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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Feb 02. 2021

결정사 못지않은 가정사

강아지를 입양받는 방법

개를 키우자고 용기를 낸 뒤에 남편과 나는 아주 초보적인 질문을 만났다.

“그런데 개는 어디서 데려오지?”


순간 자주 가는 마트에 있는 펫샵이 떠올랐고, 어릴 적 동네에서 개가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씩 데려가 키우던 풍경이 떠올랐고, 슬픈 현실에 처한 유기견이 떠올랐다. 구체적인 사유까진 몰라도 펫샵에서 강아지를 데려오는 게 좋지 않다는 것쯤의 상식은 있었다. 유기견을 데려오는 게 윤리적으로나 사회비용 측면에서 좋은 일이라는 상식 역시 있었다. 하지만 그중 우리에게 잘 맞는 양방식이 무엇인지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검색을 해보니 어미 개가 강아지를 낳고 경매장을 통해 펫샵으로 흘러들어온 새끼 강아지의 일부는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다. 생각해보건대 경악스러울 만큼 잔인하고 더러운 ‘뜬장’에서 태어나거나 강제로 교배한 어미 개로부터 태어난 강아지의 건강이 좋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사람으로 치자면 영아 시절의 끔찍한 경험으로 인한 PTSD를 보유한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다가 도덕성이 결여된 일부 펫샵에서는 최대한 작고 예쁜 강아지를 팔기 위해 개월 수를 속인다는 이야기가 흉흉했다.


그래도 한번 방문은 해보자며 남편과 나는 자주 가는 마트 안의 펫샵과 인근에서 비교적 윤리적으로 분양한다는 애견카페에 방문했다. 그곳에는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예쁜 강아지가 정말 많았다. 포도알처럼 동그란 눈망울이 “저를 데려가 주세요!”라고 말하듯 반들거렸다. 분양가는 100~200만 원  사이였다. 생명을 들이는 데 지불할 비용으로 적기도 많기도 했다. 어떤 강아지는 보자마자 내 품에 쏙 안기는 바람에 충동적으로 돈을 지불하고 양하고 싶기도 했다.

우리 집에 온지 며칠 안 된 무렵 모카

그래도 펫샵에서 강아지를 들이는 게 영 찜찜했던 우리는 유기견과 예비 견주를 연결해주는 앱을 내려받았다. 앱을 통해 유기견을 보호하는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미리 전화를 한 뒤 방문했고, 맘씨 좋아 보이던 수의사는 미리 설명을 했다.

“막상 보시면 유기견이 외모가 별로 안 예쁘고 크기가 커서 선뜻 데려가기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데려가셨다가 다시 파양하는 건 정말 안 좋으니 신중하셔야 합니다.”


수의사가 보여준 개는 일명 ‘시고르자브종’이라 불리는 믹스견이었다. 아이보리색 털에 몸집이 꽤 큰 중형견이었다. 발견 당시 목에 걸고 있던 낡아빠진 목줄도 그대로였다. 유기견은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공고기간이 끝나 안락사해야 한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자신을 보러 왔다는 걸 감지했는지 유기견은 우리에게 다가와 손과 다리를 핥으며 절실하게 구애했다. 마치 “저를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듯이.


역시 유기견의 선망한 눈망울을 마주한 뒤 나는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집의 크기나 내 건강상태를 고려하면 큰 개를 키우는 건 무리였다. 동정과 연민으로 충동적인 선택을 할 순 없었다. 잠시 유기견을 쓰다듬어주고 눈을 맞추다가 입양을 포기하고 나왔는데 미안함에 엉엉 울고 말았다. 그 유기견이 시간이 지나 안락사가 된다면 내가 데려가지 않아서일 것만 같았다(정작 잘못은 버린 사람의 몫인데도). 강아지 양을 알아보는 과정만으로도 극도의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니, 스스로 신기할 정도였다.


이윽고 우리 부부는 익숙한 분양방법을 알아보기로 했다. 어릴 적 동네에서 강아지가 태어나면 이웃들이 한 마리씩 키우듯, 친구네 집 개가 강아지를 낳으면 한 마리 분양해주듯, 익숙한 방식인 가정견 을 알아보기로 했다.


가정견은 집에서 키우던 개가 출산을 해서 태어난 강아지를 양하는 것을 말한다. 가정견은 깨끗하고 안정된 공간에서 출산하기 때문에 어미 개의 심신과 태어나는 강아지들이 대부분 건강하다. 부견과 모견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만일에 유전질환이 있다면 미리 인지할 수도 있다. 


