가 수없이 되새긴 말은 ‘이젠 괜찮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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