가정견 분양은 한때 법적 제재가 있을 예정이었는데 가정견을 분양하는 사람으로 거짓말을 하는 펫샵업자가 아닌 이상 아직은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혹여나 어린 강아지를 데려다 번식용으로 쓰거나 학대할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해 분양 전에 꽤나 공들여 양 의사를 전해야 하고 양받은 후에는 틈틈이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정견으로 태어난 작고 예쁜 강아지의 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남편과 나는 깊이 고민하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남편은 곧 죽어도 푸들을 키우겠다고 했다. 어릴 적 푸들을 키워본 기억이 있어서 견종에 관해 양보가 도무지 없었다. 어떤 개를 보여줘도 오직 푸들만 예쁘다고 법석이었다.

태어난지 몇 달 안됐지만 창가 사색을 즐기던 모카

나는 견종은 관계없지만, 손목과 어깨 상태가 안 좋아 무거운 것을 잘 들지 못하니 개의 크기가 중요했다. 어딜 데리고 가거나 목욕을 시킬 때 한 번씩 안거나 들어야 하는데 10kg가 넘어가면 감당이 안 될 터였다. 그래서 최소 5~6kg까지 자랄 견종으로 생각하고, 그 이상은 고려하지 않았다. 비교적 유전질환이 없었으면 했고, 나와 남편 둘 다 피부가 예민하니 털 날림이 덜한 강아지를 원했다. 이렇다 보니 결국 둘의 합의점은 푸들이었다.


가정견을 양하기 위해 들락거렸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강아지들의 프로필이 올라왔다. 흡사 결혼정보회사 같았다. 그렇다면 강아지의 양은 가족정보회사인가. 올라오는 글에는 강아지의 생년월일, 외모, 견종, 모색, 몸무게 등이 고스란히 적혀있었고 부모견의 프로필까지 당당히 공개됐다. 결혼정보회사를 줄여서 결정사라고 부르니 반려동물 양 커뮤니티는 가정사 정도로 줄여 불러야 하나.


사진이 올라오면 남편과 나는 화면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우리 가족의 후보를 고민하는 데 몇 시간씩 할애하곤 했다. 글을 올린 사람의 예전 게시물을 보며 부모견이 확실한지, 업자가 아닌지, 부모견이 건강한지 일일이 확인하고 태어난 강아지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하루에 몇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이 과정에서 알아챈 점이 있다면 나와 남편 모두 과거 키우던 개들의 모습을 새 가족에서 찾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나는 검은색 슈나우저였던 여름이의 모습이나 유년기를 함께한 아심이와 같이 검은 털에 눈썹과 발만 하얀 강아지를 기대했다. 남편은 어릴 적 키우던 레이의 모습을 똑 닮은 애프리 푸들이나 크림 푸들을 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의 개를 보며 과거의 개를 만나는 걸까? 우리는 어떤 강아지가 가족이 되기 이전에 과거 키우던 강아지를 향한 그리움을 평생 접을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했다. 아무리 다양하게 보려 해도 마음이 쓰이고 눈길이 가는 강아지는 과거 키우던 강아지와 닮아있었고,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가족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닮은 강아지를 통해 대리만족을 찾으려는 게 아닌지 자신을 매몰차게 점검하기도 했다.


결론은 남편이 원하는 푸들을 키우기로 합의를 봤고, 가정견을 알아보며 푸들에만 집중했다. 푸들이라는 견종 하나에만 집중해도 세상에는 매일같이 많은 푸들이 태어나고, 하나같이 예쁘며,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사유가 있어 가정에서 강아지들이 태어날 수는 있지만 낳은 강아지 모두를 키우는 건 쉽지 않기에 세상 물정 모르는 단계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 곳을 찾아야 하는 견생의 이치도 알게 됐다.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을 보내야 하는 부모견이나 태어나자마자 천지분간 못하는 상태에서 새집으로 떠나야 하는 강아지들이나 그들 가족에겐 매우 애석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가족이 있어 우리는 모카를 맞이할 수 있었고, 건강하게 모카를 낳아준 부모견이나 그 견주에겐 여전히 고마운 마음이 든다.


모카를 데려올 때 건강수첩을 건네받았다. 예방접종을 2차까지 맞춘 기록이 있었다. 6남매 중 5번째로 태어난 여자 강아지인 모카는 건강수첩 앞장에 ‘여아 5’라고 적혀있었다. 첫 이름을 짓는 수고는 우리에게 남겨졌다. 당장 낳아준 부모와 떨어져 낯선 곳에서 살 운명에 처한 ‘여아 5’를 그렇게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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